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녀에게 가르쳐라. [하권.1-06]
- 신6:1-9 -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6:7)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가정이다. 특히 성도의 가정은 가장 중요한 신앙과 인격을 교육하는 터전이며 학교이다. 물론 이 학교의 교사는 부모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정에 대한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1.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⑴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가정을 선물로 주셨다. (창2:2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4)
⑵ 가정은 하나님의 뜻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엡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1-4)
⑶ 가정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참된 축복을 누리는 곳이다. (신12: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신12:7)
2. 우리 가정은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가정인가?
- 오늘날 가정들의 형태를 살펴보고, 우리 가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⑴ 아이들이 왕이 되는 가정
① 아이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가정이다. 모든 것이 아이들 중심이다.
② 유아독존의 사상에 사로잡혀 사리 판단의 능력이 결핍된 사람이 되고, 부모는 그 아이로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다.<참조; 삼상2:12-25>
⑵ 부모가 왕이 되는 가정
① 유교적 봉건 사상의 습관으로 인한 것이다. 가족은 긴장과 공포의 분위기이다..
② 그 자녀들은 우울증에 빠지고,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자가 되기 쉽다.
⑶ 여자가 왕이 되는 가정
① 현대의 현상으로 부인의 생각에 따라 남편과 자녀가 움직여지는 가정이다.
② 남편은 돈을 벌어오는 도구에 불과한 참으로 불행한 가정이 될 수 있다.
⑷ 개인주의적인 가정
① 한 집에 살면서도 각각 살아가고 있는 형태이다. 가정은 여관에 불과하다.
② 현대에 만연되어 가는 프리섹스와 청소년 문제의 온상이 될 수 있다.
⑸ 세속주의적인 가정
① 세상풍속을 좇아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산다. 더럽고 악한 비밀을 가지고 산다.
② 사단의 종노릇하다가 결국은 영원한 저주와 멸망에 빠진다.<참조; 엡2:2-3>
⑹ 하나님 중심의 가정
① 하나님이 가정의 왕이 되는 가정이다. 부모는 하나님을 공경함으 로 자녀를 사랑한다. 또 자녀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부모에게 순 종한다. <참조; 엡6:1-4>
②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모든 은혜와 평안을 누리게 된다. <참조; 창12:1-3, 요14:26-27>
3. 가정에서 부모의 책임은 무엇인가?
⑴ 믿음으로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신6:7)
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한다. (신6:4) <참조; 요17:3>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4)
②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신6:5)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5)
⑵ 자녀에게 본을 보이는 참된 교사가 되어야 한다. (요13:15, 고전11:1)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 라.” (요13:15)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 라.” (고전11:1)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부모와 자녀가 되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또 이웃들과 함께 누리며 행복하게 살자. <참조; 갈6:10>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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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교훈과 훈계
- 에베소 6:1-4 -
샬롬선교회
[에베소 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서언.
+ 본문은, 에베소서 5장21절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토대로 하면서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에게 있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서로가 '피차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복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한다.
1.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다.
+ 시편 127편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主の賜物)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報酬)이로다."라고 한다. '자식들'은 '태의 열매'라고 바꾸어 말하고, '여호와의 기업'이 '상급'이라고 바꾸어 말하고 있다. 즉, 전반과 후반은 같은 의미로 이해를 해도 좋다는 의미이다. 그 의미하는 것은 자식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부모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보관물'이라는 것이다. 자식들은 신앙을 통해 맺어진 부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업', 또한 '상급'인데, 결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보관물'로서 키운다는 사명이 부여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에게 속한다. '기업'이라고 하여도 책이라든가 보석과 같은 것과 동일한 수준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앞에 있는 산 생명이 있는 '기업'이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앞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대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 가정에서의 부부관계를 생각하더라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혹은 그 이외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중대한 것은 에베소 5:21에 있듯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것은 서로 섬기는 것이고, 서로 양보하는 것이며, 그리고 상대방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하는 바를 한 말로 말하면 "인격의 존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 '자식의 인격을 존중한다.'라고 하는 정의로서, '부모로부터 이름을 부여받은 자식이 결코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지지 않고, 또 부모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겨지는 일도 없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맡긴 존재로서 인정받고, 마침내 자식이 자기의 의지로, 사람으로서 자립해 나갈 권리가 존중된다는 것이다.'
