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주석(전권) | 존 칼빈주석 중심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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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세상
- 로마서13:1-14 -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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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가정과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생활의 태도에 관하여 교훈한다.
1.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1-7절)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라는 말은, 오직 모든 지상적인 권세가 폐지될 때라야 그리스도의 나라가 높임을 받으며, 그들이 모든 인간적인 노예의 멍에를 벗어버릴 경우에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용하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믿는 정신없는 사람들이 어느 때나 약간씩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류는 누구보다도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곧 그들은 구속주가 오시기 전까지 크게 번창하던 왕국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의 후예들이 당신께서 나타나신 뒤에 계속 노예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지간의 유일한 주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왕국을 낚아채려고 음모하는 자들을 합법적인 지도자와 지배자들로 인정하는 것이 얼핏 모순된 것으로 보였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라는 말은, 우리가 위정자들에게 굴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당신의 권능을 무시하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전복하려고 발버둥치는 자요, 하나님 자신을 저항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세속 정부의 주인공이 되는 분의 섭리를 무시하는 것은 당신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위정자들의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대목을 역병, 기근, 전쟁, 기타 죄악에 대한 처벌이 당신에게서 왔다는 식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이 세상의 공정하고 합법적인 통치를 위해서 그들을 임명하셨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독재 정치와 불공평한 권위는 임명을 받은 정부가 아니지만, 그래도 통치권은 인류의 안녕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방지하고 다른 악에 대책을 추구하는 것이 합법적인 만큼 사도는 우리에게 자발적으로 위정자들의 권리와 권위를 인류에게 유용한 것으로 대하고 존경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악에 대해서 부과하는 처벌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부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께서 적법한 질서 유지를 위해서 고의적으로 정해 놓으신 수단이다.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이라는 말은, 어느 누구든 하나님을 저항하는 자는 자신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이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반대하는 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이 저주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면 바울의 의도는 권위에 저항하는 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셈이 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항하려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종말을 우리에게 전반적으로 그려 보여주고 있다.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3절)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라는 말은, 지배자들의 유용성이란 주께서 이 수단을 통해서 선인들의 평화를 제공하고, 악인들의 외고집을 제지하려고 의도하셨다는 점이다.
이 두 방법을 통해서 인류의 안전이 확보되고 있다. 악인들의 횡포가 저지되지 않고 무고한 자들이 그들의 고집으로부터 보호되지 않는다면 전반적인 파멸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인류를 파멸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대책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이것을 조심스럽게 보존해야 할 것이요, 우리가 인류의 공공연한 적이라는 핀잔을 듣는 일이 없어야겠다.
그는 여기서 위정자의 참되고 자연스런 임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여기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게 지도자에게 돌려 마땅한 순종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악한 지도자가 주님께서 백성의 죄악을 처벌하는 채찍이라면, 하나님의 이 탁월한 축복이 저주로 변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책임이라는 점을 반성하도록 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선한 규례’를 존귀하게 여기도록 하자.
지도자들이란 그들의 독재적인 통치에 있어서 어느 정도 공정한 통치에 대한 유사성을 유지하지 않으면서 선하고 탁월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에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면에서 인간 사회를 보호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독재정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4절)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자를 뜻한다. 바울은 주님께서 손에 쥐어준 칼의 용도에서 이 점을 입증하고 있다. 이것은 칼의 권리를 입증하는 훌륭한 대목이다. 주님께서 위정자를 무장하면서 그에게 칼을 사용하도록 위임하셨다면, 그가 범죄자들을 사망으로 처벌할 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재앙을 수행함으로써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자들의 피를 흘리는 것을 부당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을 상대로 다투는 것이다.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5-7절)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양심을 묶어놓는 이 굴복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이 설령 무장되어 있지 않고 그를 성가시게 하고 무시해도 벌을 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처벌의 위협이 우리 위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는 것 못지않게 이런 일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개인에게는 주님께서 우리 위에 세워 놓은 자의 권위를 박탈할 권리가 없다.
이 전체 강론은 공적인 통치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양심을 상대로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자들이 이 문맥에서 그들의 참람한 독재를 확립하려는 것은 공연한 짓이다.
2.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8-10절)
(1)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8절)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라는 말은, 나(칼빈)는 이 대목을 단순한 의미로 보는 편을 택하는 데 그 이유는 위정자들의 권력에 관한 교훈을 사랑에 대한 율법과 관련시킴으로써 아무도 그것을 빈약한 것으로 여기는 일이 없게 하는데 바울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지도자들에게 순종할 것을 요청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이 마땅히 사랑의 법에 따라야만 행동해야 옳은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착한 사람들이 번영하기를 바란다면(그렇지 않는 것은 몰인정한 것이 되겠지만), 여러분은 마땅히 법과 판단이 득세하도록 힘쓰는 가운데 백성들이 법의 보호자들에게 순종하도록 해야 할 터인데, 그 이유는 이들이 우리들에게 평화를 누리게 해주기 때문입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무정부 상태를 도입하는 것이 사랑을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은 무정부상태의 즉각적인 결과란 국가 전체의 혼란이기 때문이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라는 말은, 바울의 의도는 율법의 모든 명령을 사랑으로 요약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사랑을 유지할 때 계명을 제대로 순종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을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담이 있다면 어느 것이든 감당할 준비를 갖추는 셈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리가 위정자들에게 바쳐야 하는 순종을 두고 얘기할 때 말한 교훈을 확증하고 있다. 이 순종은 결코 사랑 가운데 가장 하찮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여기서 인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안 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무데서고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말 속에는 율법 준수가 참된 의라는 점에 대한 부정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율법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것을 수행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만큼, 우리는 모든 인간들이 거기서 제외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다는 점을 주장하는 바이다.
(2)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9-10절)
"간음하지 말라."라는 말은, 우리는 그가 말없이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은 위정자들에 대한 순종이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형제애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결코 가장 하찮은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3.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 (11-14절)
(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1-12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는 말은, "밤"이란 단어를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뜻하며, 이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밤에 그러듯이 방황하고 잠들어 있기 마련이다. 불신자들은 눈이 멀 뿐 아니라 우매한 두 질고 밑에서 이 잠이란, 그의 말대로, 사망에 의한 형상이다. ‘빛’이란 단어를 통해서 그는 의의 태양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솟아오르시면서 사용하는 신령한 진리의 계시를 뜻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란 우리가 무장을 갖추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실천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빛의 갑옷’이란 명예롭고, 온건하며, 정숙한 행위들을 뜻하는데 이것은 대개 낮에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바울의 행위보다 ‘갑옷’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설명 형식으로 깨어야 할 “적합한 시간”이 되었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크로노스)가 아니라 (가이로스)는 올바른 순간, 또는 호기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믿기 시작했을 때보다 이제 우리에게 더 가깝다”라는 뜻으로 읽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신앙 이전의 시기를 두고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라는 말은, 여기서 ‘낮’이란 다른 곳에서처럼 신앙의 빛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들이 지금 복음에서 그것의 시초를 보는 천상적인 생활의 복된 광채를 뜻한다.
그가 간략하게 언급하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마치 우리가 동틈을 보고서 태양의 완연한 빛이 가깝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밤이 다 지난 것으로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생명의 빛을 보지 못하는 불신자들처럼 흑암으로 덮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활의 소망이 복음에 의해서 우리 눈앞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2)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4-15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는 말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모든 면에서 있어서 당신의 영의 능력에 의해서 방어되며 따라서 성결의 모든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그는 또한 다른 문맥에서 신자들이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갈3:27).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