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1]
- 마태복음 5:17-19 -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시하는 경건하고 올바른 삶의 규범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마땅히 지켜 행해야 할 것을 계시한 언약의 법이다.
- 그 어떤 율법의 약속도 구주이신 메시아(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으면 헛되다.
[1] 율법의 본질: 경건하고 올바른 삶의 규범
1. 율법은 삶의 규범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1) 율법에는 자신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다.
율법 가운데 우리에게 거룩함을 명령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우리의 거룩함에 있음을 드러내신다(살전 4:3). 뿐만 아니라 율법에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계시되어 있다. 우리에게 거룩함을 명령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으로서 율법 가운데 계시되신다. 율법은 그것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의 영원성, 능력, 지혜, 선, 진리, 의, 자비를 계시한다.
이렇듯 율법을 통하여 우리는 언약 백성의 소명을 확인하게 되고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어떠하심을 깨달아 알게 된다. 이 앎이 하나님을 만남에 다름 아니므로 시편 기자는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궁구(窮究)하였으며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침상을 적시도록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2) 율법은 삶의 규범을 가르치는 십계명과 함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서 가르쳐주신 종교의 양식을 포괄한다.
율법의 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신 4:1; 5:29-33; 6:1-3; 8:1)는 선포로 나타난다. 율법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계시한다. 아무도 율법의 의를 다 충족시킬 수는 없으므로 율법을 좇아 살기 위해서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하다. 율법은 은혜 언약에 정초해서만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약의 법이라고 불림이 마땅하다.
2. 율법은 세상의 법과는 달리 단지 형벌의 두려움을 고지하여 죄를 억제하는 기능에만 머물지 않는다.
(1) 율법은 규범적 사역과 정죄적 사역을 함께 감당한다.
본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규범으로서 수여되었다. 그러나 마치 태양이 길을 비추는 본연의 작용을 하나 동시에 어둡고 후미진 곳을 들추어내듯이 율법은 삶의 길을 제시하는 가운데 죄를 드러내는 사역을 우연히 감당하게 된다.
(2) 율법은 항상 교육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율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의 길을 가르친다. 율법을 통하여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으려고 노력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니는 특별한 학교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학교의 내적 교사이시다.
그러므로 칼빈이 신명기 5장 2절 주석에서 말하듯이, 율법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받아야 하며, 가장 높은 영광을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언약에 올려 드려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완전한 규범으로서 율법을 주셨다.
율법에는 명령과 함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롬 10:4).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심은 곧 그것에 대한 완성이 되심을 뜻한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폐하지 아니하시고 다 이루시리라 말씀하셨다(마 5:18). 주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려 하심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오셨다(마 5:17). 새로운 복음이 없듯이 새로운 율법은 없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심은 율법의 의를 다 이루신 자신의 의를 전가해 주심으로써 거듭난 성도들을 율법을 다 지켜 행하는 자리에 세우심에 있다.
(4) 율법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헛되다.
오직 자신의 의를 전가해 주심으로써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제 성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일점일획이라도 업신여기지 않고 다 지켜 행할 자리에 서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셨음은 자신의 영을 부어 주셔서 그저 주시는 은혜의 언약으로 옷 입은 율법을 성도들이 즐겨 지키는 자리에 세우심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중보가 없이는 율법은 어떤 신학적 기능도 감당할 수 없다.
율법이 죄를 깨달아 회개에 이르게 하는 기능을 하게 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율법의 규범대로 행하여 상급을 받게 됨은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신 자신의 의를 전가해 주심으로써 우리의 불완전한 복종도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받으시기 때문이다.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막 12:30)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자 어디에 있는가?
+ 성령의 소욕을 거스른 육체의 소욕으로부터(갈 5:17) 전적으로 자유로운 자가 어디 있는가?
+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행하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다고 하였는데(갈 3:10; 신 27:26), 누가 모든 것을 지켜 행함으로써 은혜에 머물 수 있을 것인가?
- 율법은 은혜의 법으로서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로써 역사하니 그 분의 영의 부으심에 따라서 그 분의 의를 전가 받은 사람마다 그 분의 은혜로 율법을 지키는 자리에 서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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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30주제[항목]-Shalom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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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30주제[항목]정리 Sh. M. | < 문병호 지상강좌 중심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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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국가 [2]-법, 국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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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를 통해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평신도들에게도 기독교강요를 통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겠지만 목회자들이 기독교강요로 설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글을 쓰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기독교강요는 교리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좋은 서책입니다. 본문을 선택해 설교 제목을 잡아 묵상을 하면서 설교를 작성해 나가면 원래 신학적 뜻에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칭의를 말하고 있는데 성화를 가르치면 안됩니다. 기독교강요를 알면 절대로 본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주석 설교 신학적 잡지등과 같이 읽기를 원하면서 기록하였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기본교리로서 중심을 잡아주고 주석을 참고하도록 헸습니다. < 문병호 교수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