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를 극복하라. [하권.6-29]
- 마6:25-34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1-32)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카렐 박사는 "염려와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라고 말했다. 옛날 말에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고, 자연은 어머니와 같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품속에 있으면 쉼이 있듯이 자연과 함께 있으면 쉼이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 들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가지고 우리에게 삶의 큰 진리를 가르치면서 평안하게 살도록 교훈하고 있다.
1. 염려는 어떠한 것인가?
⑴ 염려는 시시한 것이다. (마6:25)
○ 천하보다 소중한 목숨과 몸을 가진 인간이 시시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⑵ 염려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마6:26, 28-29)
○ 자연의 만물이 걱정을 않고 살고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염려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⑶ 염려는 무익한 것이다. (마6:27, 30)
○ 성경에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무려 500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그 만큼 염려는 무익한 것이다.
○ 누가 염려하므로 과거를 해결할 수 있으며 미래를 해결할 수 있 는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염려는 인간을 병들게 하는 무서운 두 가지 악이다.
⑷ 염려는 비신앙적이다. (마6:31-32)
○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보살펴 주는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염려할 자격도 없고 염려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 염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신앙적인 것이다.
⑸ 염려는 건강을 해친다.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 라.” (잠17:22)
○ 한 의과대학 교수에 의하면 의사에게 오는 환자의 20%가 그들의 근심과 두려움을 면할 수만 있다면 자기들 스스로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2.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가?
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어야 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 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6:26)
“믿음이 적은 자들아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 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2)
○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생명을 주셨다면 그 목숨을 유지할 음식을 주시리라고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 몸을 주셨다면 입을 옷 을 주신다는 것이다.
⑵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에 순종해야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 꿀벌은 근심할 틈이 없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관 심을 가지고 열심히 봉사하는 자는 고민하거나 염려할 일이 사라 질 것이다. ◎ 참조; 빌4:6
⑶ 생각하는 내용과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 라.” (마6:34)
○ 장래의 모든 문제를,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생각이 나에게 집착되어 있는 한 염려나 근심이 물러나지 않는다.
○ 항상 주기를 좋아하는 샘물은 계속 줄 것이 있고 생생하지만, 고 여 있는 도랑물은 썩어 악취를 내고 아무런 유익이 없고 해로운 것이 된다.
♡ 염려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6:25-34과 눅12:22-34에 반복되고 있다.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그들이 들의 풀들을 입히시고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프랭크 루프 박사는 23년간이나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그는 병상에 누운 다른 불구자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매년 1만4천여 통의 편지를 쓰고 방송과 집필로서 수천 명의 병자들을 위로하였다.
우리는 한숨을 쉬거나 염려하지 말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그리고 생각하는 내용과 방향을 바꾸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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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서후서 4:7~10 -
샬롬선교회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서언.
+ 우리 주변에는 용기를 잃고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고 싶은 현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기복이 심하고 비참한 생각에 빠져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이 실망낙담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실망낙담은 성공한 사람마저도 덮친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거기에서 떨어졌을 때의 낙차가 커진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1:8)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하는가? 본문에는 그 이유가 적혀있다.
1.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넣고 있다
+ 질그릇과 그 안에 있는 보배
우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질그릇'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질그릇'은 복수로 '흙으로 만든 수많은 그릇'이다. 그 그릇(복수)에 '보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배'('세-사우로스'θησαυρός)는 단수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복음'혹은 '메시아의 복음', '천국 복음'이라고도 바꿔 말할 수가 있지만, '보배'의 의미를 문맥에 따라서 살펴보자.
[고린도후서 4:5~6]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는 표현 속에 예수님 안에 하나님을 본다는 위대한 사상이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14:9)라고 한 것처럼, 여기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들에게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야말로 질그릇의 '보배'라고 하는 것이다.
+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가 가진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측량할 수 없는, 남다른, 절대적인, 탁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8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또한 9절에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가 되는 것이다.
2. 바울의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의 근거
[고린도후서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 '그러므로'는 '그런 이유로'라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2장, 3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에게 주어진 봉사('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의 직분 때문이다.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직분', 3 장에서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편지를 쓰는 직분'이라고 했다.
이 직분은 받은 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했다.
