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의 주체와 대상
기독교 예정론에 있어서, 주체는 누구이며, 그 대상은 누구인가? 즉 누가 누구를 예정했다는 말인가? 이같은 문제에 대한 해답은 기독교 예정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기초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다. 단순하게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예정하셨다고 대부분이 알고 있으나,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1. 예정의 주체
우주의 모든 섭리와 경륜을 작정하신 주체는 물론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인간들의 구원과 멸망에 대한 섭리와 경륜을 예정하신 주체 역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을 하려고 하는 것은 예정의 주체가 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에게 있어서 어느 위(位)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에게 있어서 어느 위(位)가 특히 예정의 주체가 되시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예정 사역(豫定使役)은 삼위 하나님의 일치한 동일 사역인 것은 사실이다. 창조된 모든 이성적 존재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시고, 멸하시기로 유기하시는 하나님의 예정 사역을 하나님에게 삼위의 구별 없이 돌리는 것은 성경의 바른 교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경륜에 있어서 사역상 삼위의 각 특성이 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섭리 과정을 보면, 예정하시고 창조하셔서 타락한 인간을 죄에서 구속(救贖)하시고, 구속된 성도를 성화(聖化)시키는 사역을 통하여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런데 성도를 성화시키는 사역은 성령 하나님께, 인간을 죄에서 구속시키는 사역은 성자 하나님께,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시는 예정 사역은 성부 하나님께 각각 그 주된 임무를 돌리는 것을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그러나 삼위의 하나님께서 각 위가 사역을 하실 때에 다른 위와 관련이 없는 단독적인 사역(單獨使役)을 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성부 하나님께서 예정하셔서 선택하실 때에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동참(同參)하셨고, 성자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속하실 때에도 성부와 성령 하나님께서 동참하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를 성화(聖化)시키는 사역을 하실 때에도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 동참하신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예정 사역을 하실 때에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동참하신 가운데 성부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신다는 말이다.
2. 예정의 대상
하나님의 작정의 대상은 온 우주의 피조물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에 국한된 하나님의 예정의 대상은 피조물 중에 이성적 존재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그 중에도 특별히 인간이 예정의 본격적인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그 대상을 생각한다면 이성적인 피조물 모두를 그 대상으로 정할 수 있다. 즉 이성적 피조물에는 인간을 비롯하여 선악간(善惡間)의 영물(靈物)까지 포함이 되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중보(仲保)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포함을 시킬 수 있다. 예정의 대상인 인간도 일부분이 아니고 선택된 자나 버림받은 자나 지음받은 전 인류 모두가 예정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인 선의 세력을 포함하는 거룩한 천사들이나 악의 세력을 포함하는 사단들까지도 모두 예정의 대상이 된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박형룡 박사는 “또한 택한 천사들을 솔직히 거론하여(딤전5:21) 피택하지 못한 천사들도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에 우리는 천사들의 예정에 제 이차적인 주의를 향하게 되며 연하여 그 예정의 성질이 어떠한가 하는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하였다. 즉 영물인 천사들도 선택된 거룩한 천사와 유기된 악한 천사들로 이미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들 천사들에 대한 예정의 성질을 박형룡 박사는 이어서 “천사의 예정은 하나님이 자기 보시기에 충족한 어떤 이유로 어떤 천사들에게는 창조에 의하여 부여된 은혜에 추가하여 견인(牽引)의 특별은혜를 주시고, 다른 천사들에게는 그것을 주지 않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성경의 예정관에 응합(應合)할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천사들, 즉 영물들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대하여 자세히 밝혀 주고 있지 않다. 그것은 성경이 천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섭리와 경륜에 대해서 주로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떠한 피조물도 인간을 능가할만한 고등한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과 유기로 예정하시고 섭리하시는데 그만 못한 영물들에 관해서야 더 언급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예정의 대상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조심성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삼위 중에 한 위가 되시는 성자 하나님은 예정의 주체이시다. 그런데 예정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예정의 주체로 말씀하기도 하고(요13:18, 15:16, 15:19) 때로는 예정의 대상으로 말씀하기도 한다(눅9:35, 사42:1). 이러한 성경의 모순 아닌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서 기독론(基督論)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기독론적 논의를 거치지 아니하고는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시며, 절대 의인(義人)이시면서 죄인이시고, 예정의 주체이시면서 예정의 대상이시다. 이것은 중보자가 가지는 특성이다. 하나님만으로서나 인간만으로서, 또는 의인만으로서나 죄인만으로서, 그 어느 하나만의 특성으로는 중보자의 특성을 구비(具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보자 그리스도는 예정의 주체이시면서 예정의 대상이 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체(本體)이신 그리스도는 어디까지나 예정의 주체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자이시므로(빌2:6∼8상)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예정의 대상이신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예정의 성격이 우리와 같은 것일까? 하는 문제가 또 발생한다. 즉 그리스도와 우리가 예정의 대상이 됨에 있어서 그 성격이 동일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성경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위치가 다른 것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중보자로서의 첫 아담, 첫 열매, 맏아들의 위치로서 예정의 대상이 되심이 우리와 분명하게 다른 점이다.
결국 하나님의 예정에 있어서 중보자 그리스도는 예정 대상의 본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본체이시고, 우리 성도는 그 안에서 택함(엡1:4)을 입은 본체의 내용들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버림을 받은 자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聖徒)는 일체를 이루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에 성경은 그리스도가 예정의 대상이 되심을 말씀해 주고 있다.
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