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

- 히브리서 12:8-10 -

샬롬선교회 


[히브리서 12:8-10]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은 자녀가 된 우리들을 오히려 새로운 과제를 주어 훈련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고, 그렇게 하여주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더욱 더 갈망하고 싶습니다.

 

1. 육신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가 대비되어 있습니다. [본문, 12:9-10]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 "육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를 징계합니다(곧 훈련합니다).

이러한 전제는 부권(/아버지의 권위)이라고 하는 것이 확립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현대는 그러한 부권이 맞지 않는 시대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시대입니다. '아니, 집안에 아버지가 있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부권이라는 것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시대에 부권을 발휘하면 힘들고 피곤한 시대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잠언 15:5]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 아버지 하나님(영의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징계합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불립니다. 아버지 하나님(영의 아버지), 모성(母性)을 깊이 간직한 부성(父性)의 권위를 가진 분입니다. '영의 아버지', 즉 하나님의 부권은 보다 높은 수준으로 자녀인 자들에게 관계됩니다. 물론 육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자녀들에 대하여 유익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훈련을 실시하는 것입니다만, 그 목적은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에 주목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기 위한 훈련이란

 

+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입니까?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행해지는 하나님의 모든 훈련은, 결코 달갑지 않은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슬프고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이 되면 그것이 곧 자신의 유익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 주목할 말씀(히브리서 12:1-5)

[히브리서 12:1-5]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 우리는 사실 많은 하나님의 훈련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영의 아버지는 육친의 아버지 이상의 분이기 때문에, 그 훈련 수준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 수준 높은 것이라는 점은 쉽게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데 있어서 "모든 무거운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은 이 흐름 속에 하나님의 훈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영의 아버지는 우리들이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도록훈련을 하시는 것입니다.

영의 아버지는 우리들이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도록" 훈련한다는 것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다"라는 이 두 말씀을 제외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다"라는 말씀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다가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어떤 일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혹은 사람에게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들을 때, 화를 잘 내는 경우는 없습니까? 별로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반응이라고 만약 생각하고 있다면, 영의 아버지는 "자신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몇 번이나 같은 일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에 예민하게 조명할 수 있는 훈련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았다고 하면,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은 자신이 어쩌면 모래 위에 누각을 쌓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사랑하는 자에게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버리게 하여, 죄와 싸울 수 있도록 징계하는 것입니다.

 

+ 과연, 이런 아버지의 역할을 다해 주시는 분이 이 세상에 있을까?

이 세상의 아버지는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징계하지만, 영의 아버지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철저하게 징계하는 것입니다그것은 곧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사랑의 증거인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은 그 모델입니다. 하나님이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인도하는데,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많은 고통을 통해 성취하는 것은 만물의 목적이자 또 원인이기도 한 분으로서 합당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 인간의 배후에서 죄 속에 있는 나를 기뻐하는 사탄에 대해, 그 힘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는 방법은 죄와의 싸움과 무관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하늘로부터 보내시고, 이 세상의 죄로 덮인 한가운데에 둠으로써, 그 싸움에서 승리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죄와의 싸움에서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다'. - 이 싸움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하시려고,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들을 훈련시킵니다.


[요한삼서 1:2-3]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