+ '낙심하지 않는다.'(= '용기를 잃지 않는다.', '실망낙담하지 않는다.', '피곤하여 싫어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신약에 6번 사용되고 있지만, 누가복음 18장1절을 제외하고 모두 바울의 특애용어이다. 바울은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이유를 밝혔다.
+ 바울의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16절)라는 선언의 근거, 그것은 어디 있는가?
[고린도후서 4:14-15]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격려 할 수가 있는 것을 감사하고 있다. 그 믿음은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알고 있다'는 믿음이다.
++ 바울은 세 가지 믿음에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격려하고 있다.
(1)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는 믿음
= 우리의 신체적, 육체적 성장이라는 것은 20세 이전에 피크를 지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의 뇌 세포는 어떨까? 아무리 사용해도 5퍼센트 정도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나이가 들면 신체의 여러 부분에 고장이 나오고,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조금씩 할 수 없게 되어 간다. 그러나 '속사람'은 어떨까? 쇠퇴,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속사람'은 '보배' 그 자체인 '그리스도'를 말한다.
[에베소서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사도 바울의 기도)
(2)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한다'라는 믿음
= "속사람"에게 역사하는 성령에 의해서도 우리는 강하게 되고 있지만, 동시에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고, 우리에게 '크고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 우리의 "속사람"인 예수님 자신도 사람으로부터 조롱받고, 침을 뱉음을 당하고, 거부되고, 상처를 당하면서도, 우리를 위해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로마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3)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고정한다.'는 믿음
= 우리가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멈추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결언.
+ 우리가 질그릇에 가진 '보배'가,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하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이 멈추게 하고'있다.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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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 고린도후서 7:10-11 -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린도후서 7:10-11)
서언
[찬송가 484/365] 1.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2. 눈물 나며 깊은 한숨 쉴 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은밀한 죄 네게 있더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후렴>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1. "근심"과 "염려"는 그 의미가 다르다.
+ 근심: 悲しみ, 痛み/ 슬픔, 고통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悲しみ, 痛み)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요한복음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あなたがたは悲しむが,しかし,あなたがたの悲しみは喜びに変わります.)
+ 염려: 思い煩い, 心配/ 번민. 걱정, 고민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思い煩い)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2. 본문강해
[고린도후서 7:8-9] 8.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 근심에는 두 종류가 있다.
-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 근심이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기의 죄와 부족을 깨닫게 하는 근심이다.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많이 할수록 좋다. 왜냐하면 그것은 회개와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3) 세상 근심은 마음과 몸의 건강을 해치고 사망에 이르게 한다.
- 세상 근심은 세상의 일들로 인한 염려, 즉 의식주의 염려, 건강의 염려, 경제의 염려, 사회 환경의 불안 등이다.
[누가복음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근심은 버리고, 믿음으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온전한 거룩함을 이루지 못한 것만 근심해야 한다.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여 회개와 구원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11절]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 사도의 권고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겸손히 받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었다.
-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책망에 근심하였으나 겸손히 받았다. 미련한 자는 교훈과 책망을 받으려 하지 않지만, 지혜로운 자는 겸손히 받는다.
[잠언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2) 편지를 통한 사도의 권고는 고린도 교인들의 회개를 가져왔다.
- 바울의 편지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의 진실함과 간절함이 확인되었다. 말씀의 봉사자의 위로와 기쁨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 때 온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 고린도 교인들은 잘못을 해결하기 위해 간절했고, 그들의 거룩함을 증거하기 위해 변명했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의분했고,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였다. 그들은 회개하기에 열심을 내었고, 악한 자를 벌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자신들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다.
결언
첫째로, 우리가 권고를 들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으면 조심하면 될 것이고, 우리에게 해당되면 받아들여 고치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영육의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여 온전한 거룩함을 이루어야 한다. [빌립보서 4:8-9]
둘째로, 우리는 세상 근심은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죄를 철저히 미워하고 버리고 바로 살기를 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주의 염려, 건강의 염려, 경제의 염려, 사회 환경의 불안 등의 세상 근심은 하지 말고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한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복음사역자들에게 많은 근심 중에서도 위로와 기쁨을 얻게 하신다.
