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생활의 유익
(시 67:5-7)
인간의 삶에서 음악을 뺀다면 마치 전시 중의 삶 같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매일 긴장 속에서만 지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쉴 시간이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하면 하나님만큼 바쁘신 분도 없으시고 할 일이 많은 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항상 찬양 속에서 지내시고 계십니다.
일의 보람은 성취로부터 오지만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부터 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심어 주셨습니다.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도 하고 자신의 일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노래 할 수 있는 감정은 어디서부터 유래된 것일까요?
1.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찬양과 함께 시작하신 데서 유래 되었습니다.
[욥38: 4-7]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어다.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으며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었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과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존재들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물질의 세계를 지으신다니 또 다른 아름다운 세계가 탄생 될 것을 아는 천상의 천사들은 모두 기쁘게 찬양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모두 땅 위에서나 땅 아래서나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이 땅에 만물을 지으실 때마다 찬양을 받으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면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일은 어려워도 하나님의 일은 기쁜 이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마치실 때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역시 그 때에도 찬양으로 마치 십니다.
계19: 5-8절에 보면,
이 세상과 이 땅이 다 사라지고 하늘나라에 어린양 혼인잔치가 벌어집니다.
성도들이 신부들이며 이 예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5절에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그러므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기쁘게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다 영원한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주인공이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즉, 위로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 드리고 일상생활에서는 기쁘게 노래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2. 그러면 찬양 생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1) 찬양은 우리의 마음에서 근심을 없애줍니다.
[사61: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인간이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은
첫째, 죄와 죽음에 대한 불안
둘째, 질병과 재앙에 대한 공포
셋째, 능력부족으로 인한 생활의 염려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찬양의 곡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작곡 작사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인 가사 내용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저절로 세상의 일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인간의 걱정과 염려는 90%가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우려라 합니다.
[예] 다윗
그 만큼 걱정 불안이 많은 환경 속에서 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시13: 2절에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그러므로 근심되는 일이 많을수록 그 있는 장소에 찬송가를 많이 틀어 놓으십시오.
(집안, 직장, 자동차, 학교…… 등)
그리고 따라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을 느낄 것입니다.
2) 찬양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켜 줍니다.
[시8: 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 찬송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찬양을 제일 잘 아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그는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임무가 찬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찬송의 능력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찬송드릴 때 여호와의 능력이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 149:6편]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 하였습니다.
(예) 답십리 교회를 개척하여 25년간 사역을 한 김무석 목사님이 간 경화증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습니다. 몸은 마르고 호흡이 가빠져 드디어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상태에서도 계속 찬양을 불렀습니다. 의식은 몽롱해도 입술에서는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3일간을 혼수 상태로 지내다 드디어 열이 내리고 몸이 가벼워 짐을 느꼈습니다.
다시 깨어난 그분은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련을 통해 그분은 찬송의 위력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는 찬송 중에 하나님이 임하셔서 능력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3) 찬양은 우리로 큰 수확을 거두게 합니다.
[시67: 5-6]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이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만물이 지음을 받을 때 찬양 속에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찬양 소리를 들으면 활발히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그 것은 저주받은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땅에 저주를 내리시기를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디에서 일하든지 쉬운 일이 없습니다.
땀을 흘려야 되고, 주변에 끝없이 자라나는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며, 애를 쓰고 수고해야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찬양은 구원 받은 자가 감사로 드리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이 있는 곳엔 구원이 임한 곳이고, 구원이 임한 곳엔 저주가 풀린 것입니다.
저주가 풀려진 곳에는 모든 생명들이 천지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르게 됩니다.
[창1: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지금 우리에게도 이 축복이 다시 오게 된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난 후 인간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근심하는 자요, 고생하는 자요, 질병의 고통 속에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창조 때의 정의는 무엇이니까?
노래하는 자요, 능력 있는 자, 영생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사43: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인간은 찬송을 안하고 살면 본분을 잊고 사는 것이요, 그 삶이 곧 근심, 고생, 고통 속에 들어있는 삶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온전히 찬양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하루에 일곱 번 찬양을 드리는 생활을 하는 삶이 찬양의 삶입니다.
[시119: 164]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대개 ‘일곱 번’ 이라 하면, 일어나서, 아침에,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 때, 점심과 저녁 사이, 저녁 때, 잠잘 때,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도는 주로 의지적인 면에 작용하기 때문에 믿음을 강하게 해주는 반면 찬양은 주로 감정에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생활에 활력을 줍니다.
믿음과 감사는 성도의 본분입니다. 이는 생활화할 때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과 능력으로
충만케 채워지게 하여줍니다. 다 같이 찬양생활을 통하여 침체된 생활에서 벗어나 활기찬 신앙생활을 회복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