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권위
- 마태복음 8:5-10 -
샬롬선교회
[마태복음 8:5-10]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権威の下/新改訳]'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서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사는 영원한 집이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재건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재건된다'는 것은 원래 인간에게 부여되었던 권위가 하나님의 적에 의해서 상실되었기 때문에 다시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 권위를 아버지로부터 받고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님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권위'
신약성경에 기록된 '권위'로 번역된 그리스어의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신약성경에서 102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의미로는 '권위' 뿐만 아니라 '권능', '특권', '권세'로도 번역이 됩니다.
(1) '하나님의 권위'와 '사탄의 권위'의 상극(相克)
+ 하나님의 피조물로 최고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갖춘 천사장(`루시퍼'라고도 함)가 어떻게 하나님의 적이 되어 '사탄'이 되었습니까? 존재로서 최고의 지위에 있던 천사가 왜 그 지위를 버리고 하나님을 적대하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몰아붙인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원인이 어쨌든, 최고의 위치에 있던 천사가 하나님의 적인 '사탄'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적이 된 '사탄의 권위'와의 싸움은 천지창조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정점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는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 권위를 부여받은 인간에게 사탄은 교활하게 속여 그 권위를 빼앗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탄을 '거짓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요한 8:44). 실로 모든 인간은 이제 이 '사탄의 권위'의 지배 속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권위'를 회복시킨 두 번째 아담(예수)
+ 예수님은 제2의 아담이 되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는 권위를 사탄으로부터 되찾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권위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메시아 왕국에서는 그 권위를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받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ἐξουσία)'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주신 주(主)이신 그리스도의 '권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세상의 온갖 권위와 권능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지배, 권력, 주권, 왕좌 위에 아들을 앉히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메시아 예수(제2의 아담)에게 주신 '권위'는, 아버지의 오른쪽 자리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20-22)
2.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던 백부장
+ '중풍병에 걸린 백부장의 종'의 사건은 단순히 '치유'가 주요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권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이방인인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부여된 권위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종의 병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쳐 주소서'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백부장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만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원문에는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서' 라는 말 속에 예수님의 강한 의지가 표명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긍휼이 발동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유대인의 상식을 뿌리째 뒤엎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부장은 이방인이었고, 그 종도 이방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라고 예수님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는 그가 당시의 상식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8:9] = 백부장은 자신도 '남의 수하[権威の下/新改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즉 명령을 받는 입장에 있는 몸임을 표명하고, 더욱이 자신이 명령하는 입장에 있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부하들은 상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요구됩니다. 이건 동서고금 변함이 없어요. '권위'란 높은 입장의 자가 행사하는 힘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미 '권위'라는 말이 '산상의 설교'의 마지막에 사용되고 있었습니다(마태 7:29).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도 예수님을 향해서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한 19:11)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권위'란 위(=하나님)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8:10]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놀라움은 '권위'에 대한 백부장의 이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했는데도 그는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라며 이어서 "나도 '남의 수하[権威の下/新改訳]'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것에 예수님은 놀란 것입니다. 이 '놀라셨다'라고 번역된 말씀은 '사우마조-'(θαυμάζω), 군중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다'('엑프레소-'(ἐκπλήσσω)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놀라움'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며 감탄과 칭찬할 만한 놀라움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태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았던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믿음에 대해 예수님이 감탄하고 칭찬한 것은 선민의식이 강했던 유태인들에게는 발이 걸려 넘어져서 화를 내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결언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이 가지신 권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예수님이 보셨을 때, 즉시 그의 종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바른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권능)을 경험해야 합니다.
어떤 때라도 예수님에 대해서, "주여.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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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の権威
- マタイ福音書8:5-10 -
シャローム宣教会
[マタイ福音書8:5-10]「5.イエスがカペナウムにはいられると、ひとりの百人隊長がみもとに来て、懇願して、6.言った。「主よ。私のしもべが中風やみで、家に寝ていて、ひどく苦しんでおります。」 7.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行って、直してあげよう。」 8.しかし、百人隊長は答えて言った。「主よ。あなたを私の屋根の下にお入れする資格は、私にはありません。ただ、おことばをいただか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私のしもべは直りますから。9.と申しますのは、私も権威の下にある者ですが、私自身の下にも兵士たちがいまして、そのひとりに『行け。』と言えば行きますし、別の者に『来い。』と言えば来ます。また、しもべに『これをせよ。』と言えば、そのとおりにいたします。」
10.イエスは、これを聞いて驚かれ、ついて来た人たちにこう言われた。「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わたしはイスラエルのうちのだれにも、このような信仰を見たことがありません。」
序言.
