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대속 [1]
- 요한일서 2:1-5 -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자 동시에 제물로서 인간이 하나님과의 화목에 이르는 대속의 원리를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대속(대리적 속죄)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작은 의(義)이었다.
[1]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공로
1.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서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은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심이다.
(1) 속죄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죄의 값을 치르고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속죄론은 제물 자체나 제사 자체가 아니라, 제사의 대상인 제물의 가치, 즉 제물의 제사-가치를 대상으로 삼는다.
(2) 칼빈과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속죄의 의의와 가치를 ‘satisfactio’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이 단어는 본래 ‘빚 갚기’ ‘보석금 내기’ 그리고 ‘사죄’ ‘사과’ ‘탄원’이라는 어의를 가진다. 이로부터 ‘만족’이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이러한 뜻을 포괄하는 성경적 개념으로서 ‘무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무름은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사역의 공로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다 이루심을 전제하고 전가를 지향한다. 그것은 대리적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상응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서 우리를 위한 대속제물이 되셨다(사 53:10; 눅 2:14; 갈 1:4; 골 1:19~20).
(3) 속죄의 일차적 동기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사랑에 있다.
그리스도의 무름은 만세 전에 있었던 삼위 하나님의 협약에 기초한다. 그것은 아들의 공로에 따라서, 아버지의 죄사함과 용서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우리가 화목에 이르는 대속의 원리를 제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서 친히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위한 무름의 값을 치르셨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시자 제물로서 우리를 위한 무름이 되심으로 영원한 화목의 법에 따라서 우리가 그 분과 연합체가 되었다.
(4)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뜻은 성자의 대리적 무름에 있다.
하나님의 자비는 아들을 주셔서 죽기까지 복종하는 자리에 세우심으로써 그 공로를 조건 없이 우리의 것으로 삼아주심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아들의 공로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연적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주로서(행 3:15) 우리의 인도자요 통치자가 되심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정하심대로 그 분의 모든 뜻을 이루심에 있었다.
2. 칼빈은 그리스도의 무름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공로의 제1원인이라고 하였다.
성도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 시초부터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는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공로의 시초는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기뻐하신 뜻에 따라서 중보자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저 베푸시는 호의와 그리스도의 순종은 서로 대립되거나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역사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고한 원인, 혹은 기원이 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2)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와 화목하시기를 원하셨다(골 1:19~20; 고후 5: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엡 1:4~5) 그저 주시는 은혜 가운데(엡 1:6) 우리를 서로 화목하게 하려 하셨다(엡 2:15~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사 그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보내셨다(요일 4:10; 요일 2:2).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 구원의 질료로 삼으셨다. 구원의 공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께 있다. 믿음은 형상인으로서 이차적이며 부수적이다.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호의로 자신의 아들을 주심으로써 우리와 화목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성자께서 자신으로부터 얻으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자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시사 우리의 의가 되게 하셨다(고후 5:21).
성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자의 의가 역사하게 되었다. 성부께서 성자의 의로써 사랑하셨다. 성부께서 친히 의의 원천이 되셨다. 그러므로 사랑의 시작은 의(義)이다.
- 우리는 전체 구원과 그것의 모든 부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행 4:12).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작은 한 부분이라도 다른 곳으로부터 끌어오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구한다면, 우리는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서 그것이 그 분 안에 있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고전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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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30주제[항목]-Shalom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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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30주제[항목]정리 Sh. M. | < 문병호 지상강좌 중심으로 > |
13.구속자 그리스도 [1]-예수 그리스도 | |
30.국가 [2]-법, 국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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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를 통해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평신도들에게도 기독교강요를 통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겠지만 목회자들이 기독교강요로 설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글을 쓰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기독교강요는 교리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좋은 서책입니다. 본문을 선택해 설교 제목을 잡아 묵상을 하면서 설교를 작성해 나가면 원래 신학적 뜻에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칭의를 말하고 있는데 성화를 가르치면 안됩니다. 기독교강요를 알면 절대로 본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주석 설교 신학적 잡지등과 같이 읽기를 원하면서 기록하였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기본교리로서 중심을 잡아주고 주석을 참고하도록 헸습니다. < 문병호 교수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