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주석(전권)

존 칼빈주석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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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教会=Heian Church



새 생활을 위한 권면

- 로마서12:1-13 -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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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 먼저 다루어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왔다. ,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의를 찾아야 하며, 오직 당신의 자비로부터만 우리의 구원을 사모해야 하며, 우리의 모든 축복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를 위해 쌓여지며, 날마다 우리에게 제공되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아주 질서정연한 이론을 통해서 우리의 도덕적 행동의 규제 문제, 곧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에 대하여 다루기 시작한다.

 

1.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 (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라는 말은,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적인 지식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생활로 거듭나며, 우리의 생명 그 자체는 거룩한 가르침과 교훈에 의해서 그 형태를 갖추며 규제를 받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가 먼저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의의 원천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지 않은 채, 우리의 생활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고 열성을 부리는 것은 공연한 짓이다.

 

모든 의의 원천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것이 바로 죽은 자들로부터 사람을 일으킨다는 말의 의미이다.

다들 아는 대로 불순한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에 대해서 선언하는 모든 내용을, 오직 육신에 빠지려는 목적으로, 게걸스럽게 붙잡고 늘어진다. 그런가 하면 위선자들은, 마치 하나님의 은혜가 거룩한 생활에 대한 자신들의 열성을 말살이라도 한다는 듯이, 있는 힘을 다 기울여 당신의 선하심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악의적으로 흐리게 하며 담대하게 죄를 짓는 쪽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바울의 권면은 인간들이란, 그들이 먼저 얼마나 하나님의 자비의 덕을 보고 있는가 하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진지한 마음으로 당신을 예배하지 않을 것이요, 충분한 열성을 다하면서 당신을 두려워하거나 순종하도록 깨우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권면하는 바울의 의미가 더욱 더 강력한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앞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자를 풍성하게 느끼면서도 앞에 나온 가르침을 듣고 당신에 대한 사랑의 불이 지펴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목석보다 더 단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인간들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구원에만 달려 있는 것으로 말할 경우, 존귀한 생활에 대한 모든 권면이 무효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경건한 마음이 하나님을 순종할 마음을 갖는 것은 가르침이나 명령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심사숙고에 의해서이다.

우리는 그와 동시에 여기서 이 사도의 온유한 정신을 엿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신자들을 엄격한 명령이 아니라, 권면이 친밀한 간청으로 상대하는 편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자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너희 몸을 ... 산 제물로 드리라."라는 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주님의 소유요, 둘째, 우리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 거룩해야 옳은 것은 무엇이든 성별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당신의 거룩하심에 모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을 따를 경우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전 인생에 걸쳐서 성결에 대해 묵상해야 하며, 우리가 불결에 빠질 경우 그것이 일종의 신성모독이 되는 것은, 그것이 일단 성화된 것을 속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따른다.

 

바울은 구원받은 자의 새로운 생활에 대해 말하면서 첫째로 헌신에 대해 말한다. 헌신(獻身)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몸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우리의 손과 발, 우리의 재능과 목소리와 힘, 우리의 시간과 돈,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 포함한다. 이런 것들은 다 우리의 몸과 같이 움직인다. 몸이 없으면 이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몸을 드리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바울은 헌신을 "산 제물"이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구약시대의 제사와 대조하는 말이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주신 오늘날에는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특히 구약시대의 번제는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상징하였다. 물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헌신으로 이루신 대속 사역을 상징했으나, 또한 성도들의 온전한 순종과 헌신의 삶도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라는 말은, 헌신의 동기 혹은 이유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복음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 사랑, 은혜의 소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로마서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크신 자비와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영적 예배"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신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이어야 한다.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악된 삶과 구별된 삶,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죄를 짓지 않는 삶이다. 이런 헌신의 삶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불렀다.

