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후서 4:6-8 -
샬롬선교회
[고린도후서 4:6-8]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知識/新改訳)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서언.
+ 우리 주변에는 용기를 잃고,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고 싶게 만드는 현실이 얼마나 많습니까. 흥망성쇠가 심해 비참한 생각에 빠져 버리는 일도 종종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고린도후서 1:8)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인 우리가 왜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하는 지, 그 이유가 적혀 있는 것은 이 4장입니다.
1. "낙심하지 아니하며"의 이유
[고린도후서 4:1]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 "용기를 잃지 않는다" (=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실망 낙심하지 않는다" "피곤하고 싫어지지 않는다" )는 표현은 신약성경에 6번 쓰였는데, 누가복음 18:1을 제외하고 모두 바울의 특애용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 외에 꼽히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는 이유를 밝혀가는 것입니다.
(1)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봅니다.
첫째 이유는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유는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이유는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기" 때문입니다.
+ 둘째~넷째 이유는 첫째 이유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구성입니다.
즉, 이 '보물'이 '속사람을 날로 새롭게 하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돌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이 보물을 그릇 안에 담고 있습니다.
+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질그릇'은 복수로 '흙으로 만든 수 많은 그릇'입니다. 그 그릇(복수) 안에 '보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배'('세이사우로스' θησαυρός)은 단수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복음', 혹은 '메시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보배'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고린도후서 4:6-7]
=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知識/新改訳)"이라는 표현 중에, 예수님의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위대한 사상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한복음 14:9)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이곳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언제나 바라보면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야말로 질그릇의 “보배”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질그릇 속의 '보배'가 지닌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짐작할 수 없는, 비상한, 절대적인' 힘입니다. 그로인하여 8절의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더 나아가 9절의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즉 후자의 일 - 어떤 일이 있어도, '궁핍할 것이 없다', '막힐 것이 없다', '버려지는 것이 없다' , '망하지 않는다'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2. 바울의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한 선언의 근거
[고린도후서 4:15-16] "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과 같은 믿음의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격려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 같은 믿음이란, 주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분이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부활시키고,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 이 믿음으로 인해 바울은 세 가지 점에서 '우리는 낙담하지 않는다'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1)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는 신앙
+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는 이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겉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쇠퇴하는(=망하다) 것입니다. 하지만 "속 사람"은 어떻습니까? 쇠퇴, 멸망하지 않고, 무려 '날마다 새롭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속 사람"이라는 것은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사람은 '보배' 그 자체인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2)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라는 신앙
+ ``속 사람''에 역사하는 영으로도 우리는 강하게 될 것이지만, 동시에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의 믿음을 성장하게 하고,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주어집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라고 말씀합니다. "현재의 고난, 나타날 영광" - 이 종말적 신앙에 의해서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3)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라는 신앙
+ 우리가 낙담하지 않기 위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계속되어진다.'는 것, 거기에 눈을 돌린다는 믿음입니다. '속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인간(고린도후서 5:17)이며, 지금 이미 부활한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에 부합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고 있는 인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결언.
[고린도후서 4:17-18]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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勇気を失うことない
- Ⅱコリント4:6-8 -
シャローム宣教会
[Ⅱコリント4:6-8] 「6. 「光が、やみの中から輝き出よ。」と言われた神は、私たちの心を照らし、キリストの御顔にある神の栄光を知る知識を輝かせてくださったのです。7. 私たちは、この宝を、土の器の中に入れているのです。それは、この測り知れない力が神のものであって、私たちから出たものでないことが明らかにされるためです。8. 私たちは、四方八方から苦しめられますが、窮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途方にくれていますが、行きづまること(勇気を失うこと)はありません。」
序言.
