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심
요한복음4장
[43-45절]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는 수가성에 이틀을 유하셨고 그 후에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다. 원문에는 44절에 ‘왜냐하면’이라는 말(가르 ga;r)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전에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었고 그래서 유대 땅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갈릴리에서도 자신을 증거하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일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이르시자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였다.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명절은 요한복음 2:13, 23에 언급된 유월절을 가리킬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며 여러 가지 표적들을 행하셨다(요 2:23). 그는 그 후 유대 땅에서 약 8개월 가량 지체하신 것 같다.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그의 갈릴리 전도사역은 그 후에 시작된 것 같다.
[46절]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오셨다. 그곳은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었다. 사도 요한은 포도주 기적의 확실함을 다시 한번 더 증거한다. 왕의 신하인 한 사람이 있었다. ‘왕의 신하’라는 헬라어(바실리코스)는 ‘왕에게 속한 높은 관리’를 가리킨다. 그는 사회적 신분이 있었고 아마 부유한 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어 있었다. 갈릴리 가나와 가버나움은 나사렛을 경유하여 약 40킬로미터18) 정도 되는 거리이었다. 그의 집무실은 가나에 있었으나 그의 집은 가버나움에 있었던 것 같다. 49, 51절에 ‘아이’라는 말(파이디온)[어린아이]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의 아들은 아직 나이가 어렸던 것 같다.
[47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그가 예수님께 와서 그렇게 청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유대 땅에서 기적 행하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소문에 의해 예수께 대한 약간의 믿음이 생겼다. 물론 그 믿음은 아직 매우 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고 아들을 위한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 그는 갈릴리 가나에 오신 예수께 그 일을 청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4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는 탄식어린 말투로 사람들 속에 믿음이 없음을 지적하셨다. 사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도 그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신다.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의 수단이다. 그 왕의 신하의 마음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에게도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아마 예수께서 내 아들을 고쳐주시면 그를 믿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49절]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그 신하는 자기 아이가 죽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서 고쳐주시기를 구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확신한 것 같지는 않다. 만일 그가 예수님을 신적 구주로 확신하였다면, 아마 한 백부장처럼 “주여, 말씀으로만 하소서. 그러면 내 아이가 낫겠나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수고스럽게 그의 집까지 내려오시기를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굳센 믿음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5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생긴다(롬 10:17).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사람이 믿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지 않으시면 말씀을 들어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말씀을 믿고 갔다. 그가 갔다는 것은 말씀을 믿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그가 믿지 못했다면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믿었기 때문에 가버나움으로 갔다.
[51-52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7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제7시는 오후 7시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면 ‘어제 제7시’라는 말은 그가 밤을 지나서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종들을 만났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확인하였고 그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하였다.
[53-54절]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그 신하는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직접 체험하였고 그와 그 온 가족이 믿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었다.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사역은 이런 일들 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게 하신다(요 20:30-31).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할 수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에는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서 고상하고 부유한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심한 열병으로 거의 죽게 된 아들처럼, 세상에는 죄로 인해 지옥에 던지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지옥에 던지우기 전에 구원이 필요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님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는 것이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구주로 세상에 오셨다. 그의 병고치시는 일은 그 왕의 신하와 그 온 가족들이 그를 믿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육신적으로 죽을 병자들을 고쳐주실 수 있는 구주가 아니고, 마귀의 종이 되어 죄만 짓던 자들,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시고 영생할 의인을 만드시는 구주이시다. 그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셋째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왕의 신하는 단지 아들의 병고침을 받은 것뿐 아니라, 그와 그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다. 믿음에는 세 단계가 있어 보인다. 첫째는 예수님에 관해 듣고 믿는 것이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예수께 나아와 간청하였다. 그의 믿음은 비록 약해도 예수께 나아와 무엇을 간구하는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널리 전해야 한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믿는 것이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고 갔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을 직접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써 믿을 수 있다. 셋째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그를 믿는 것이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그와 그의 온 가족들이 다 예수님을 믿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확인하고 그를 확신할 수 있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2nt/2-04요한복음.htm#4장: 생수를 주시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