= 특히 에베소 6장 4절에 있는 "아비들아(어머니도 이 부름의 범주에 당연히 들어 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는 말씀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 성경에서의 자녀양육의 예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부모가 되는 사람이 반드시 처음부터 훌륭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자가 반드시 자식들의 양육에 성공한다는 것도 아니다.
성경 중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도, 큰 직위를 부여받은 사람이라도, 직접 자신의 자녀의 양육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예가 얼마든지 있다. 아래는 자식들을 양육한 부모들의 예이다.
(1) 대제사장 아론의 경우 [레위기 10:1-2]
=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나답과 아비후)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죽었다. 불은 항상 제단에 취하여야 했다. 말하자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행위에 있어서, 거룩한 것에 대한 "무례(=불순종)"가 있었다. 가장 거룩한 것에 대하여 엄격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거룩한 것에 대하여 "무례"를 행한 일을 폭로하는 사건이었다. "무례"로 인한 아들들의 죽음에 대해, 아론은 그저 잠자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아버지인 아론에 대해 직접적으로 죄는 추궁하지 않았지만, 아론은 침묵 속에서 충분한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2) 마지막 사사, 제사장 엘리의 경우 [사무엘상 2:22-36]
=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의 이름은 홉니와 비느하스이다. 그들은 함께 부정(不貞)한 짓을 했고, 최상의 제물로 자신들을 살찌우고 있었다. 아버지 엘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들을 훈계하지 않았다. 이 때에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아버지도 아들들도 심판을 받았다.
(3) 선지자 사무엘의 경우 [사무엘상 8:1-5]
= 선지자 사무엘의 두 아들의 이름은 요엘과 아비야이다. 그들은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사무엘은 각지에서 하나님의 일에 쫓겨 가정에서의 아들들 교육에 시간을 들이지 못한 것일까?
(4)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경우 [열왕기상 11:4-11]
= 다윗은 9명의 부인이 있었고, 그의 아들들은 모두 19명이다. 그 아들들 중에 주의 길로 간 것은 솔로몬 단 1명이다. - 다윗은 솔로몬에게 주의 길을 가르쳐주었다. 솔로몬은 지혜가 풍부하여 정말 총명한 왕이 된다. 그러나 인생 후반에는 자신의 지혜에 의존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정략적인 결혼에 의해 우상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5) 사도 바울의 경우 [디모데전서 1:2]
= 사도 바울은 평생 독신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아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적인 아들이 있었다. 그 이름은 디모데('믿음에 의한 진실한 아들' '나의 아들'라고 부른다.)이다.
+ 이상에서 든 예를 통해 아들양육의 어려움을 기억한다. 그런 가운데 비교적 좋은 예는 다윗의 솔로몬에 대한 교육과 사도 바울의 디모데에 대한 교육이다. 사도 바울의 디모데에 대한 태도는 이방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공통된다. 바울은 바리세인으로서 대단히 엄격한 교육에 의해 자라면서도, 그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이방인에 대해 관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한 증거가 디모데에 대한 교육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언.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가정이다. 특히 성도의 가정은 자녀들의 신앙과 인격을 교육하는 가장 중요한 학교이다. 물론 이 학교의 교사는 부모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 앞에서 가정에 대한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일은 정부나 학교나 교회의 책임이기 전에, 일차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친자관계의 교훈
- 에베소서6:1-4 -
샬롬선교회
[에베소서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친자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특히, 자녀의 인격의 존엄과 성경에서의 자녀양육의 예에 대하여 상고하여 봅니다.
