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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일꾼

고린도전서4:1-8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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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곧 복음의 일꾼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

 

1.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1-5)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1)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는 말은, 복음은 만세 전부터 구약시대까지 감취었다가 말세에 밝히 계시된 비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첫째는 교회 목사의 직무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며, 둘째로 그는 어떤 사람이 명칭만을 내세우거나, 그 직무에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 직무에 따르는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 첫째로, 그는 교회의 교사에게 주어져야 하는 신분에 대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그는 사역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또 인간이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수준 이상으로 높게 평가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이 언급할 내용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그가 제한을 가하고 있는 두 가지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경멸하는 것은 사역자들의 퇴보를 가져오며, 또 한편 만일 그들이 그들 자신이 받아야할 이상의 처우를 받게 되면, 사역자들이 자유라는 유리한 점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방종하게 되기 때문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2)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는 말은, 바울은 단순한 칭호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소명을 받은 사람이 그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그 바른 소명만으로는 그 사람에게 충분한 것이 못 된다고 말한 것이다.

복음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 즉 그들이 충성된 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충성된다는 것은 항상 믿음으로 행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믿을 만한 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이다(5:22).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범사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한다.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3)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는 말은, 개개인이 자신들에 대하여 각 사람이 그의 형제에 대하여, 또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목사에 대하여 모든 종류의 판단을 금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므로, 우리는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악으로 판결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정에 의하여 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개인의 가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각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무슨 영예를 그 사람에게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멸시하고, 무모하게 하나님께만 속하는 심판권을 마치 그들 자신이 재판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이 그가 이미 언급한 인간의 날로써, 말하자면 인간이 심판주로 삼으신 그리스도의 날을 앞질러 처리하고 있는데, 그들은 각 사람에게 그의 위치에 대한 명예를 부여할 때에 어떤 사람은 높은 위치에, 또는 최하의 낮은 자리로 좌천시키고 있다.

바울은 사람의 판단을 크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의 이런 저런 판단에 너무 마음을 쓰면 주의 일을 힘이 있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은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을 판단치 않는다고 말한다.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라는 말은, 바울은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겼다. 우리가 바울처럼 행하면 어떤 환경 처지에서도 낙망치 않고 주의 일을 담대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그의 전 생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도로서의 직분을 수행한데 대하여서만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만일 그가 참으로 자신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로마서7:19에서 토로한 불평은 진실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 안에 거하고 있는 죄를 깨닫고, 그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도직에 관하여서는, 여기서 그가 취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문제인데, 그는 여기에서는 그 자신 흠이 없고 성실하게 그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므로, 어느 면으로든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에 대하여 순결하고 자유로움으로 의롭게 칭함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도들은 믿음의 확신을 기초적으로 뒤흔들기 위하여 이 구절의 우월성을 들고 있으며, 만일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전 생애를 비참한 불안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으리라고 참으로 나는 고백한다. 우리의 공적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신다면, 어떻게 우리가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가톨릭교도들의 중요한 근거로부터는 끊임없는 양심의 갈등밖에 일어날 것이 없다고 본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값이 없으신 자비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사실을 확신 있게 알게 된다.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5)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라는 말은, 두드러진 이단 사상이나 도덕적 오류도 판단치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 것은 지적하고 책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여기에 판단치 말라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점들, 특히 복음 사역자들의 진실성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들은 하나님만 아신다. 그러므로 그가 오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때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고 철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때 주의 선하고 충성된 종들은 위로와 칭찬을 들을 것이며, 악하고 불충성된 종들은 책망과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 때까지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점들을 거론하여 남을 비난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특히 복음 사역자들의 충성의 여부와 충성의 정도를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드러난 이단 사상과 오류는 지적되어야 하지만,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주님께 다 맡겨두면 된다. 주께서 완전히, 철저히 판단하실 날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무엇이나 모든 판단을 다 정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검사가 없는 조급하고 경솔한 판단을 정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각 사람의 특성을 편견 없는 눈으로 보지 않고, 야심을 가지고 보았으며, 어떤 사람은 과대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과소평가하는 잘못을 범하였으며, 또 각 개인의 공적을 결정하면서, 인간 이상으로 인간의 권리를 행사하였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것이 우리에게 허락되었고, 우리가 시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날까지 연기된 것은 어떤 것인가를 우리가 알아야 하고, 또 이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어떤 것은 지금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 있고, 다른 것은 그리스도의 날까지 파묻히고 숨겨져 있다.

 

2.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라. (6-8)

 

(1)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6)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라는 말은,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에 불과하며,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들을 지나치게 생각하여 자랑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종들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말고 자신의 무익함을 항상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뇨?라는 말은, 이 모든 것을 구별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여 구원하셨고 또 그 가운데서 어떤 이들에게 교회의 직분까지 주셨다.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직분은 우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신 것들이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육신의 생명도 내 것이 아니고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세상을 떠나갈 수밖에 없다. 건강도 내 것 같지만 하루아침에 그것이 나를 떠나갈 수 있다. 부모님도,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다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섬기게 된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죄사함받고 천국과 영생을 기업으로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성령을 받은 것 등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들이다.

이 세상의 모든 영적인 것들과 육적인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본래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이 남의 것을 가지고 자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하고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만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3)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라는 말은, 바울은 그들의 배은망덕을 은연중에 책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를 아주 오만하게 멸시하며, 더구나 그들이 모든 것을 얻은 사람들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를 제외하고라고 말하고 있다. ‘아볼로와 나는, 우리의 일을 하였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너희들에게 주신 것이므로, 우리가 너희들에게 한 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동시에 너희들이 모든 것을 받았고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은 얼마나 악한 일인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고린도 교인들은 물질적 부요함과 풍족함, 또 정신적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 서로 분쟁하고 파당을 만든다면 그 부요와 풍족, 그 자유는 복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을 겸손케 하는 가난과 속박이 그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라는 말에서, 그는 너희 눈에는 자신이 탁월한 사람같이 보여서 나와 나의 동료들을 주저 없이 멸시하지만 그러나 너희들의 자만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를 살펴보아라. 우리가 나누어주지 않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너희는 자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의 복음을 갖는 것이 너희를 자랑스럽게 한다면, 그 복음을 너희들에게 전하여 주는 사역을 한 우리들에게야 그 영광이 더욱 클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참으로 이 어리석은 태도는 모든 교만한 사람들에게 공통되며 그들이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때, 그들은 모든 축복을 스스로 박탈하고, 더 나아가서는 영원한 구원의 소망까지도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라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은,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들이 어떤 행복을 가진다면 그들의 행복을 그가 싫어하는 것은 아니며, 처음부터 그는 그들을 지배하기를 원치 않았고, 다만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를 원할 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왕국은 가상적이고 그들의 기쁨은 가짜이고 유해한 것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오직 참된 영광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의 머리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며,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의 분량에 따르는 것이다.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