+ 私たちの周りには、勇気を失い、すべてを投げ出してしまいたいと思わせる現実が何と多いことでしょう。浮き沈みが激しく、みじめな思いに陥ってしまうこともしばしばです。
パウロさえも「私たちは、非常に激しい、耐えられないほどの圧迫を受け、生きる望みさえ失うほどでした。」(Ⅱコリント1:8)と述べています。パウロも私たちと同じ人間なのです。その同じ人間がなにゆえに「私たちは落胆しない」のか、その理由が書かれているのがこの4章なのです。
1. 「勇気を失うことない」 の理由
[Ⅱコリント4:1]「こういうわけで、私たちは、あわれみを受けてこの務めに任じられているのですから、勇気を失うことなく」
= 「勇気を失わない」(=「私たちは落胆しません」「失望落胆しない」「疲れて嫌にならない」)という表現は、新約聖書に6回使われていますが、ルカの福音書18:1を除いてすべてパウロの特愛用語です。パウロは神のあわれみの他に挙げられる「勇気を失わない」という理由を述べていくのです。
(1) その理由を以下のようにしてまとめてみます。
第一の理由は「私たちは、この宝を土の器の中に入れている」から
第二の理由は「外なる人は衰えても、内なる人は日々新たにされている」から
第三の理由は「一時の軽い苦難は、それとは比べものにならないほど重い永遠の栄光を、もたらす」から
第四の理由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目を留めます。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永遠に続く」から
+ 第二~第四の理由は、第一の理由から自然と引き起こされて来る構成になっています。
つまり、「宝」が「内なる人を日々新たにさせ」、「重い永遠の栄光をもたらし」、「見えないものに目を留めさせる」のです。
(2) 私たちは、この宝を器の中に入れている。
+ 私たちはパウロの言うように「土の器」だということです。この場合、「土の器」は複数で「土で作った数々の器」です。その器(複数)の中に「宝」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宝」(「セーサウロス」θησαυρός)は単数です。これは「キリストの香り」「キリストの手紙」と同様に「キリストの福音」、あるいは「メシアの福音」「御国の福音」とも言い換えることかできますが、「宝」の意味を考えて見ましょう。
[Ⅱコリント4:6-7]
= 「キリストの御顔にある神の栄光を知る知識」という表現の中に、イエスのうちに神を見るという偉大な思想が語られています。イエスが「わたしを見た人は、父を見たのです」(ヨハネ14:9)と言われたように、ここでパウロは、イエスをいつも見続けるならば、そこに神の栄光が私たちにも理解でき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のだと語っているのです。「キリストの御顔にある神の栄光を知る知識」こそ、土の器の「宝」と言っているのです。
+ 土の器の中にある「宝」が持つ力は、神からくる「測り知れない、並外れな、絶大な、卓越した」ものなのです。それゆえ、8節の「私たちは四方八方から苦しめられますが、窮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途方に暮れますが、行き詰まることはありません。」、さらに9節の「迫害されますが、見捨て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倒されますが、滅びません。」となるのです。つまり後者のことー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窮することがない」「行き詰まることがない」「見捨てられることがない」「滅びない」―が強調されているのです。
2. パウロの「私たちは落胆しません」という宣言の根拠
[Ⅱコリント4:15-16]「15. すべてのことはあなたがたのためであり、それは、恵みがますます多くの人々に及んで感謝が満ちあふれ、神の栄光が現わ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16. ですから、私たちは勇気を失いません。たとい私たちの外なる人は衰えても、内なる人は日々新たにされています。」
= パウロはコリントの教会の人たちと同じ信仰の霊をもっているので、励まし合うことができることを感謝しています。その同じ信仰とは、主イエスをよみがえらせた方が、私たちをもイエスとともによみがえらせ、あなたがたと一緒に御前に立たせてくださることを知っている」という信仰です。
* この信仰によって、パウロは三つの点で「私たちは落胆しない」と励ましています。
(1) 「外なる人は衰えても、内なる人は日々新たにされている」という信仰
+ 「外なる人は衰えても、内なる人は日々新たにされている」というこの事実はすばらしいものです。外なる人は否応なく衰える(=滅びる)のです。しかし「内なる人」はどうでしょうか。衰え、滅びることなく、なんと「日々新たにされている」のです。この「内なる人」というのは内向的な人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その人とは「宝そのものである『キリスト』」のことです。
(2) 「一時の軽い苦難は、それとは比べものにならないほど重い永遠の栄光をもたらす」という信仰
+ 「内なる人」に働く御霊によっても私たちは強められますが、同時に苦難を通しても、私たちの信仰を成長させられ、私たちに「重い永遠の栄光」がもたらされるのです。
パウロもローマ書で「今の時の苦難は、やがて私たちに啓示される栄光に比べれば、取るに足りないと私は考えます。」(ローマ8:18)と語っています。「今の苦難、後の栄光」―この終末的信仰によって、私たちは落胆しないのです。
(3) 「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目を留める」という信仰
+ 私たちが落胆しないための信仰は、「見えないものは、永遠に続く」ということ、そこに目を留めるという信仰です. 「内なる人間」は、キリストの内にあって新たに創造された人間(Ⅱコリント5:17)であり、今すでに復活したキリストの新しい生命にあずかって、栄光から栄光へと進んでいる人間を意味するとしています。
結言.
[Ⅱコリント4:17-18]「17. 今の時の軽い患難は、私たちのうちに働いて、測り知れない、重い永遠の栄光をもたらすからです。18. 私たち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こそ目を留めます。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いつまでも続くから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