1. 자녀의 인격의 존엄이란
+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이름을 붙이는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 이름은 자녀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 사람에게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이라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으로부터 잠든 상태에서 사람을 돕는 배필을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고 사람을 '아담'이라고 불렸습니다(창 5:3). 그러나 아내가 된 사람을 '하와'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담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자녀에게 각각 가인, 아벨, 셋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담뿐입니다. 그리고 이 아담이 모든 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자기와 관련된 사람에게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함께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름 붙인 아내와 자녀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부여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이름을 붙이면 이름이 붙은 자녀의 존재에 대한 일종의 책임이 부과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것으로 키우는 책임입니다. 거기에 '자녀의 인격의 존엄'이 있습니다. 친자관계에 있어서 '인격의 존엄'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특히 자녀의 인격의 존엄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녀의 인격은 존엄하다.'는 정의로서, '부모로부터 이름을 받은 자녀가 결코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지지 않고, 또 부모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겨지는 일도 없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맡긴 존재로서 인정받고, 마침내 자녀가 자기의 의지로, 사람으로서 자립해 나갈 권리가 존중된다는 것입니다.'
+ 시편 127:3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합니다.
"기업"은 新改譯(일본어)에는 "선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급"은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주어지는 '보수'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자녀들은 믿음으로 맺어진 부부에게 부여된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 또한 '보수'이지만 결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것으로 키운다는 사명이 부여되었다는 의미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녀에 대하여 부여하고 있는 '인격의 존엄이 부모에 의하여 위협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경고, 경종과 같은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또는 주위의 사람이 이 사실을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녀는 건전한 성장을 이룰 수 있고, 마침내 부모도 자녀로부터 존경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없는 곳에, 가정에서의 친자관계의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2. 성경에서의 자녀양육의 예
+ '부모가 된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부모가 되는 사람이 반드시 처음부터 훌륭한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뛰어난 지위에 있는 사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반드시 자녀 양육에 성공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부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일이든, 어떤 일을 주신 사람이라도, 일상적인 양육에 있어서는 성공하지 못한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다음은 실패한(spoil)한 부모들의 예입니다.
(1) 대제사장 아론의 경우
아들들(나답과 아비후)은 금지된 다른 불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불은 항상 제단에서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일상적으로 하시는 하나님을 위한 행위에 있어서, 거룩한 것에 대한 '경외'이 있었습니다. 가장 거룩한 것에 대해 엄격히 해야 하는 장소에 있는 제사장의 자녀들이 거룩한 것에 대한 '경외'를 무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경외의 죄에 대한 자녀의 죽음에 대해, 아론은 단지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아버지인 아론에 대해 직접적으로 죄는 추궁하지 않았지만, 아론은 침묵 속에서 굉장한 고통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2) 마지막 사사, 제사장 엘리의 경우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의 이름은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그들은 함께 부정한 짓을 했고, 최상의 바친 제물로 자기들을 살찌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엘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녀들을 훈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당하여 아버지도 자녀들도 심판을 받았습니다(사무엘상 14장)
(3) 예언자 사무엘의 경우
예언자 사무엘의 두 아들의 이름은 요엘과 아비야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길을 걷지 않고, 이득을 추구하고, 뇌물을 취하며, 법도를 굽히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사무엘은 각지에서 하나님의 일에 쫓기어 가정에서의 자녀들 교육에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4)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경우
다윗의 아들들(19명)의 이름은 암논, 다니엘, 압살롬, 아도니야, 스바냐, 이드르암, 솔로몬, 등 입니다. 단, 모두가 이복형제입니다. 주의 길에 걸어온 것은 솔로몬 단 한 명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주의 길을 가르쳤고, 솔로몬은 지혜가 풍부하여 총명한 왕이 됩니다. 그러나 인생 후반에는 자신의 지혜에 의존하여 평화 유지를 위한 정략결혼에 의해 우상을 받아들였습니다.
(5) 사도 바울의 경우
사도 바울은 평생 독신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자녀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적인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디모데("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를 통해 자녀양육의 어려움을 기억합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좋은 예로는 다윗의 솔로몬에 대한 교육과 사도 바울의 디모데에 대한 교육입니다. 사도 바울의 태도에 대한 취급은 이방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공통됩니다. 바울은 바리세인으로서 항상 엄격한 교육에 의해 자라면서도 그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이방인에 대해 관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증거가 디모데에 대한 교육 속에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