하나님의 예정 [3]
- 에베소 1:3-6 -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의 예정(미리 정하심)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른 영원한 작정이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역사한다.
하나님의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백성만이 공로 없는 은혜로 누린다.
하나님의 예정은 성경이 가르치는 주요한 믿음의 교리로서, 하나님께서 비밀로 감추신 영역은 그대로 두고 받되 알려주신 것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3] 예지예정론 반박
1. 예정을 예지에 종속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께서 공로를 미리 아시고 자신의 은혜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예지하시는 사람들을 자녀로서 선택했다고 하는 예지예정론은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를 사악하게 왜곡한다. 예정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절대적 은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미리 자질을 헤아리고 그 예지에 따라서 작정했다는 교설과 양립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그저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밝히 증거하는 진리이다. 천사들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비록 원죄에 속한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지만 세상의 빛과 의와 구원이 되심이 영원히 정하여졌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지체들로서 선택하셨다.
이는 그들의 가치 여하를 불문하고 택하심이니, 택하심을 받은 자들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택하신 분의 기쁘신 뜻에 따른 것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2.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심은 오직 자신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로 말미암는다(딤후 1:9).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무조건적 선택을 뜻한다. 사람의 가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공로를 믿는 은혜만이 역사한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으므로 자질이 예정에 선행하지 못한다. 선택에는 이러한 목적이 있지만, 그 기쁘신 뜻대로, 이 말씀이 더욱 우월한 원인이 된다.
3. 구원의 작정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는다(롬 9:11).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에 따라서(엡 1:5, 9) 우리를 택하심은 우리를 자신의 은혜를 찬양하는 도구로서 삼고자 하심이었다(엡 1:6, 12, 14).
거룩함이 선택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거룩함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는냐’(롬 11:35).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양자 삼으심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야곱은 부르셨으나 이스마엘과 에서는 그리하지 아니하셨다(창 21:12; 25:23). 하나님께서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에게 더 큰 영예를 주신 원인을 그 분의 은밀한 선택 외에서 찾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로나 자질이 아니라 우리의 전적 무능과 부패를 예지하시고 선택하셨다. 공로로 말하면, 야곱과 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다르지 않다. 다만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시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리하지 아니하셨음이 다르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5-16; 출 33:19).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택하신다고 함은(롬 11:2; 행 2:33) 그 분께서 자질을 헤아리시지 아니하고 긍휼히 여기시사 미리 정하신 백성을 마음에 두셨다는 의미이다.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정하신 하나님께서(벧전 1:19-20) 우리를 긍휼의 그릇으로(롬 9:23) 삼으셨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라는 말씀의 뜻이 여기에 있다.
4. 그리스도께서는 선택의 비밀을 친히 말씀하셨다.
택한 자들을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 ‘아버지의 것’이라고 부르셨다(요 6:37, 39; 15:19; 17:6, 9). 그리스도께서는 심지어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백성을 자신께서 택하셨다고 하심으로써(요 13:18) 함께 일하시고 경륜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셨다.
창조 전에 삼위 하나님께서 협약하셔서 아들을 보내시사 아버지께 속한 백성을 끝까지 보전하시도록 하셨다(요 17:11-12). 우리가 아들을 믿고 아들 안에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아버지의 선물이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우리의 양자됨이 오직 아버지의 은밀하신 기뻐하심에 따른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공로로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공로 때문에 사람에게 영광을 예정하시지 않으셨다.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의 헤아리심과 긍휼에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자질로 선하게 될 것을 예지하시고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가 먼저 그 분을 선택한 것이 될 것이다.
어거스틴이 말한 바, "하나님의 은혜는 선택을 받아야 할 자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자녀가 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에게만 있다(요 1:12-13).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만 아버지를 본다(요 6:46). 먼저 보내심이 있고 믿음이 따른다(요 6:39-40).
6.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만이 영생에 이르는 소망이 된다(딛 1:1-2).
믿음은 선택의 보증이 된다. 선택이 믿음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불변하는 항구성에는 견인의 은혜가 함께 제시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소위(所爲)를 앞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믿음 자체를 주신다.
http://shmission.com/xe/?mid=sh_kr_board9&document_srl=92053.
.........................................................................
기독교강요-30주제[항목]-Shalom Mission
* 제목을 크릭하면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
기독교강요- 30주제[항목]정리 Sh. M. | < 문병호 지상강좌 중심으로 > |
13.구속자 그리스도 [1]-예수 그리스도 | |
30.국가 [2]-법, 국민 |
.........................................................................
▲지상강좌를 통해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평신도들에게도 기독교강요를 통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겠지만 목회자들이 기독교강요로 설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글을 쓰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기독교강요는 교리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좋은 서책입니다. 본문을 선택해 설교 제목을 잡아 묵상을 하면서 설교를 작성해 나가면 원래 신학적 뜻에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칭의를 말하고 있는데 성화를 가르치면 안됩니다. 기독교강요를 알면 절대로 본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주석 설교 신학적 잡지등과 같이 읽기를 원하면서 기록하였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기본교리로서 중심을 잡아주고 주석을 참고하도록 헸습니다. < 문병호 교수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