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
- 로마서 8:14-15 -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기도는 구원받은 사람(성도;聖徒)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이다. 성령으로 새롭게 난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알고 믿음으로 자란다.
기도는 성도에게 독생자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주요한 훈련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가 당연히 행하여야 하는 참으로 복되고 거룩한 일이다.
[3-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 가운데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만을 받으신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도무지 아버지께 나아갈 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재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의 임재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며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의 대언자시며(요일 2:1) 중보자(mediator)로서(딤전 2:5; 히 8:5; 9:15) 우리를 위하여 친히 중보하신다.
그러므로 오직 그 분의 이름으로 구하여 그 분을 통하여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는다(요 14:13-14; 16:26).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아들의 순종으로 성취되니 우리는 단지 아멘 하여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고후 1:20). 기도는 그리스도의 ‘예’에 ‘아멘’ 하여 그 분의 공로를 우리의 것으로 삼는 것이다.
2.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의 흉패를 자신의 가슴에 달고(출 28:9-21) 친히 하늘 성소에서 간구하신다. 이제는 그 분의 육체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로(히 10:20) 우리가 나아간다. 예수께서 생명의 길이시요 생명의 문이시다(요 14:6; 10:7).
3. 우리의 유일하신 대언자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로서(롬 8:34)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요일 2:1; 딤전 2:5).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인치심으로(요 6:27) 그 분을 우리의 목자와(마 2:6) 머리로(고전 11:3; 엡 1:22; 4:15; 5:23; 골 1:18) 삼으셨으므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실 분은 주님 밖에 없으시다.
성도들 상호간은 서로 위하여 기도는 하되 서로가 서로에게 중보자가 되지는 못한다. 그리스도는 구속의 중보자요 성도들은 중재의 중보자라고 하는 궤변은 도무지 가당치 않다.
4.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분은 우리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사(요일 2:2) 땅에서 죽으시고 하늘로 올리우신(히 7:26) 한 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천사들은 부리는 영에 다름 아니니(히 1:14)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중보할 없다.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여겨지는 성자들이 그들의 의로 중보할 여지는 전혀 없다. 노아, 다니엘, 욥도 자기의 생명만 건질 뿐이다(겔 14:14).
[3-2]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 주님께서는 친히 기도의 방법과 양식을 가르쳐 주셨다(마 6:9-13; 눅 11:2-4). 우리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를 아들을 통하여 판에 새기듯 가르쳐 주셨다.
1.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름은 우리가 모두 한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의를 우리의 것으로 삼고자 하심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 자만이(요 1:2; 요일 3:1) 아버지의 부성적인 사랑을 의지하여(시 27:10; 마 7:11; 사 49:15)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만유 안에 만유가 되셔서 편재(遍在)하시므로 '하늘에 계신'이라고 호칭한다.
2.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기도로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영광의 표지들로서 그 분의 능력, 선하심, 지혜, 공의, 자비, 진리를 함유한다.
3. ‘나라에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통치가 편만하기를 구함이다.
성령의 임재가 다스림이다. 성령으로 만물이 창조되고 운행되며, 그 은밀한 역사로 감화된 성도가 마땅한 주의 자녀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한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우주가 운행되며 우리의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되기를 구하는 것이다.
4. 이어지는 간구로서 우리의 유익을 위한 첫째 기도는 '일용할 양식'에 관한다.
먹고 마시는 것도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고전 10:31). 이를 위해서 우리는 떡을 구해야 한다. ‘오늘날’ 이라고 함은 주님의 섭리가 시시각각 끊이지 않음을 믿고 구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것으로 구하라고 했으니, 이기적인 물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신 8: 3; 마 4:4).
5.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다음 기도가 가르쳐진다.
죄사함에는 의의 전가가 함께 있다. 죄를 안고는 의의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조건적이므로 우리도 남의 허물을 헤아리지 않겠다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한다.
이는 십자가의 그늘에 거하는 백성으로서 사망의 권세에 놓이게 하지 말라는 간구이다. 시험이 없지는 않으나 성령의 능력으로 시험을 이겨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자리에 서게 해 달라는 애통함이다.
7. 모든 기도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는 간구로 귀결된다. 그리고 양자의 영을 받은 자만이 외치는 다음 음성으로 마치는 것이다. ‘아멘’(Amen).
+ 기도는 믿음으로 새롭게 난 사람이 믿음으로써 자라가는 도구이다.
기도를 통하여 성도는 하나님께 구하여 얻는 법을 깨달아 날마다 그 분께 더욱 가까이 가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훈련이 결여된 기도로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은 없다.
+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향한 헤아릴 수 없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오직 상한 심령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로 나아가는 자가 복되도다!
+ 우리는 자신의 공로를 헤아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의 은총을 구할 뿐이다.
오직 주의 인자하심에 위로를 찾고, 하나님의 언약에 용기를 얻어서, 여호와의 이름 가운데서 전적인 구원을 구하는 것이다.
+ 우리의 최고의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 기도의 공식을 가르쳐 주셨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 들어야 한다(마 17:5). 완전한 기도, 기도의 완전함이 아들의 음성으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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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30주제[항목]-Shalom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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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30주제[항목]정리 Sh. M. | < 문병호 지상강좌 중심으로 > |
13.구속자 그리스도 [1]-예수 그리스도 | |
30.국가 [2]-법, 국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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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를 통해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평신도들에게도 기독교강요를 통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겠지만 목회자들이 기독교강요로 설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글을 쓰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기독교강요는 교리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좋은 서책입니다. 본문을 선택해 설교 제목을 잡아 묵상을 하면서 설교를 작성해 나가면 원래 신학적 뜻에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칭의를 말하고 있는데 성화를 가르치면 안됩니다. 기독교강요를 알면 절대로 본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주석 설교 신학적 잡지등과 같이 읽기를 원하면서 기록하였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기본교리로서 중심을 잡아주고 주석을 참고하도록 헸습니다. < 문병호 교수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