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 고린도후서 5:14-19 -

샬롬선교회 


[고린도후서 5:14-19]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서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이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분들을 위해 사는 자'이며, ‘육에 따라 사람을 알고자 하지 않는 자'를 말하며, 18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로서 났으며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1. "새로운 피조물"로서 산다. [고린도후서 5:14-17]

 

+ 14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 그것은 그의 '십자가의 대속(代贖)'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 죽으신 사랑입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실제로 죽은 것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2천 년 전에 유대 땅 예루살렘 성 밖에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우리의 모든 죄의 책임을 담당하셨고 실제로 우리의 모든 죄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 모두는 예수님과 함께 실제로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4절에서 우리가 생각하건대라고 합니다. 즉 바울은 새로운 시점(관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요한 관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의 관점은 15절에서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은 16절에서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라는 것입니다.

 

+ 이 두 가지 관점을 하나로 정리한 것이 17절의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 사람은 새롭게 만들어진 자입니다.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표현입니다. "보라.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는 그야말로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하면 '아서'(עָשָׂה)3인칭 복수 수동태 완료형입니다. 확실히 그렇게 될 것을 전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 "보라, 새것이 되었다"는 말씀은 '이제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이제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 그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완전히 새로워졌다.'라는 의미입니다.

 

2.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자로서 산다. [고린도후서 5:18-19]

 

+ 지금까지도 고린도후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 '보물을 담고 있는 흙 그릇'이라고 표현해 왔습니다만, 여기에서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자'라고 규정합니다.

=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란 '화목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화목'을 알기 쉬운 말로 말한다면, '관계를 회복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임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자(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 "화목"에 관한 동사의 모든 주어는 "하나님"이며, 우리는 항상 받는 편입니다.

, 하나님께서 '화목케 하시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적대하고 있을 때조차도 하나님의 편에서는 이미 화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에게 있어서 "화목"이란 결코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 능동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 18절에서 "(하나님)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먼저 무조건 우리를 '받아주셨다(수용하셨다)''수용'의 개념입니다. 이것이 '화목의 의무'의 전제가 되는 '화목'의 사건입니다.

= 고린도후서 5:18-20절에서 말할 수 있는 또 하나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화목의 임무란 다툼이나 적의를 가진 양자를 중재하는 역할이며, 또한 객관적 입장에서 한 중개자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그리스도)을 대신하여 말하는 청원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다른 말로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와 하나님을 원수 되게 만들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관계가 친근한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골로새서 1:21-22).

[골로새서 1:21-22]"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 곧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위해 목사들과 전도자들을 온 세상에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결언

 

+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라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의 속죄의 죽음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로마서 3:24). 그로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맡기신 "화목하게 하는 직분"에 충실하여, '복음(구원의 좋은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