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구원
요한복음3장
[16절]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14)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 즉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세상’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온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물론, 세상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구원하실 자들을 선택하셨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39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이 있고 그들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택하신 자들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7:9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섰다”고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께는 외아들이 있으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언제 낳으셨는가? 그것은 영원 전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원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라는 성경 진리에 근거해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본질적 일체와 수적 하나 되심의 신비를 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주셨다’는 말은 아버지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주셨음을 뜻한다. 우리는 그것을 성육신(成肉身)이라고 부른다. 영원하신 아들께서 사람의 영과 육체를 취하여 사람으로 오셨다. ‘주셨다’는 말은 또 아버지께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내어주셨음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그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마 20:28). 그의 죽음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신 목적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멸망할 처지에 있었다. 죄인들의 마지막 상태는 지옥 형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신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는 영생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상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다(롬 3:20).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정하신 것이다. 이러한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1-22에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義)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말했고, 에베소서 2:8-9에서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상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은 내가 자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만세 전의 선택과 이끄심이 없이는 내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주께서는 요한복음 6:44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10:26에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증거는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했고(롬 5:8), 또 사도 요한도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하였다(요일 4:9-10).
[17-18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심판하다’는 원어(크리노)는 ‘정죄(定罪)하다’는 뜻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는 결코 정죄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롬 8:1).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정죄를 받은 것과 같다.
[19-21절]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구원을 받은 증거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 곧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정죄받았다는 증거는 빛을 멀리하고 어두움을 사랑하는 것이다. 불신앙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죄하셨다는 증거이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는다. 그 행위가 드러나고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적이나 간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는 낮을 두려워하며 밤을 좋아한다. 그러나 진리를 좇는 자, 즉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의를 행하고자 하는 자는 빛으로 나아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그는 자기 독생자를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로 십자가에 희생시키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셨다. 독생자는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의 자기 희생적 사랑이었다.
둘째로,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사람은 종교적 고행이나 도덕적 선행으로 구원 얻지 못한다. 사람의 행위는 더러운 누더기 옷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을 수 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과 같다. 그는 빛이 세상에 왔으나 빛으로 오지 않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뉜다. 하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이다. 그 둘 외에는 없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