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I'd Rather Have Jesus)

 

George Beverly Shea - I'd Rather Have Jesus  




이 복음성가의 작곡자 '죠지 베버리 쉬'(George Beverly Shea)는 한때 돈과 명예가 약속된 직업을 택할 뻔 하였으나, 이 복음 성시에서 큰 감동을 받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복음성가만을 부르는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 평생을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목사와 함께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고 있다.

 

  1928년 미국의 경제는 밑바닥까지 침체되어 많은 기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놓여 있었고 실업자들이 속출하여 사회는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때 학턴 대학(Houghton College)에 다니던 죠지에게 아버지로부터 편지 한 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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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 어머니와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해 왔고, 우리가 아는 방법을 모두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가을 학기에 너를 학교에 보낼 형편이 되질 않는구나. 힘들어도 네가 한 일년쯤 일을 하고, 다시 학업을 계속해야 될 것 같다. 이 일에 관해 뉴욕에 있는 내 친구 해롤드 비즈(Harold Vaege)씨에게 이야기했더니, 그의 사무실에서 같이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죠지는 아버지의 제안대로 뉴욕 상호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여기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방송국 편성부장을 알게 되어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얼마후 NBC스튜디오에서 1.500명의 방청객과 전국의 청취자들에게 “가라 모세(Go down Moses)"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죠지는 상상 외의 큰 호응을 받아 하루아침에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었고, 방송국 편성부장은 즉각 죠지에게 정기 출연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죠지는 갑자기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죠지는 즉각 대답하지 않고 부모와 의논을 한 후에 대답하기로 했다. 그의 마음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큰 희망에 부풀어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목사 부인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자기가 애송하던 한 복음 성시를 고요히 그에게 내 놓았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원문 찬송시)        

"금이나 은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

  큰 재물을 갖느니보다 차라리 주 예수의 것 되겠네

  큰 집과 넓은 땅 갖느니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

  못 박힌 손에 이끌림이 차라리 나으리라"  

 

이 성시는 죠지를 위해 쓰여 졌음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극심한 경제적 침체로 학업까지 중단한 죠지는 이 기회를 꼭 잡고 싶었다. 그는 마음이 술렁거리던 것이 넘쳐서 번민과 고민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어머니는 행여나 아들이 라디오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세상에서 출세했을 때의 위험을 내다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또한 죠지 자신도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이여, 왜 이런 딜레마로 나를 인도 하셨는지요? 저를 시험하시는 건가요?" 망설이던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오니 용기를 주세요. 그 길이 주님을 섬기는 길이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은 물속을 통과하고 있는 죠지의 마음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어느 주일 아침에, 교회에서 부를 찬송을 연습하고 있는데,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말씀이 있었으니 “금이나 은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라는 그 성시이었다. 그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감동으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는 즉흥적으로 작곡한 성가곡에 맞추어 그 찬송가를 불렀다.  

 

부엌에서 이 찬송을 듣고 있던 어머니가 달려와 두 팔로 죠지를 끌어안았는데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이 찬송가를 불렀는데 오늘날까지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인 것이다.  

 

이 찬송가의 가사는 시카고 나사렛 감리교회 뤼 밀러 목사의 부인(Mrs, Rhea F. Miller)이 1922년에 작시한 것으로 10년이나 죠지의 모친이 애송하던 시였다.  

 

죠지는 그 후 라디오 편성부장을 만나서 방송국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리고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 순간부터 죠지는 주님의 종으로 노래하는 전도자로서 길을 걸어왔고, 그가 작곡한 찬송가는 그의 유일한 간증이요, 신앙의 표현이었다. 어디를 가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께서 그를 인도하실 때 도구로 삼으셨던 이 찬송을 불렀다.  

 

그 후 해를 거듭할수록 깊은 간증의 내용이 담긴 이 성가를 듣고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켜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찬송가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 한가지를 소개한다.  

 

한 고독한 선원이 거리를 방황하다가 화려한 술집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유혹을 받고 그곳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옆방의 라디오에서 굵고 아름다운 음성의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날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나는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

라는 이색적이지만 확신이 가득 찬 간증의 노래였다.  

 

그리고 2주 후에 그는 이렇게 간증했다.

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술집을 찾았는데, 라디오를 통해서 천사의 소리가 들렸다.     

 

“오늘날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나는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겠노라”

 

나는 그 노래를 듣고 마음이 견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노래는 끝났는데 누군가 계속해서, '마음을 묶어 예수께 바치고 죄악 된 생활에서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라'고 반복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그 장소를 나왔고,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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