「御国の福音」とは、別の言葉で言い表すなら、「神と人とが共に住む永遠の家が、神の権威によって再建(回復)されるという良きおとずれ」です。「再建(回復)される」とは、本来、人間に与えられていた権威が神の敵によって喪失したために、再びそれが神の権威によって回復されることを意味します。御子イエスはその権威を御父から受けているのです。
1. イエスに与えられた神の権威
新約聖書に記されている「権威」と訳されたギリシア語の「エクスーシア」(ἐξουσία)は、新約聖書で102回使われています。意味としては、「権威」だけでなく、「力」「特権」とも訳されます。
(1) 神の権威とサタンの権威の相克
+ 神の被造物で最高の知恵と美を備えられた大天使(「ルシファー」とも呼ばれている)が、なにゆえに神の敵となって「サタン」となったのでしょうか。霊的な存在として最高の地位にいた御使いが、なぜその地位を捨てて神に敵対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しょうか。そのように駆り立てたのはいったい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聖書には記されていません。その原因はどうであれ、最高の地位にいた御使いが神の敵であるサタンとなってしまったことは事実です。「神の権威」と神の敵となった「サタンの権威」との戦いは、天地創造の時からすでにはじまっていたのです。
+ 人間はすべての被造物の頂点に置かれただけでなく、すべての被造物を支配する権威をも与えられていました。その権威を与えられた人間に対して、サタンは狡猾にだましてその権威を奪ったのです。ですからイエスはこのサタンのことを「偽りの父」と呼んでいます(ヨハネ8:44)。実にすべての人間は、今やこのサタンの権威の支配の中にあるのです。
(2) 神の権威を回復させた第二のアダム(イエス)
+ イエスは第二のアダムとなって死から復活したことによって、本来、人間に与えられているすべての被造物を支配する権威をサタンから取り戻して下さったのです。ですから今日においてもキリストにある者たちはその権威を行使することができます。しかもメシア王国においては、その権威を最大限に用い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れは神の権威を与えられた復活のキリストから賜物として与えられるものです。私たちが神の子どもとしての特権(ἐξουσία)をもって生きるためには、その与え主であるキリストの権威についての正しい理解が必要です。
+ 御父は御子に、この世におけるありとあらゆる権威と力を与えただけでなく、すべての支配、権力、主権、王座の上に御子を置かれたのです。このようにメシア・イエス(第二のアダム)に与えられた権威は、御父の右の座において今も働いているのです。(エペソ書1:20-22)
2. 「神の権威」に対する正しい理解をもっていた百人隊長
+ 「中風になった百人隊長のしもべのいやし」は単に「いやし」が主要点ではなく、むしろそれを「いやす」ことのできる「権威」に焦点が当てられているように思われます。
つまり、異邦人である「百人隊長」が、イエスに与えられている権威について正しく理解していたことがきわめて重要な点なのです。本文の興味深いことは、百人隊長がイエスのもとに来て、自分のしもべの病の状況を説明していることです。「いやしてください」とは一言も述べていません。百人隊長は「主よ、私のしもべが中風のために家で寝込んでいます。ひどく苦しんでいます」と言っただけです。それなのにイエスは、彼に「行って彼を治そう」と言われたのです。
+ 原文には「わたしは行って彼を治そう」となっています。
つまり、「わたし」(ἐγώ)という言葉が強調されているのです。「わたしは行って」ということばの中に、イエスの強い意志が表明されています。ここにイエスのあわれみが発動されているのですが、このことは当時のユダヤ人の常識を根底から覆すものであったはずです。なぜなら百人隊長は異邦人であり、そのしもべも異邦人だと考えられるからです。百人隊長も「主よ、あなた様を私の屋根の下にお入れする資格は、私にはありません。」と言ってイエスの申し出を辞退していることは、当時の常識を知っていたようです。しかし彼は、「ただ、おことばを下さい。そうすれば私のしもべは癒やされます。」と嘆願しています。
本文、[マタイ福音書8:9] = 百人隊長は、自分も「権威の下にある者」であること。つまり命令を受ける立場にある身であることを表明し、さらに自分が命令する立場にあることも言っています。軍隊では、部下は上官に対する絶対的服従が求められます。これは古今東西変わりません。「権威」とは「高い立場に立つ者が行使する力」なのです。マタイではすでに「権威」ということばが「山上の説教」の最後に使われていました(マタイ7:29)。
ローマ総督であったピラトもイエスに対してこう言いました。「私にはあなたを釈放する権威があり、十字架につける権威もあることを、知らないのか」と。それに対してイエスはこう言います。「上から与えられていなければ、あなたにはわたしに対して何の権威もありません」(ヨハネ19:11)と。つまり、「権威」とは上(=神)から与えられるもの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
本文、[マタイ福音書8:10] = 「わたしはイスラエルのうちのだれにも、これほどの信仰を見たことがありません。」というイエスの驚きは、「権威」に対する百人隊長の理解に対してでした。
イエスが百人隊長に「行って彼を治そう」と言われたにもかかわらず、彼は「ただ、おことばを下さい。そうすれば私のしもべは癒やされます」と言い、さらに、「私も権威の下にある者だからです。私自身の下にも兵士たちがいて、その一人に『行け』と言えば行きますし、別の者に『来い』と言えば来ます。また、しもべに『これをしろ』と言えば、そのようにします。」とその理由を語りました。
これにイエスは驚かれたのです。この「驚かれた」と訳されたことばは「サウマゾー」(θαυμάζω)、群衆がイエスの教えに「驚いた」(「エクプレッソー」ἐκπλήσσω)とは異なります。イエスの「驚き」は、「イスラエルのうちのだれにも、これほどの信仰を見たことがありません」と「感嘆と賞賛に値する驚き」を意味しています。当時のユダヤ人のだれももっていなかった「イエスの権威に対する信仰」に対して、イエスが感心し称賛したことは、選民意識の強かったユダヤ人にとってはつまずきとなり、怒らせるのに十分だったのです。
結言
百人隊長の信仰は、イエスに与えられている権威に対する信仰です。その信仰をイエスがご覧になったとき、すぐさま「しもべはいやされた」のです。この信仰を私たちも培う必要があります。つまり正しい知識は必要です。そして、みことばの権威(力)を経験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どんなときでもイエスに対して、「主よ。おことばをください」と祈れる者になりましょう。
[Reference] : shmission, 「説教 信仰 教養 - 神の権威 - マタイ福音書8:5-10 -」 http://shmission.com/xe/?mid=sh_jp_board_9&document_srl=108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