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1]
- 시편 22:27-31 -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하나님 주권적 섭리가 국가 통치의 근본적인 질서이다. 국가 통치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적인 다스림이다. 국가 통치의 목적은 살아있는 예배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국가의 신민은 오직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우선적으로 들어야 한다. -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
[1-1] 국가 통치의 목적
+ 사람은 이중적 통치를 받는다.: 영적 통치와 국가적 통치이다.
1. 영적인 통치는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의로 맺혀진 ‘영적인 열매’이다. 그러므로 그 관할이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에 있다.
성도는 그 다스림 아래에서 죄의 종의 멍에는 벗어버리고(갈 5:1) 주님의 멍에를 메고 의의 종으로서 살게 된다(마 11:28-30; 롬 6:15-20). 주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거듭난 성도는 그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심으로(갈 2:20) 이제는 세상의 초등학문을 버리고(골 2:20)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이 세상의 초보에 속한 것들을 버리고 영원한 것들을 추구한다.
2. 국가적 통치는 세속 정부의 다스림을 통하여서 시민질서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통치, 그것은 성도들의 경건한 삶에도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수호하며, 우리의 삶을 사회의 연합체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도덕을 시민 정의에 부합하도록 형성시키며, 우리가 서로 간에 화해하게 하며, 공공의 평화와 안온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3. 정부의 역할은 단지 의식주를 채우고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삶을 고양시키는데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는 우상 숭배나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를 금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훼방하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고 공개적인 예배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정부는 통치자 법, 국민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4. 사람은 사회적 본성을 공유한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성실과 공평에 대한 관념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법과 사회 질서의 씨앗이 심겨져 있다. 사람들이 함께 국가를 이루고 시민법을 통하여서 통치자와 피치자의 질서를 세워가는 것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속한다.
[1-2] 통치자
1. 하나님께서는 통치자의 역할을 인정하실 뿐 아니라 최고의 찬사로 그 가치를 칭송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다른 사람을 적합하게 판단하는 사람은 신이라고 불렸다(출 22:8; 시 82:1, 6; 요 10:35).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권세로써 그 분 대신에 다스리는 자들로서 세워졌다(롬 13:1-4). 오직 하나님께서 권능을 부여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방백들과 재상들과 재판관들이 그들에게 속한 백성을 다스린다(잠 8:15-16).
교회에 부여된 다스리는 은사도(롬 12:8; 고전 12:28) 이러한 국가 통치의 원리를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자들을 자신의 대리자들로 삼으셔서 국가와 교회를 세우심은 인류의 패괴함 때문이 아니라 신적인 섭리와 거룩한 질서로 말미암는다.
2. 시민국가의 권세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유한한 인생의 삶 전체에 있어서 가장 거룩하고 나아가 모든 것 중에 더욱 더 영예롭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의 위정자들을 경건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위한 보호자들로 삼았다. 왕들은 백성의 양부가 되고 왕비들은 유모가 된다(사 49:23). 그러므로 모든 통치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아들에게 입 맞출 것이요(시 2:12),
성도들은 자신들의 경건한 생활과 평안을 위하여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딤전 2:2). 성도들이 군왕과 재판관을 위하여 기도해야 함은 그들의 통치권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함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왕은 여호와의 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분의 인자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아니한다(시 21:1, 7). 나라가 그 분의 것이며 그 분은 모든 나라의 주재가 되신다(시 22:28).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왕에게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신다(시 45:7). 왕의 선정(善政)이 주의 판단력과 주의 공의로, 주의 기이한 일과 주의 성실로, 주의 권능의 규례로 말미암는다(시 72:1; 89:5; 110:2). 오직 주께서 왕위를 견고케 하사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3. 통치자는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는 일꾼, 하나님의 진리를 입으로 선포하는 도구, 하나님의 행적을 기록하는 손이며, 그가 앉은 재판석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좌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하심, 보호하심, 선하심, 인자하심, 의로우심을 드러내는 형상이 되어야 한다. 통치자는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대사직(大使職)을 수행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할 것이며(렘 48:10), 삼갈 것이며(대하 19:6-7),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이다(시 82:1).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왕이 치리하는 것이 그 분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잠 8:15). 하나님께서는 국가를 세우시되, 더불어 그 통치자들을 정하여 세우신다.
4. 통치자의 직분은 율법의 두 돌판에 모두 미친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 정부의 제 일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순수한 교리가 보전되고 예배가 보호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순수하게 예배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법이 시민법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돌판과 관련하여서 통치자는 공평과 정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한다(렘 22:3). 오히려 낮고 천하고 굶주리고 버림을 받은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압제하는 악인들로부터 건져내야 한다(시 82:3-4). 공정한 재판을 실시하여 하나님의 의가 외형이 아니라 진실에 있음을 나타내야 한다(신 1:16-17; 16:19; 17:16-20).
5.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심판을 대행하신다(롬 13:4).
악인을 의롭다고 여기는 자는 여호와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잠 17:15; 잠 24:24). 통치자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지하여 공적인 보복을 가하는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에서는 원수도 사랑해야 할 이웃이지만, 세상의 왕국에서는 적으로부터 자국민을 방어하기 위하여 전쟁을 수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치자가 검을 들 때에는 선악시비에 대한 공평한 판단과 더불어 관용이 필요하다. 관용은 국왕을 자문하는 최고 고문관이라고 할 것이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왕위가 견고해진다(잠 20:28). 관용은 국왕이 국민에게 베풀 제일의 선물이다. 국왕은 인간의 본성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국민에게 맞추어 위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국정을 수행해야 한다.
http://shmission.com/xe/?mid=sh_kr_board9&document_srl=92137.
.........................................................................
기독교강요-30주제[항목]-Shalom Mission
* 제목을 크릭하면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
기독교강요- 30주제[항목]정리 Sh. M. | < 문병호 지상강좌 중심으로 > |
13.구속자 그리스도 [1]-예수 그리스도 | |
30.국가 [2]-법, 국민 |
.........................................................................
▲지상강좌를 통해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평신도들에게도 기독교강요를 통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겠지만 목회자들이 기독교강요로 설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글을 쓰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기독교강요는 교리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좋은 서책입니다. 본문을 선택해 설교 제목을 잡아 묵상을 하면서 설교를 작성해 나가면 원래 신학적 뜻에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칭의를 말하고 있는데 성화를 가르치면 안됩니다. 기독교강요를 알면 절대로 본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주석 설교 신학적 잡지등과 같이 읽기를 원하면서 기록하였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기본교리로서 중심을 잡아주고 주석을 참고하도록 헸습니다. < 문병호 교수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