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로 심판하심

    

시편9편 

[1-3]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 . . .

 

다윗은 말한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奇事)를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망하나이다].” ‘감사한다는 원어(야다)찬송한다는 뜻도 있다. 감사와 찬송은 성경에서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대상 25:3; 92:1-3; 95:2; 100:4 ).

 

다윗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모든 기사를 전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그의 대적자들을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원수들은 지금 다윗을 공격하고 비난하지만 그들이 물러갈 때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넘어져 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도우시고 그의 대적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실 것이다.

 

[4-6]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본절은 원문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다윗의 원수들이 넘어져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판단과 의, 그리고 그의 송사를 지지하시고 변호하신다. 그는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을 의롭게 심판하신다. 이 사실은 참으로 감사하다. 사람의 양심은 선과 진실이 인정을 받는 도덕적 세계를 원하며 세상 사람들도 입으로는 그런 세계를 인정할 것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와 악을 행하며 또 그런 것과 타협한다.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려는 자는 오히려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무시하는 악한 이방 나라들은 영원히 멸망하여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7-8]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위해 보좌를 예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인이시요 심판자이시다. 그는 인류 역사 속에서 자주 심판을 행하셨다. 마지막 날에도 그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벧후 3:7; 20:11-15). 그는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7:11). 로마서 2:6, 1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9-10]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인간의 삶의 여정에는 다른 사람들의 압제도 있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다. 어떤 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징벌로 오지만, 어떤 때는 세상의 헛됨을 깨닫고 하나님만 소망케 하는 훈련 과정으로 온다(39:6-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압제 당하는 자에게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 되신다. 산성은 요새와 피난처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원수들의 교묘하고 집요한 공격과 핍박으로부터 안전하게 피신할 곳이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의인들을 보호하시고 변호하시며 악인들을 징벌하신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의 해결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피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를 체험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그를 의지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자들은 그의 말씀을 붙들고 그에게 기도하며 그의 돌보심과 도우심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될 것이다. 믿음은 경건 생활로 나타나고 그 둘은 같이 자라간다.

 

[11-12]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시온은 구약시대에 성막과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 계시며(왕상 8:30) 세상을 초월해 계시며(왕상 8:27) 온 우주에 충만하시지만(23:24), 그는 또한 시온에 특히 성막과 성전에 계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는 오늘날에는 교회 즉 성도들 안에 계신다(고전 3:16).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억울한 일들을 갚아주셨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행한 일들, 곧 그의 공의의 심판을 백성 중에 선포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행하신 의롭고 선한 일들을 체험하는 자마다 그를 찬송하며 그의 일들을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12절은 원문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되며 찬송과 전도의 이유를 말한다. ‘심문하신다는 원어(다라쉬)심사한다는 뜻 외에 갚는다는 뜻도 있다. ‘가난한 자라는 원어는 핍박당하는 자라는 뜻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증거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의인들의 피흘림당함을 갚으셨고 그들을 기억하시고 핍박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13-14]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다윗에게는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 많았고 그가 그들에게서 받는 고난과 곤고함은 컸다. ‘사망의 문은 사람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죽는다는 뜻이다. 다윗은 지금 원수들로 인해 곤고함이 심하여 죽을 지경에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자, 즉 그를 들어올려 건져내시고 피하게 하시는 자임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를 돌아보시고 그를 도우시기를 기도한다. 또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면 시온의 문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하고 증거하며 주의 구원을 기뻐하겠다고 말한다.

 

[15-16]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 셀라).” 힉가욘은 울리게 부르라는 음악적 용어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이방 나라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들을 빠뜨리려고 웅덩이를 파고 그들의 발로 걸리게 하려고 몰래 그물을 쳤다. 악인들은 경건한 자들이 그들과 동류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악을 지적하고 책망하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한다(7: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공의로 심판하심으로 자신을 알리신다(7:11; 9:4).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 자신이 살아계시며 악인들을 미워하시는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알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로, 경건하고 선한 자들을 해치려던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졌고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고 자기의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처분이며 악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하고 악함을 깨닫게 하시는 일이다. 불경건한 악인들의 악한 계획은 자신들만 해롭게 할 것이다(6-7; 6).

 

[17-18]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음부’(쉐올 לוֹא)는 지옥을 가리킨다.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는 성도를 가리킨다.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8절은 원문에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되며 그것은 불경건한 악인들이 지옥에 들어가는 이유를 보인다. 성도는 세상에서 악인들에게 미움과 핍박을 당하며 때때로 잊혀진 것 같으나 실상 잊혀진 것이 아니며 그의 소망도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통을 기억하시며 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며 악인들을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다.

 

[19-20]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는 것은 그가 일어나 행동하신다는 뜻이다. 다윗의 기도는 악인이 대적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께서 악인을 미워하시고 벌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또 그로 인해 성도가 보호와 위로를 얻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공의로운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시행하시면,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들이 무력하고 보잘것없는 인생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이라는 원어(에노쉬 שׁוֹנ)병약한’(아누쉬 שׁוּנאָ) 존재라는 뉘앙스를 가지는 말이다. 지금 악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해치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력하게 엎드러질 것이다.

      

시편 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신다. 그는 심판을 위해 보좌를 예비하셨다(7-8).

 

둘째로, 하나님의 원수들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원수들을 영영히 멸하실 것이다.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질 것이다(15). 악인들은 다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기를 간구할 수 있다.

 

셋째로, 성도들은 고난 중에서라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의를 변호하실 것이다(4). 그는 압제 당하는 자의 산성이 되시며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자(13).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하고 감사하며 그의 하신 일들을 항상 전파하자(1-2, 11, 14).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벌하시고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심을 체험할 때 더욱 그러할 수 있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1ot/1-19시편.htm#9편: 공의로 심판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