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주석(전권) | 존 칼빈주석 중심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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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원리
- 로마서6:12-23 -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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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는 순종의 원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의 종이 된다. 죄에게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되어 죄 안에 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고 의(義) 안에 살다가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다.
1. 우리는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린다. (12-13절)
(1)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2절)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라는 이 권고의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갖는 교제에 관하여 바울이 말했던 교리의 당연한 귀결이다. 비록 죄가 우리 안에 거하여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주장하는 권능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왜냐하면 성화의 권능이 죄의 권능보다 우세해야 되기 때문이며,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들인 것을 우리의 생활로 증거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몸"이라는 말은, 내(칼빈)가 이미 주장한 바대로, 육체의 피부와 뼈 등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인간의 전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의미를 본문에서 아주 확실하게 추론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몸의 부분들의 관해, 곧 언급하게 되는 다른 문구에서는 영혼까지 아울러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처럼 땅에 속한 인간을 업신여겨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본성이 부패한 까닭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혈통에 합당한 것을 아무 것도 우리가 열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세기6:3에서도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야수들처럼 육체가 된 것을 불평하시면서, 사람에게 땅에 속한 성품 외에는 아무 것도 허락하지를 않으셨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한 그리스도의 선언(요3:6)도 같은 개념을 지니고 있다.
영혼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반론은, 우리의 현재의 타락한 상태에서는 우리의 영혼이 땅에만 집착해 있고, 그리고 우리의 육신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영혼의 본래의 탁월함에 전락해 버렸다는 주장에 의해서 쉽게 응수될 수가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본성이 육체적인 것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인간이 하늘의 은혜를 상실당하였고, 그리고 단지 일종의 믿을 수 없는 그림자나 형상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몸을 죽을 몸이라고 경멸하여 또 언급한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전본성이 죽음과 파멸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줄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바울은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 거하고, 우리를 충동하여 죄를 짓게 하며, 우리의 모든 악한 행동과 악의 근원이 되는 원시적 부패에 죄의 오명을 붙여 주고 있다. 바울은 죄와 우리들 사이에 정욕을 개재해 놓음으로 해서, 우리의 무절제한 욕망들이 죄의 칙령이요 명령인 한, 죄가 말하자면, 우리 위에 왕으로 군림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3절)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라는 말은, 마치 사단의 창녀들이기라도 하듯이 온갖 종류의 가증한 주행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지체를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권리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주장하는 것인지에 대해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죄는 몸의 욕심들을 통해 활동한다(약1:15). 몸은 의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성도는 죄에 대해 죽은 자이므로 죄가 몸을 주장치 못하도록 욕심들을 통제하고 절제해야 하고 죄에 복종치 말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몸을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지체"는 몸의 부분들, 즉 눈과 귀와 입, 손과 발 등을 가리킨다. 성도는 이제 몸의 모든 부분을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며 더럽고 악한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며 만지고 그런 곳으로 갔을지라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 몸을 거룩하게 드리고 의롭고 선한 것만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해야 한다.
2. 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14-15절)
(1)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4절)
바울은 신자들이 그들의 모든 힘을 의에 순종하는 데 사용하도록 권면한 바 있었다. 그러나 신자들은 육체의 찌꺼기를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불확실하게 행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음으로 해서 의기소침하고 낙담하지 않도록, 그들의 행위가 지금은 율법의 엄격한 규칙에 준하여 강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결을 용서하기고, 친절과 사면을 베풀어 그들을 용납하고 계신다는 점을 생각게 하여 그는 그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는 위로의 기회로 삼고 있다.
"법아래 있다"고 하는 것은 죽은 문자가 우리를 정죄한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율법이 우리에게 완전한 의를 구하고, 그리고 율법의 아무 부분이라도 범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을 선언하는 한, 우리가 더 이상 율법에 복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구속의 두 요소로 이해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전가시켜 주는 수단인 죄의 용서와, 그가 우리를 새롭게 빚어 선한 일을 하게 하는 방편인 성령의 성화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율법의 엄격한 요구로부터 자유롭다. 더욱이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가 율법의 멍에에 얽매어 있으며, 그것의 정죄 아래 붙들려 있다는 것을 사도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사람들이 율법 아래 있는 한, 그들은 죄의 지배를 받는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성도가 자기 몸을 죄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이유는 죄가 그들을 주관치 못하기 때문이다. 또 죄가 그를 주관치 못하는 이유는 그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기 때문에 율법이 요구하는 법적 책임과 그 형벌이 제거되었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말한다. 의롭다 하심 곧 칭의(稱義)는 법적인 구원이다. 성도는 법적으로 완전한 의를 이미 얻었다.