특히 이 위로와 기쁨은 교인들이 주께서 세우시고 말씀을 전하게 하신 자들을 영접하고 그들의 교훈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때 생긴다. 그로인하여 복음사역자들은 많은 고난 중에도 큰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 그뿐만아니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을 받음으로 넘치는 기쁨을 얻는다. [요한복음 1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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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8-9] 8.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요한복음 16:19-24]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あなたがたは悲しむが,しかし,あなたがたの悲しみは喜びに変わります.)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안심하라
- 마태복음 14:22-27 -
샬롬선교회
[마태복음 14:22-27]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서언
[사도행전 27:23-25]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元気を出しなさい/新改訳].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본문, 22-23절]
무리를 다 보내셨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고 밤이 깊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작별하신 후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가 밤 4경, 곧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신 것을 보면, 그 밤에 여러 시간 동안 기도하셨습니다.
[본문, 24-25절]
날은 저물어 밤이 깊었고 배는 바다 가운데 있었고 예수님은 홀로 육지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거친 바람이 제자들의 길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바람 때문에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는 멀리서도 모든 것을 보셨습니다.
[갈릴리 바다(호수)는 타원형 바다인데, 남북의 직경은 약 21킬로미터, 동서의 직경은 약 11킬로미터인 큰 바다이다.]
[본문, 26-27절]
밤 사경 즈음, 즉 새벽 3, 4시경에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은 그쳤습니다. 제자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놀라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센 바람과 물결로 인해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도우려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본문, 27절]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 "안심하라“
'안심하라'는 그리스어 '살세이테'(Θαρσεῖτε)로, '사르세오-'(Θαρσεω)의 명령형입니다. 히브리어로 하면 '하-자크'(חָזַק)의 명령형이 됩니다. 그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19:16에서 소돔에 사는 롯의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천사들이 '망설이는 그들의 손을 잡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작'(חָזַק)의 명령형 '히제쿠-'(חִזְקוּ)는 구약에서는 '용기를 내라, 담대하라, 강하라'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함께 있어 손을 잡아 주시는 격려 용어로 종종 사용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확실하게 하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참고로, 新改訳은 'しっかりしなさい[안심하라]', 新共同訳은 '安心しなさい[안심하라]'라고 번역했습니다.
* 마태복음에서는 다음과 같은 곳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2]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중풍병자에 대하여)
[마태복음 9:22]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혈류병 여인에 대하여)
+ "나니"
"나니"는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로 자기 선언을 나타냅니다. 히브리어 번역은 '참으로 나야말로 그것이다'를 의미하는 '키-애니- 푸-'(כִּי־אֲנִי אוּה)라고 합니다만, 구약에서는 출애굽기 3:14의 주(야-웨)의 이름인 '나는 있는 자'이다"('에예 아셸 에예' אֶהְיֶה אֲשֶׁר אֶהְיֶה)가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나는~이다'라는 '에고- 에이미'라는 말에 다른 무엇과 결합하여 자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마태복음서의 '에고- 에이미'는 여기뿐입니다.
참고로, 요한복음의 "에고- 에이미"와 결합된 은유는 다음과 같이 모두 7 가지가 있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①"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41, 48, 51);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③ "나는 양의 문이다."(10:7, 9); ④ "나는 좋은 목자이다," (10:11, 14); ⑤ "나는 부활이다." (11:25); ⑥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⑦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15:1, 5)
* 또한 요한 계시록의 '에고- 에이미'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입니다.
①"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1:8); ②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1:17); ③ "나는 시작과 마침이라."(21:6, 22:13); ④ “나는 다윗의 뿌리, 자손, 광명한 새벽 별이라."(22:16)
+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리스어 '메・포베이스세'(μὴ φοβεῖσθε)로, 구신약을 통하여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알 티-러-후-'(אַל־תִירָאוּ)와 함께 자주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항상 "두려워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이래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것은 죽어야할 것으로 보인 그대로의 모습을 말합니다. 죽음은 두려움과 불안, 불신감, 의심, 자기혐오와 위선을 낳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신의 죽음에 의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브리서 2:15)"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천국(메시아가 지배하는 나라)는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불안도 슬픔도 병도 어떠한 상실도 없습니다. 결코 스스로 방어할 필요가 없는 세계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를 타시기 전까지는 그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타시는 것은 그리스도가 재림(우리에게는 휴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은 이미 분명합니다만, 그때까지 믿음으로 예수님만을 계속 바라볼 것입니다
결언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주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물결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 계셔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