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름의 능력

- 사도행전 3:1~26 -

샬롬선교회 


+++ 3장에는 '미문'(성전의 '동문')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사도들에 의해 많은 기이한 표적과 이적들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2:43). 누가는 왜 3'미문'에서 일어난 기적을 자세히 다루었을까? 그것은 예수가 행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계속된 증거이며, 이 사건이 유대 당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당국이 문제 삼은 것은 사도들의 활동이 어떤 권위로, 즉 누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4:7).

 

1.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예수님은 사도행전 1:8에서 성령이 너희 위에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8절 후반부에 보면 '예수의 증인'이 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나미스)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첫 번째는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나라의 말로 말하게 된 것'(사도행전 2:4)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이적'이었습니다(, 2:11).

그러나 3장에 이르러서는 성령의 능력이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미문'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선천적으로 앉은뱅이'(40)가 궁궐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구하기 위해 매일 '미문'(동문)이라고 불리는 궁궐 문으로 끌려왔습니다. 그곳은 이방인의 정원입니다. 그곳에서 기도하기 위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궁궐에 들어가려고 할 때, 그 남자는 사도들에게 자선을 구한 것입니다. '구하다'의 원어는 '에로타 오'(ἐρωτάω)의 미완료 시제로, '자꾸만 자선을 받기를 구했다'는 뉘앙스입니다.

 

+ 이 요청에 대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그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우리를 보라고 말한다. 남자는 무언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들에게 눈을 부어주었습니다. '눈을 부어라'로 번역된 원어는 '에페코' έπέχω로 신약성경에서 5번밖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 의미는 단순히 눈을 돌린다는 의미보다는 마음과 생각을 돌리는 것, 스스로 행하고 거기에 머무르는 것, 거기서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것입니다. 그런 교감이 그 남자와 사도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무언가를 시작하실 때의 거룩한 비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도들의 '우리를 보라'는 말에 남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기대감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금은보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원문에는 '일어나라'는 말이 있다) 걸어가라"(3:6).

 

+ 베드로가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에 주목해 보자. 그것은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이름에는 두 개의 이름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나사렛 예수'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전자의 '나사렛 예수''나사렛 사람 예수'와 동의어다. 이는 지상에 실제로 살았던 예수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십자가와 부활 후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후 주어진 이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의 이름''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빌립보서 2:9). 누가복음 10:17주여. 주의 이름을 사용하면 악령들도 우리에게 복종하리이다"주의 이름은 아마도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일 것입니다.

 

+ '나사렛 예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신 분임을 나타내는 것이 사도행전 3장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권위와 능력)가 이 땅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누가는 이를 '높은 데서 능력을 입히신다'(24:49)고 표현했습니다.

 

+ “성령이 너희 위에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니”(1:8)라는 '권능'은 보좌에 앉으셔서 주신 모든 이름보다 더 큰 이름인 '예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능()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4:12)고 말할 정도로 '(권능)을 가진 이름(존재)입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 전능의 이름, 사랑의 이름, 은혜의 이름, 치유의 이름, 구원의 이름, 승리의 이름, 증거의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름'입니다.

 

+ '보좌에 관한 가르침''십자가에 관한 가르침'과 함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관한 가르침'만으로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관한 가르침'에만 머물러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좌에 관한 가르침''예수님의 이름'의 권위와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시고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후 주신 새로운 이름입니다. 지상에서는 '예수'였지만, 승천 후에는 '예수의 이름'(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정확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후에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능력 있는 '예수님의 이름'을 단순히 식사 전 감사기도에만 사용하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이야기입니다.

 

2.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힘은 '부활의 힘'이다.

 

+ 3장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활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먼저 그 구절을 들어보겠습니다.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22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6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1) '에게일로' έγείρω

'에게이로'라는 동사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가리킬 때 많이 쓰입니다. 사도행전 3:15은 바로 그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태어난 자'가 일어서는 것은 바로 부활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 '아니스테미' ανιστημι

'아니스테미'라는 동사는 누워 있는 것을 일으켜 세운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3:26의 개역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 그 역주에는 “‘살리신다세우다혹은 일으키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지만, 그렇게 번역하면 예수님의 탄생을 의미하게 되므로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부활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아니스테미'는 누가복음의 특유한 단어로 108회 중 71회가 누가복음(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많은 '아니스테미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a. 회당 관리인 야이로라는 사람의 외동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그 집 아이가 있는 방으로 가셔서 아이의 손을 잡고 타리타 쿠미”(번역하면 '소녀야, 일어나거라'라는 뜻)라고 말씀하시자, 소녀는 즉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5:42). 주위가 놀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b. 베드로의 시어머니가 심한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베갯머리에서 열을 내리셨다. 그러자 열이 곧 떨어지고, 그녀는 곧 일어나서 그들을 대접하기 시작했습니다(4:38~39).

 

c.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은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 침상을 걷어차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순식간에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침상을 걷어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5:24~25).

 

(3) '히스테미' ίστημι

'히스테미'라는 동사는 보통 '서다'를 의미하는 동사이지만, 그리스어로 아오리스트 명령형이 쓰인 경우에는 모두 스스로, 자발적, 주체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 '(자기 발로) 서다', '굳건히 서다', '굳건히 서다', '결단력 있게 서다'라는 뜻입니다.   

 

+++ 사도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을 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일어나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실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능은 바로 그런 권능입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하고, '예수의 이름'의 능력대로 선한 관이 되어 그 이름을 증거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영적 힘은 실로 '예수님의 이름'에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예수 이름의 나타남'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더구나 이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앉은뱅이'가 성전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그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적 행위입니다. 다음 예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사야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https://meigata-bokushin.secret.jp/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