(2)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5절)
바울은 롬6:1-2에서도 성도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계속 머물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 후 "그럴 수 없다"고 분명하게 대답했었다. 그는 여기서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가 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되는가 하고 질문한 후 "그럴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대답한다. 그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가 죄짓는 생활을 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죄 가운데 거해서는 안 된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하였다(요일3:9-10).
3.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 (16-18절)
(1)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6절)
바울은 성도가 구원받았던 처음 순간을 언급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순간이다. 우리는 본래 죄에게 순종하고 죄만 짓고 살았던 죄의 종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들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이었고, 그를 믿는 자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2)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7-18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는 말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방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그리고는 은혜가 풍성하지 못하게 될 때, 온 인류가 죄의 지배 아래 붙잡히게 되나, 은혜가 그 힘을 발휘하자마자 죄의 왕국이 끝장나 버린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될 때는 우리는 죄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거듭남의 영이 이 은혜라는 말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라는 말은, 우리는 그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구원을 받았다. "마음으로"라는 원어는 "마음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라는 뜻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마음에서 우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마음으로 순종한 결과 죄에게서 해방되고 의에게 종이 되었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에 근거하여 우리의 모든 죄는 씻음 받고 우리는 단번에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았다. 우리는 죄에게서 자유하게 되고 의에게 종이 되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의 열매를 맺다가 영생에 이른다. (19-22절)
(1)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19절)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의란 율법과 의로운 생활의 규칙으로 나(칼빈)는 믿는다. 그 율법의 의는 성화이며, 이는 신자들로 하여금 몸을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토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육신이 연약하다는 것은 우리 속에 남은 죄성을 가리킨다.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에게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거룩함에 이르라는 권면이 필요한 것이다. 성도는 성화(聖化)가 당연한 목표라는 권면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다.
(2)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0-21절)
우리가 죄의 종이었을 때는 죄만 지었기 때문에 의에 대해 자유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에 맺은 열매라는 것은 더러운 죄들이었으므로 부끄러운 것들뿐이었고 그 결국은 사망이었다.
(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2절)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라는 말은, 죄는 금생에서, 악한 양심의 고통을 가져다주고, 이 생명이 끝난 후에는 영원한 사망을 가져다준다. 이에 반해서 의는 우리에게 금생에서는 거룩의 열매를 맺혀주며, 장래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소망케 해준다.
이제 성도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으로 인해 죄에게서 해방되었다. 죄의 종이 죄에게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하나님께 종이 되는 자유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종이 되는 것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다(마 11:30).
5.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다. (23절)
(1) "죄의 삯은 사망이요."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는 말은, 삯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완전하다. 왜냐하면 사망은 사악한 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23절)
"하나님의 은사는 ... 영생이니라."라는 말은, "영생은 하나님의 은사이니라."라고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렇게 번역하면, 의가 주어가 되고 하나님의 은사는 술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의미는 대조법을 드러내주지 못한다. 죄는, 바울이 이미 가르쳐 준대로, 사망만을 낳는다. 그런데 그는 이제 하나님의 은사, 즉 우리의 칭의와 성화가 영생의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즉, 사망의 원인이 죄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바 의는 우리에게 영생을 회복시켜 준다.
그런데 한편,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와 순전하신 사랑에 전적으로 기인한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추론할 수가 있다.
바울은 의의 삯은 영생이라고 진술하여 두 구문을 걸맞게 할 수도 있었겠으나, 우리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이 은사 역시 아무 것도 수반하지 않는 단 하나의 은사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들의 의로, 옷 입은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께 화목이 되고,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어 거룩함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을 덧붙여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위엄에 대한 어떠한 자만심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