영적이라는 원어는 합당한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대한 어떤 형식의 예배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합당한 예배인 것이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바울은 본절에서 헌신의 방법으로 몇 가지를 교훈한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은 언제나 불경건하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목적과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와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성도가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면 우선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본받는다면, 우리는 결코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없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릴 수 없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지만, 그것은 또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였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했다(2:40).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우리는 또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마음이라는 원어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생각이 새로워져야 한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생각은 이 세상 중심적이고 불경건하고 부도덕하고 정욕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져서 성경에 교훈된 대로 하나님과 천국과 영생을 생각하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것만 생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변화를 받으라는 원어는 현재 명령형으로 우리의 생각의 변화가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야 함을 보인다. 성도의 영적 성장 곧 성화의 시작은 생각의 변화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생각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뜻이라고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그 내용이 선하며 그 결과도 선하다. 또 우주의 왕이시며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신다. 때때로 그의 뜻은 우리의 뜻과 달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115:3).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2.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한다. (3-13)

 

(1)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 말하노니"라는 말은, 바울은 어떠한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그들에게 그가 받은 권위를 상기시켜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를 마치 하나님 자신의 목소리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바울의 이 말의 의미는, "나는 내 스스로 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그가 나에게 맡기신 명령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그가 앞에서처럼 자신의 사도직을 은혜와 관련시키는 것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칭송하려는 뜻에서이다. 그와 동시에 여기에는 자기가 자신의 만용에 이끌려 억지로 사도직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서 그리고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암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서론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확증함으로써 로마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당신을 멸시하지 않고자 한다면, 순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무런 덕도 끼치지 못하고 오로지 정신적 고통만 가져올 뿐인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명령하고 있다.

바울은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과 소명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스스로 짊어지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우리에게 우리로 하여금 건전한 마음을 갖고 잘난 체하지 않게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묵상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2)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라는 말은, 바울은 이제 그가 신앙의 분량에 따른 각 신자의 지혜의 한계에 대한 주장을 모든 신자들의 소명과 관련시켜 확증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믿는 모든 자들 사회에 인간의 몸의 각 부분 사이에 있는 관련과 유기적 연합을 확립시켜 놓으신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한 몸 안에서 서로 연합하라는 조건으로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스스로 그러한 연합을 가질 수 없었기에 당신께서 손수 이 연합의 기반이 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에 있는 관계가 신자들의 교제에 있어서도 있어야 마땅하기 때문에 바울은 이 비유를 적용함으로써 각자가 자신의 성격, 능력 및 소명에 맞게 합당하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가 하는 점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적용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당면 문제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한 몸의 각 부분에 서로 독특한 기능이 있으며 그 어떤 부분도 동시에 모든 기능을 가지거나 다른 부분들의 기능을 차지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부분이 다 다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를 분배해 주시고 있다.

이러한 독특성에 의해서 당신께서는 우리를 지탱하고자 하는 질서를 정하셨으며 그 결과 각자는 자신의 능력의 정도에 따라서 스스로를 조절하며 타인에게 속한 임무에 주제넘게 뛰어들지 않게 하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동시에 가지려고 추구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처지로써 만족하고 타인의 임무를 횡령하는 일이 없도록 자발적으로 자제해야 옳다.

 

(3)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6-7)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는 말은, 모든 인간은 자기 형제들로부터 도움을 빌릴 필요가 없을 만큼 충족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도 자족하지 못하고 타인으로부터 빌릴 수 없게 될 경우 교제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는 경건한 자들 사이의 교제란 각자가 자신의 분량으로 만족하며 자기가 받은 은사를 형제들에게 나눠주며 또 자신도 남의 은사의 도움을 받으려 할 때만 가능한 것으로 본다.

 

모든 것이 모든 인간들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는 각자에게 한정된 몫이 돌아가도록 분배되고 있다. 각 개인은 아무도 자신의 기능을 저버리고 타인이 그것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교회의 교화를 위해서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는 데 집착해야 옳다.

