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
요한복음4장
[19-20절]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그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의 과거를 훤히 아시는 예수가 선지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예배의 장소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것은 평소에 그 여자가 가졌던 관심거리이었던 것 같다. 예배에 대한 관심은 경건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여자의 마음 속에는 경건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은 이 산 즉 세겜 서쪽에 있는 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즉 성전이 있는 시온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 둘 중에 어느 말이 옳은가라는 질문이었다.
[2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구약시대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서 또 그가 정하신 방식으로 행해져야 했다. 그러나 이제 어떤 장소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배드리는 때가 온다. 그것은 신약시대를 가리켰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어떤 장소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조용한 장소이면 어디나 예배의 장소가 될 수 있고 정숙한 방식이면 된다. 이방종교는 옛날부터 광란적 방식으로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예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시므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도 인격적이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예배 형식이나 찬송이 세속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예배나 찬송이나 기도는 보다 정숙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23절에도 두 번 그런 호칭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라는 명칭은 그가 만물의 근원이 되심과 그의 권위와 위엄, 또한 그의 사랑과 긍휼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우신 아버지이신 동시에 자녀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이시다.
[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북방 이스라엘 나라에는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이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역대하 15:3은 “[북방]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이제 오래였다”고 말했다. 그들이 앗수르에 멸망하여 온 세계로 흩어진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경건이 남아 있었다.
또 이사야 2:2-3 같은 성경은 구원이 유대 땅에서 나올 것을 암시하였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 . .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23-24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참된 예배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수께서 참된 예배자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는 형식적 혹은 위선적 예배자들도 있음을 암시하신다. 우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참된 예배 방식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이다. ‘신령’이라는 원어(프뉴마)는 ‘영’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나 인간의 영을 다 가리킬 수 있다. ‘신령으로’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라는 뜻도 되고 ‘심령으로’라는 뜻도 된다. 또 ‘진정’이라는 원어(알레데이아)는 ‘진리, 진실’을 다 가리킬 수 있다. ‘진정으로’라는 말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라는 뜻도 되고 ‘진실하게’라는 뜻도 된다. 둘 다 좋은 뜻이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드려져야 하고, 또 심령으로, 진실하게 드려져야 한다. 형식적, 가식적, 위선적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참된 예배가 시행될 시기는 ‘이때’ 곧 메시아의 오심으로 시작된 신약시대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상징적 형식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예표하였다. 그러나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완수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이제 우리의 예배는 단순히 외형적, 형식적 예배가 아니다. 예배에 있어서 장소나 의복의 단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서는 깨끗하고 조용한 장소이면 족하고 단정한 복장이면 족하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신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소원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진리로, 또 심령으로, 진실하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다. 영은 물질이 아니므로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으나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 실체이다. 영은 기운이나 에너지 같은 비인격적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의 장소 치장이나 의식 단장에 힘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배 드릴 때 성령의 감동을 구하며 진리의 말씀에 입각해서 드려야 하며 또 심령으로, 진실하게 드려야 할 것이다. 또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 성 같은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우리는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자유로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십자가 공로를 힘 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에게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25-26절]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여자에게 메시아에 대한 지식과 소망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무지와 고난의 긴 과정 속에서도 이런 깨달음과 소원을 주셨다. 과연, 메시아께서 오셔서 속죄사역을 이루심으로 예배의 참된 방식이 드러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바로 그 메시아임을 그 여자에게 증거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참된 예배는 예배의 장소나 시간이나 형식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또 심령으로, 진실하게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참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십자가 공로와 그의 완전한 의 안에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신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은 누구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릴 것이다. 우리는 다 참된 예배자들이 되자.
셋째로,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다. 수가성 여자에게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갈망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 그리스도임을 그 여자에게 분명하게 증거하셨다.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들의 첫 번째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다(요 20:30-31). 또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증거들을 충분하게 전하고 있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증거들에 근거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었다. 우리는 이제 이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야 한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2nt/2-04요한복음.htm#4장: 생수를 주시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