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심
요한복음1장
[43절]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튿날’은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랐던 날로부터 계산된다. 처음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던 그 날은 뜻 깊은 날이었다. 2:1에는 그 날부터 계산하여 ‘사흘 되던 날’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셨고 그를 제자로 삼으셨다. 그는 아직 유대 지방에 계셨던 것 같다. 이 일들은 아직 세례 요한이 사역했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부근에서 되어진 일일 것이다.
예수께서 빌립을 만나자마자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보기에 갑작스럽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그의 기쁘신 뜻대로 그 작정하신 바를 다 이루신다. 그러므로 시편 115:3은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증거하였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아마 모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1:21-22에 보면, 그들은 후에 가룟 유다 대신 한 명을 보선할 때, 그 자격 요건으로 “세례 요한 때부터 함께 다니던 자”를 언급하였다. 빌립도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 요한이 세례주는 곳 부근에 있었고 그의 심령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회개함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그에게는 메시아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기다림이 있었다(45절). 예수께서는 이런 빌립을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오늘날도 준비된 자들을 그의 제자와 사역자로 부르실 것이다.
[44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함께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었다. 벳새다는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의 마을이었다. 야고보와 요한도 갈릴리의 어부이었다(마 4:21-22). 다음에 언급될 나다나엘도 갈릴리 가나 사람이었다(요 21:2). 주께서는 예루살렘이나 유대 지방 출신자들을 부르시지 않고 갈릴리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그것은 아마 당시의 교회가 매우 부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의 사람들은 그 종교적 부패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사람은 대체로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교회들이 부패되어 있을 때는 홀로 떨어져서 주님을 섬기는 것도 유익하다. 여하튼, 갈릴리 사람들 중에 순박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참된 경건을 가졌던 자들이 있었다. 주께서는 그들을 부르셨고 제자로 삼으셨다.
예수님 자신도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무렵에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신 갈릴리 사람이셨다(마 4:13).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 마을로서 벳새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분명히, 예수께서는 어릴 때에도 흠이 없는 인격이셨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어릴 때부터 보고 들어서 알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악한 인물이었다면 사람들은 그를 결코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45절]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그 날 친구 나다나엘을 찾았고 그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들에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는데 그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다. 빌립는 메시아에 대한 성경 지식이 있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메시아께서는 모세가 율법에서 예언하였고 유월절과 성막 제도와 제사 제도 등에 예표(豫表)된 인물이며 또 그 후의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 친구 나다나엘에게 자신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확신있게 말하였다.
[46절]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나다나엘의 처음 반응은 많은 사람들의 반응처럼 부정적이었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은 성경에 예언된 바가 있지만(미 5:2; 말 3:1), 나사렛은 예언된 바가 없었다. 그에게 나사렛은 메시아의 나오심을 기대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자 빌립은 “와 보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그를 알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와 보라’는 말은 언제나 최선의 전도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성경말씀 가운데서이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자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기록된 성경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신다. 또 성경적 설교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하고 만나게 하는 방편이다.
[47-48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그에 관하여]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경건하고 진실한 인물이었다. 그는 주의 제자가 되기에 적합한 준비된 인물이었다. 나다나엘은 아마 그 무화과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성도의 중심을 보시고 받으신다. 그는 바로 그를 경외하는 그의 마음과 모든 죄를 버리고 흠과 점 없이 살고자 하는 그의 진실한 중심을 보셨을 것이다.
[49절]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주님의 말씀은 나다나엘로 하여금 모든 의심을 떨쳐버리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확신하게 하였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그의 중심을 보신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하였다. 안드레와 아마 요한과 베드로와 빌립에게 생겼던 동일한 믿음이 나다나엘에게도 생겼다. 이 믿음과 확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도 있고, 우리 뿐만 아니라 오늘도 진지하게 성경을 읽고 성경적 설교를 듣고 묵상하며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50-51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人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나다나엘 뿐만 아니라, 여러 제자들이 장차 그의 신적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증거하셨다. 다니엘 7:13-14는 메시아를 ‘인자(人子) 같은 이’라고 불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시다. 그는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들에 예표되었고 예언된 그 메시아이시다. 빌립은 전부터 구약성경을 알고 있었고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사모하였고 그의 친구 나다나엘도 그러하였던 것 같다. 그들은 다 경건한 자들이었고,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둘째로,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자기가 만난 메시아를 즉시 소개하였고 그에게 나오도록 초청하였다. 그는 그에게 ‘와 보라’고 말하였다. ‘와 보라’는 초청은 좋은 전도 방법이다. 우리도 우리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성경말씀을 소개하고 또 성경적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고 믿었다면 그렇게 하자.
셋째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보시고 아시는 자이시다. 그는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 아마 거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한 것을 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의 왕이시며 구주와 주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