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투구를 쓰고
- 에베소서 6:11~17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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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로 번역된 어휘와 '관(冠)'으로 번역된 어휘는 전혀 다른 어휘입니다. 전자는 전투를 위한 하나님의 무구(武具)로서의 어휘이고, '관'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어휘라는 것입니다.
1. 쓰는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머리에 쓰는 것'(관, 투구)
(1) '머리에 쓰는 것'의 의미
+ 머리는 전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곳이 손상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부분을 보호하는 '투구'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우리가 쓰지 않으면 적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투구'는 도대체 어떤 무구(武具)일까?
+ 그 전에, 다양한 머리에 쓰는 것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왕관, 일본 귀족들이 쓰던 '관', 병사들이 쓰던 '투구' - 북유럽, 로마의 병사들, 그리고 대제사장이 쓰던 '두건'가 있습니다. 왕관, 두건, 대제사장의 두건은 단순히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쓰는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국 등에서는 그 계급을 형태뿐만 아니라 육모(六毛)로 구분했다고 합니다. 즉,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자'(헬멧)는 단순히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고 있는 사람의 지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관의 의미
+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씌워진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 면류관도 여러 가지 형용사가 붙은 표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① [시편 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② [시편 65:11]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③ [시편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④ [마가복음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⑤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 위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 '은혜의 면류관', '은혜와 긍휼의 면류관'을 씌워주신 자들입니다. 즉, 그 면류관을 쓴 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 은혜와 긍휼을 돋보이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께 귀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그런 면류관을 씌워줄 수 있을까?
+ 그런데 성경에는 신기한 면류관이 나옵니다. 그것은 성자 예수님이 인간에 의해 씌워진 '가시 면류관'입니다. 이것은 가시가 달린 가시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것으로, 머리에 씌우는 것만으로도 피가 흘러나옵니다. 가시 면류관 -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에게 씌운 치욕의 면류관이며, 동시에 인간의 죄악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 '가시 면류관'을 쓰신 아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늘에서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을 쓰신 것을 요한계시록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12 참조)
+ 이러한 사실 때문에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야고보서 1:12)라고,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 '은혜와 긍휼의 면류관', 그리고 썩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그리스도 안에서 씌워진 자임을 원수에게 드러내는 것이 '구원의 투구'를 씌운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어떤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까? 원수인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알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면 사탄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율법주의적 신앙에서 은혜로 인한 신앙으로
(1) 지금은 은혜의 때
+ 우리가 하나님이 씌워주신 면류관(병사들로 말하면 '투구'이라고 표현합니다)은 '은혜의 면류관', '은혜와 긍휼의 면류관'이라는 것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율법주의적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믿습니다. 즉,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에 계속 서 있지 않으면, 우리의 머리에 원수의 총알이 박혀서 죽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안에서 산다는 것을 잘 모르는, 즉 진정한 구원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수의 전략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로마서 6:14).
+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 종지부를 찍었고, '율법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굳게 연합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이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씌워주신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 '은혜의 면류관', '은혜와 긍휼의 면류관'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 면류관은 우리를 겸손한 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면류관은 우리의 노력을 전혀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력이나 수고와 같은 요소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 '구원의 투구'는 다른 말로 하면 '은혜로 인한 구원의 투구'를 적에게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은혜의 면류관'은 하나님의 자녀, 왕 같은 제사장들의 표징으로 주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이 면류관을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날마다 감사한다면, 당신은 적의 공격에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도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낙심하거나 자신감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설령 사람들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더라도, 혹은 스스로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더라도 건전한 자아 이미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려다 지치거나, 남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속이고, 결국에는 평안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헛된 노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나타내는 '은혜의 면류관'이라는 '구원의 투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2) 신앙생활의 두 가지 유형
+ 그런데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 신앙생활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주의적 신앙', 다른 하나는 '은혜에 의한 신앙'입니다. 이 두 가지는 실제로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기보다는 어느 한 부분이 겹쳐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적 신앙'입니다. 물론 신앙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열렬히 신을 찾는데, 그것이 성공을 도와주는 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로는 기도에 있어서도, 봉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해를 끼치고, 노력하면 할수록 비참한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안식을 얻지 못하고 좌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 율법주의적 신앙의 특징은 그리스도인이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상향을 가지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자신의 노력과 수고로움으로 메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진흙탕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행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은 믿음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쉬는 안식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혹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은 율법주의의 함정이며 사탄의 계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믿음, 즉 '행하지 않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위한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에 초점을 맞추고 관여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 위해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며 친밀하게 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결과로 주님은 우리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쁠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게 됩니다. 마리아처럼 그리스도께 몸을 맡기고 편안히 쉬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이것을 가르치고 있는 중요한 성경 본문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10:38~4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여기서 볼 수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의 본보기'를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에서 “꼭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라는 말씀에 주목하세요. 라는 말씀에 주목해 보십시오. '한 가지'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One Thing입니다. 이 One Thing을 소중히 여기며 항상 마리아처럼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이것이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의 의미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본질을 추구한 다윗의 라이프 스타일이었습니다. 이것을 가장 깊은 의미로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을 두는 것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런 헛소리를 하니까 일본 기독교 인구는 1%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부흥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의 부흥을 위해 당신은 더 많이(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열심히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라고 촉구하는 목소리입니다. “당신이 안일하게 주님과 교제하는 동안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해 가고 있어요"라고 부추깁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더 열심히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이렇게 된 거다.......라고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도록 몰아붙입니다. 그리고 죄책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히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이 적의 함정입니다. 원수의 계략입니다. 만약 우리가 원수의 책략에 동조한다면, 반드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중한 나중을 잃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무기로 준비된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https://meigata-bokushin.secret.jp/swfu/d/auto_fZGMXW.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