각 개인이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공동의 유익을 위해 나눠 쓰되 남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때 교회의 안전은 더 없이 탁월한 이 질서와 조화에 의해서 유지되기 마련이다. 이 질서를 뒤바꾸는 것은 그것을 제정해 놓으신 하나님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은사의 차이점은 인간의 뜻에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은혜를 분배하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혹 예언이면"이라는 말은, 어떤 이는 예언을 예고하는 주님께서 모든 수단을 통해서 당신의 나라의 위엄과 탁월성을 드러내고자 하셨기에, 교회가 시작되던 당시에 교회에 성행하던, 예고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믿음의 분수대로"라는 대목이 모든 구절과 관련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나(칼빈)는 이 단어를 더 넓은 의미에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유능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주석가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계시에 대한 특수한 은사로 이해하는 자들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서의 예언이 단순히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것을 설명하는 특수한 은사에 지나지 않는 것은 모든 옛날 예언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안에서 결론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방언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전14:5),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전13:9)는 바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이 단어를 이런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처음에 당신의 교회를 장식하는 데 있어서 사용하신 저 경이적인 은혜만을 생각하고자 한 것인가 하는 점은 명확치 않다. 그보다 우리는 그가 단순히 교회 안에 영속적으로 남아 있는 일상적인 은사를 두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른 구절에서(고전14:32) 그는 예언자들의 영이 예언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 선언하면서, 만약에 동석하고 있는 누구에게 계시가 주어질 경우, 잠잠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같은 이유에서 여기서 교회에서 예언하는 자들에게, 어느 때든지 그들이 올바른 선에서 방황하거나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신앙의 원칙에 자신들의 예언을 일치시킬 것을 권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신앙은 종교의 제 1원리들을 뜻하며 여기에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발견되는 가르침은 모두 거짓된 것으로 정죄를 받고 있다.

 

바울은, 그는 올바르게 목회함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성취하고 그의 명칭에 일치하도록 하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따라서 가르침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그는 교사들에게 건전한 교화를 주천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교의에 있어서 뛰어난 자는 교회가 참으로 올바르게 가르침 받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는 점을 깨닫고 교회가 자신의 교의를 더욱 더 배우는 것만 힘쓰도록 하라는 것이다.

교사란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를 형성하고 훈계하는 자다. 권면에 있어서 뛰어난 은사를 가진 사람은 효율적으로 권면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임무들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에서 더 이상 그것들이 서로 차이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교의가 없이는 권면할 수 없지만 가르치는 자에게 동시에 권면의 은사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아무도 사역과 무관하게 예언하거나, 가르치거나, 권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여러 은사에서 엿보며 교회질서에 유익한 것으로 보는 독특성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4)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8-10)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라는 말은, 바울은 여기서 "구제하는 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소유로 구제하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 재물분배 책임을 맡고 있는 집사들에 대한 기술적인 용어다.

그리고 그는 긍휼을 베푸는 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데, 이것은 고대 교회 풍속에 따라서 병자 간호 책임을 맡은 과부들과 다른 봉사자들을 뜻한다.

바울이 말하는 다스리는 자들이란 교회 통치를 위임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곧 다른 회원들을 주도하고 다스리며 규율을 잡던 장로들이다.

하지만 그가 이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내용은 모든 종류의 지도자에 대해서 확대 적용될 수도 있다. 모두의 보존을 책임 맡고 있는 자들에게서는 큰 관심이 요청되고 있으며 모두의 안전을 밤낮으로 경계할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자들에게서는 큰 근면이 요청되고 있다.

 

(5)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라는 말은, 영혼에 있어서 열성을 보이며라는 표현을 덧붙임으로써 그는 우리가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육신은 나귀처럼, 마냥 게으르며, 그러므로 계속 채찍질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무감각을 교정하는 것은 성령의 열성뿐이다. 그러므로 선행에 있어서의 근면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속에 지펴 놓는 열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열성을 권면하고 있는가?’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칼빈)의 대답은 이것이다. 곧 이 열성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임무가 신자들에게 부과되고 있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맥이 풀린 상태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지펴주시는 불길에 빠져 들게 하려는 뜻에서이다.

 

(6)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라는 말은,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해야 한다. 성도의 소망은 주의 재림과 천국과 부활과 영생이다. 이것들은 성도의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그 소망이 확실하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또 우리는 환난 중에 참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질병들, 경제적 곤란, 자연적 재난, 핍박 등 여러 가지 환난들을 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 중에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권자 하나님께서 그 환난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 환난 중에서도 우리를 지키실 것이 확실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 환난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키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는 말은, 제 아무리 강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주 새로운 힘을 얻지 않고서는 이 환란을 잘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쳐버리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책은 부지런히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안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지만, 환난 날에 특히 우리의 기도 생활이 약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다. 또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길이다. 우리가 기도에 항상 힘쓰면 어떤 어려운 일이 와도 낙심치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7)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3)

우리는 또 성도의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누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야 한다.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다(15:7-11; 요일3:17). 또 우리는 어려운 교우나 이웃, 또 손님이나 나그네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후하게 대접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감독 혹은 장로의 자격 요건에 대해 가르치면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들었다(딤전 3:2).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