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탄식을 들으심

  

시편6편  

[1-2]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 . . .

 

다윗은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시고 악령으로 고통당하게 하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섭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그를 징계하지 마시기를 구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이 수척하며 쇠약하고 뼈가 떨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긍휼과 치료를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긍휼로 그의 몸의 연약을 치료하시고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이다. 사람은 부족해서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그에게 무엇을 구할 수 없다.

 

[3-5]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는]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없음이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다윗은 자신의 영혼까지도 심히 떨린다고 말한다. 심령의 두려움은 몸의 연약 못지 않게 문제이다. 또 그의 고통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말한다.

 

마치 파선 당한 배의 선원들이 구조 신호를 보내면서 구조 요청을 하듯이, 다윗은 그의 연약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다윗과 함께 계셨고 그를 지키시고 도우셨으나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 곁에 계시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마 그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잠시 그를 떠나가셨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여, 돌아오소서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특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긍휼 외에는, 그가 우리를 구원하셔야 할 이유가 도무지 없다. 그의 공의뿐이라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만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긍휼과 자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중단과 마침이 있고 우리의 구원과 회복이 가능하였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한 이유는 그가 죽으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으며 무덤에서 주께 감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의 육신을 두고 한 말이다. 사람이 죽어 몸이 무덤에 묻히면 그 몸은 의식이 없는 시체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을 기억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다. 그가 좀더 살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이었다. 성도의 삶의 목적은 단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6-7]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다윗은 지금 심한 고통의 상태에 처해 있다. 그는 탄식함으로 곤핍하였다. 그의 심령은 답답하고 괴로워 신음하며 한숨지었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며 지쳤다. 또 그는 밤마다, 즉 여러 날을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그의 침상과 요는 밤마다 많은 눈물로 적셔졌다. 그의 고통은 매우 컸다. 또 그의 눈은 근심으로 인해 쇠해졌다. 특히 그의 근심은 그의 많은 대적자들을 인한 것이었다.

 

다윗의 고통은 성도의 고통의 예이다. 그것은 우리의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통을 겪으셨다. 그가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려 하였고(5:16, 18), 그가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분기가 가득하여 저를 죽이고자 했다(12:14; 6:11). 또 요한복음에 보면, 그가 성전에서 설교하셨을 때 사람들은 돌을 들어 그를 치려 한 적도 있었고(8:59; 10:31), 누가복음에 보면, 그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는 설교를 하셨을 때 그들은 그에게 맹렬히 달라붙어 그를 비난했다(11:53-54). 마침내,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그를 죽이려고 의논했고 그 일을 이루었다(27:1). 그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사람들에게 멸시와 미움을 당한 질고를 아는 자이셨다(53:3). 사람이신 예수님의 고통은 참으로 크셨다.

 

[8-10]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들으셨음이로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로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본문은 다윗의 기도를 세 가지의 단어로 말한다. 첫째는 곡성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그는 밤마다 눈물로 그의 침상과 요를 적셨다. 둘째는 간구이다. 그는 자신의 소원을 간절히 하나님께 아뢰었다. 1-4절에는 여호와여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온다(1, 2, 2, 3, 4).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하여 간절히 불렀다. 셋째는 기도라는 일반적 용어이다.

 

눈물의 간구를 올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확신한다. 그는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음이로다”(8)라고 말하고,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9)라고 말한다. ‘들으셨다는 원어(완료형)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나타낸다. 기도 응답이 아직 나타난 것은 아니겠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의 평안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라고 말한다.

 

다윗에게 주신 기도 응답의 내용은 그에게 악을 행하던 원수들이 홀연히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떨며 그를 떠나가는 것이다. 전에는 교만하고 의기양양했던 그들이 이제는 몸둘 바를 모르게 부끄러워하며 심히 떨고 당황할 것이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구원과 승리도 있고(34:19) 천적(天的)인 평안도 있다(14:27).

      

성도는 때때로 심신의 연약함에 떨어진다. 많은 경우 그것은 자신의 죄와 부족 때문에 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그가 우리의 심신의 연약을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하자.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자.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의지하며 그렇게 하자. 또 우리는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과 그의 뜻에 맡기며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감사하자.

 

성도에게도 탄식과 눈물과 근심의 심한 고통의 때가 있을 수 있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승리할 수 있다. 고난 중에 아뢰는 우리의 눈물의 간구와 호소는 반드시, 속히 하나님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원수들도 그의 기이한 방법으로 물리쳐주실 것이다. 기도는 성도의 승리의 비결이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1ot/1-19시편.htm#6편: 눈물의 탄식을 들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