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 냄새

- 요한복음12:1-8 -

샬롬선교회 


[요한복음12:1-8]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서언

 

베다니 마을에 사는 마리아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른 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눈빛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베다니의 마리아와의 관계에 주목하여 살펴봅니다.

 

1. 예수님에게 '베다니'라는 마을의 존재

 

'베다니'라는 마을은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생애에서 특별한 마을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예루살렘의 남동쪽 약 3km(요한복음11:18에 따르면 15스타디온), 감람산의 동쪽 기슭에 있던 마을입니다(마가복음11:1, 누가복음19:29). 특히 마지막 1주일 동안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를 왕복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베다니 마을이 특별한 장소였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곳에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그 형제 나사로가 살았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11). 또한 예수님의 승천 장소도 이 근처라고 합니다(누가복음24:50, 사도행전1:12).

 

2.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음

 

본문, 요한복음12장에 있는 하나의 기사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유월절 6일 전의 사건으로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서 예수님과 그 일행을 대접하기 위한 식사(저녁 식사)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1-3]

= 이 기사에서, 마르다는 여전히 환대를 위한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 사이에 섞여서 식사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한편, 마리아는 무엇을 했느냐 하면,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마음을 한결 만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비싼"이란, 엄청나게 비싸다고 하는 의미로, 지금으로 말하면, 삼백 데나리온은 약 1년분의 급료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 나드 향유란: 감송이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하는 히말라야 원산의 기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매우 비싼 것이었습니다. 당시 향유를 손님의 발에 붓는 풍습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마리아가 취한 행동은 이례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일을 그녀는 했습니다. ]

 

[본문, 4-7]

= 왜 마리아는 그런 비싼 향유를 예수님에게 아낌없이 부었을까?

 

+ 생각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남동생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감사 때문입니다.

자신의 동생인 둘도 없는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감사로서 행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비록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은 사람을 게다가 죽어 4일이나 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를 예수님께서 되살렸으니 춤추고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매우 중요한 일"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 마리아는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 -

마리아라는 여자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여자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깨달음에 있어서는 좀 둔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 수난의 예고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기쁘게 한 마리아는 제자들 이상으로 그것을 깨달았다고 보아도 지나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과 친밀하게 지내던 그녀가 왜 예수의 무덤에 가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른 여자들이 무덤에 정식 매장을 시체에 치장하기 위해 가는데도, 마르다와 마리아는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사랑을 받은 자매들이라면 더욱더 그 무덤에 갔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나사로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죽은 후, 부활한다.”는 말을 예수님께로부터 여러 번 들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특히 마리아는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깨달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것을 보고 있던 제자 중 한 사람이(요한은 분명히 예수를 배반하게 될 '가롯 유다'[그는 도적이었고, 돈지갑을 맡겼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을, 항상 훔쳤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만(본문, 요한12:6),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한 것을 보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어리석은 낭비로 비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때에도 마리아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냥 놔둬라."라고

 

[말라기3:8-9]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결언

 

+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몸에 향유를 바르는 슬픈 일이지만 마리아는 '장례를 지낸 후에 부활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례를 준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있는 가장 비싼 향유를 이 때야말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에게 부은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믿음은 참으로 깊은 곳에서 확실히 연결되어 있은 것입니다.

 

+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병행 기사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은 없고 '한 여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요한복음에는 그 부분이 없습니다. 대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없으나, 요한복음에만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라는 표현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