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주석(전권). 존 칼빈주석 중심으로    

- 샬롬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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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1:1-9 인사와 감사     *고전1:10-17 고린도교회의 분쟁   *고전1:18-31 십자가의 도

    *고전2:1-16 그리스도의 마음 *고전3:1-15 사람을 자랑치 말라 *고전3:16-23 하나님의 성전

    *고전4:1-8 그리스도의 일꾼  *고전4:9-21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5:1-13 교회의 권징

    *고전6:1-20 하나님께 영광 *고전7:1-24 결혼생활    *고전7:25-40 처녀와 과부에게 권면

    *고전8:1-13 우상의 제물         *고전9:1-27 사도의 권리       *고전10:1-33 우상숭배

    *고전11:1-34 머리 수건과 성만찬  *고전12:1-31 성령의 은사, 몸과 지체 *고전13:1-13 사랑

    *고전14:1-40 예언과 방언 *고전15:1-11 그리스도의 부활 *고전15:12-34 죽은 사람의 부활

    *고전15:35-58 몸의 부활       *고전16:1-24 사랑의 교제         #고린도전서주석(전권)


인사와 감사

- 고린도전서1:1-9 -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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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문안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말한다. 그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이었기 때문에 권위가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 그를 사도로 세우셨기 때문에 그는 낙심치 않고 고난 가운데서도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주의 재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감사할 것이다.

 

1.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3)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1)

"사도"라는 말은, 이 단어가 먼저, 그 기원적으로는 일반적인 의미를 가진다. 더 나아가서, 이 말은 때때로 구별이 없이 모든 성직자들을 나타내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된다. 즉 이 말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그리스도의 대위임령과 관계없는 그런 사람들을 특별하게 지적하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두 가지 이유로 그들의 수에 들어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복음의 다른 사역자들에게 보다 그들에게 더 많은 존경이 주어졌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엄밀히 말하면 그들만이 모든 교회를 세울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바울이나 열두 제자들은 주께서 직접 불러 직분을 주셨지만,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어떻게 부르시는가? 몇 가지 증표들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증표는 그 직분을 위한 마음의 강렬한 소원이다. 바울은 빌립보서2:13에서,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증표는 그 직분을 위한 성령의 은사의 확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직분을 위해 합당한 자에게 은사를 주시고 준비시키신다고 본다. 그가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는 각각 다르다(12:6).

세 번째 증표는 회중들의 인정과 추천과 선택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일곱 집사를 택할 때 그들이 인정하는 자들을 추천하고 선택하였고, 사도들은 그들에게 기도하며 안수하였다(6:5-6).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2-3)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사람들이 모인 곳, 하나님보다는 사단이 더 기세를 부리는 허물이 많은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 이상한 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부하는 일이 없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런 부패 속에서도 어떤 형태의 교회의 유사성이 계속 나타나고 있을까? 거기에 대한 나(칼빈)의 대답은 이렇다. 즉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8:9)고 말씀하셨으므로 사도 바울이 이 약속을 기억하여, 교회 안에 많은 불의한 사람들이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수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이런 큰 영예를 교회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어떤 또는 다른 많은 악과 교훈과 예의에 대한 여러 가지 타락이 교회 안에 잠입하여 온 사실에도 불구하고, 참 교회의 표지가 아직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교회가 흠과 점도 없는 곳이라고 기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혹은 모든 것이 우리의 표현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모임으로부터 이 교회라는 명칭을 즉각 삭제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구절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완전한 순결이 결여된 곳에는 교회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시험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세상에서 자기만이 성자인 척하거나 또는 다른 위선자들처럼 자기 자신을 위주로 한 다른 종파를 분리하여 나가게 될 우려가 다분히 있다는 사실이다.

 

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인정하여야만 하였을까? 그것은 그가 그들 가운데 복음의 교훈이 있고 세례와 주님의 성만찬이 시행되며, 교회를 결정짓는 표지들을 그곳에서 발견하게 되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비록 일부 사람들이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또 오류가 온 교회에 스며들고 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교회의 이름이나 그 실재성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만찬 시행에 어떤 결함이 있고 훈련과 도덕적인 추세가 크게 퇴보하는 경향이 있으며, 복음의 순수성이 비난을 받고 그들 스스로가 허례허식과 가식에 몰두하며, 그들의 사역자들의 만용 때문에 여러 당파로 갈라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들이 근본적인 교훈-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며,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성직자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교회는 아직도 그들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계속되는 곳마다, 그리고 내가 이미 말한 대로 기본적인 교훈이 존속하는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는 구원의 은혜이다. 그것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죄사함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만 온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이 있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이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는 평강의 길을 알지 못했었다(3:16-17).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48:22; 57:21). 그러나 예수께서 참 평안을 주셨다(11:28; 14:27). 평안이라는 말 속에는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사회적 안정 등도 포함되어 있다.

세상은 언제나 불안정하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강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감사하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늘 받아 누려야 할 것이다.

 

2.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4-9)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4)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는 말은, 항상 감사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바른 모습이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살전5:18).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에는 감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항상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보살피신다는 것은 가장 큰 복이다. 비록 역경의 현실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는 결코 실패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2)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5-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라는 말은, 에라스무스의 번역은 이 모든 것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를 견고케 하며라고 하여 다른데, 지식과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 두 단어는 모든 것에 대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만일 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그 의미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모든 것이 더 잘 확립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로 인을 쳐주신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두 가지 방법으로 성취될 수 있는데, 그것은 기적이나, 혹은 내적인 성령의 증거를 통한 방법이다. 크리소스톰은 기적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나(칼빈)는 그것을 더 광범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확증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한, 바로 그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시다”(3:33)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적이 믿음을 확고히 하는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할지라도, 더 차원이 높은 근원, 곧 성령께서 참되시며, 또 그 보증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복음이 그들 가운데서 결실하게 하신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그때도 그 지식에 있어서 풍요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바울은 이것을 한 가지 방법으로만 나타낸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내면적인 역사와 은사의 탁월성과 다양성을 통하여, 그리고 기적들과 다른 여러 가지를 통하여 돕는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나 그리스도에게 관계되는 모든 것이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복음 증거의 전 목적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2:3)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나타내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는 말은, 성경이 하나님을 미쁘시다고 표현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불변성과 그의 영원하신 속성의 일관성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무엇이나 완성을 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11:29)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나(칼빈)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목적에는 동요함이 없으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심을 장난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역을 영원히 이루시는 것이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들을 확신하였다.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로 하여금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알게 하기 위하여 누가복음을 썼다(1:4). 우리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할 것이다(딤후3:14).

 

(3)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라는 말은, 이것이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이유이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구원을 받은 자의 소망의 첫 번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 후에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믿는 자의 삶의 원동력이요 위로일 것이다.

 

(4)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8)

“...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라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재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로마서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했다.

또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다.

 

(5)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9)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우리가 주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주를 대항하며 죄 가운데 살았을 때,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셨다면, 우리가 지금 부족과 연약이 많을지라도 끝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의 은혜 안에서 신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확실한 지식과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릴 것이다. 또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주의 재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감사할 것이다.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