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 사도행전 1:3~5 -
샬롬선교회
[사도행전 1:3~5]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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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의 마지막에는 이미 예수님의 승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왜 4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는가. 또한 아버지의 약속인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이스라엘의 회복' 이야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어떤 의미와 위치를 갖는지 등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의 서문이 몇 절까지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여기서는 1절~11절까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서문의 키워드는 4절에 있는 '기다리라'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사도들(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고 했던 중요한 점입니다.
1. 예수님의 승천까지 40일간의 현현의 의미
[사도행전 1:3~5] 본문
=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왜 40일이 필요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도들이 앞으로 새로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를 위해서였습니다.
(1)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여러 곳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① 부활하신 그날 아침에 무덤을 찾아온 여자들에게(마태복음 28:9)
② 막달라 마리아에게(마가복음 16:9, 요한복음 20:14~17)
③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던 두 제자(누가복음 24:13~31)
④ 시몬 베드로에게(누가복음 24:34)
⑤ 부활하신 날 저녁,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에게(누가복음 24:36, 요한복음 20:19)
⑥ 그 후 8일 후,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요한복음 20:26)
⑦ 갈릴리 어느 산에서 11명의 제자들에게(마태복음 28:16~17)
⑧ 디베랴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에게(요한복음 21:1~4)
⑨ 오백 명 이상의 형제들에게, 그것도 동시에(고린도전서 15:6)
- 게다가 예수님의 현현은 수많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이루어졌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사도행전 10:41) 함께 하신 것을 들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 '기다리라'는 말의 원어는 '페리메노' περιμένω로 이 구절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메노' μένω는 '머무르다'라는 뜻으로 요한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거기에 접두어로서 '페리' περι가 붙어 있습니다. '~을 넘어서', '필요 이상으로'라는 뜻으로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 '페리메노' περιμένω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에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기 위해 위로부터의 힘이 부여되는 중요한 주님의 명령으로서의 '기다리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2. 성령세례와 이스라엘의 부흥의 관계
+ 예수님께서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함께 모여 있던 제자들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부흥(회복)의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결코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라 말씀의 근거(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질문이었습니다.
+ 이 40일 동안 예수님은 단순히 자신이 살아계신다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실 때, 아마도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에 기록된 것(구약성경)이 모두 성취된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구약에서 '새 영'이라고 하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에스겔서 11:19에는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새 영'이 주어질 때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동, 11:17)는 예언도 동시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즉 '새 영을 주실 것'과 '이스라엘의 회복'은 한 세트인 것입니다.
+ 또한 '영'의 원어는 '루아흐'로 '숨결'로도 번역됩니다. 그것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에스겔서 37장에는 '마른 뼈의 환상'이 나오는데, 사방에서 '숨'이 불어오면 그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 족속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37:11)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에스겔 37:14)라고 말씀하십니다.
+ 제자들은 이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물었다'의 원어는 '에페로타오' ἐπερωτάω로 '간절히 묻다'라는 뜻입니다. 네스토레 27판에서는 '에로토오' ερωτάω로 개정되어 있는데, '묻다, 묻다'라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든 시제는 '미완료'이며, 이 점이 중요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계속적으로 반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일제히 예수님께 거듭거듭 '새 영을 받는 것'과 '이스라엘의 회복'과의 연관성에 대해 납득할 때까지 열심히 묻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사도행전 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부흥)을 뜻합니다. 그 일은 결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며, 또한 거스르는 일도 아니고, 확실히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위로 정하신 일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현 시기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독점 사항이며,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에스겔을 통해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 미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은 지금까지 계시된 노선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해 온 것은 미루어지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노선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알 수 없었던 일들이 여기서 처음으로 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 첫머리에 '그러나'('알라' ἀλλά)라는 강한 접속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새로운 노선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로운 영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은 미뤄진 것일 뿐, 때가 되면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신학의 폐해로 인해 이 하나님의 마음이 숨겨져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 그 잘못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도대체 약속된 성령세례는 무엇을 위해 주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의 증인(혹은 '증인')', 즉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함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 5절의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말씀을 8절에서는 '성령이 너희 위에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부여하는 목적은 '증인'('마르투스' μάρτυς)이 되는 것입니다. '마르투스'는 순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증언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성령세례'의 의미이며 제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인 것입니다.
3. 구름에 싸여 승천하신 예수님
[사도행전 1:9~11]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한 누가복음 24:51에는 손을 들어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라고만 되어 있지만, 사도행전에는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구름'('네페레' νεφελη)은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입니다.
+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시나이 산 정상에서 구름 속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광야의 성막에서의 임재는 구름으로 나타났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도 역시 구름이 나타났고, 제사장들은 그 임재에 압도되어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입니다.
+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변모하실 때 구름이 일어나 제자들을 덮었습니다. 그러자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택한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누가복음 9:34~35)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구름에 싸여 승천하심으로써 그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사도행전 1:11, 마태복음 24:30, 26:64, 요한계시록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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