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의 어의와 개념

 

기독교 예정론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보고 이에 대한 올바른 정의(定義)를 내리기 위해서 먼저 예정이란 말의 뜻과 성경적인 개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예정의 어의(語義)와 개념에 대한 이해는 예정론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있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필요 조건이다. 왜냐하면 예정의 어의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예정론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1. 예정이란 말의 뜻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예정(豫定, predestination)’이라는 단어의 뜻은 대개가 미리 계획(計劃)을 확정(確定)해 놓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작정 섭리 안에서 인간 각 개인에 대한 모든 경륜(經綸)을 미리 결정해 놓으셨다는 의미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가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이라고 하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시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구약 성경에는 예정에 대한 진리를 명시해 주고 있는 여러 명사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예정으로 직역되는 것도 있고, 더러는 그 의미만을 내포(內包)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구약성경에 있어서, 예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야다라는 말과 빠카르라는 말이 있는데 야다라는 단어는 지식한다또는 인식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지능적인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자를 사랑의 관심이나 선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좀더 깊은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빠카르라는 단어는 선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영원적 선택을 포함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신약성경에 있어서, 예정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헬라어는 기노스케인(γινωσκειν)’프로기노스케인(πρωγινωσκειν)’프로그노시스(προγνωσις)’라는 말이 있는데 이 모두가 예지(豫知)’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히브리어 야다라는 말과 같이 어떤 자를 사랑의 관심이나 선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에클레게스다이(εκλεγεσθαι)’, ‘에클로게(εκλογη)’라는 말도 있는데 이 모두는 선택이라는 뜻으로서 영원적(永遠的) 선택(選擇)을 포함하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프리오리제인(προοριζειν)’이나 프로오리스모스(προορισμος )’ 또는 프로티데나이(προτιθηναι)’프로데시스(προθεσις)’등의 헬라어가 예정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절대적(絶對的) 예정을 표현하는 의미를 가진 낱말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명사들이 한결같이 예정이라는 신학적 명사로 번역된 구원론적 술어 안에 함유(含有)되어 사용되고 있다.

 

2. 성경적 개념

 

예정 교리는 하나님의 작정 섭리에 포함된 인간의 구원과 멸망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진리이다. 하나님의 작정 섭리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불변적인 것으로서 유한(有限)한 피조물과는 아무런 조건이나 관계됨이 없이 하나님의 절대적 의지에 의한 영원한 신적인 목적에서만 기원(起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작정 섭리에 의하여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만물을 운행(運行)하시며, 인간 세상에서 진행되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모든 역사과정을 주관하시며, 온 세상 인간 개개인의 전 생애를 인도하시며, 천사와 마귀는 물론 모든 영계(靈界)에 이르기까지의 피조계에 속한 전 우주를 미리 작정하신 대로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작정 섭리에 대한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온 우주에 속한 모든 태양계들의 질서를 비롯해서 천체들의 위치와 운행은 물론 지구의 공전과 자전, 그리고 모든 만물들의 생성 과정들과 인류 역사에 있어서 모든 문명들의 번영과 쇠퇴, 그리고 국가들의 흥망성쇠 또는 전쟁과 평화 등을 비롯한 역사의 세미한 부분에 이르는 과정들과 인간 각 개인의 인종, 국적, 성별, 용모, 개성, 재질 등은 물론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아주 세미한 부분에 이르는 과정과 구원과 멸망에 대한 섭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기쁘신 뜻에 따라서 작정하시고 예정해 놓으신 대로 섭리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작정 섭리는 천사들의 모든 사역과 사단의 세력들의 세심한 활동의 방법이나 범위까지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것은 천사나 사단이 모두가 영물(靈物)들이지만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모두가 만유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이외의 모든 사물이나 사건들은 절대자 하나님의 작정 섭리 안에 들어 있어서 출발에서부터 과정이나 도달점에 이르기까지 한치도 어김이 없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섭리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우주와 만물은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것들이 계속적으로 보존(保存)되고 운행되는 것이 모두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나 어느 부분에 있어서도 어느것 하나 하나님의 작정하신 섭리를 벗어나 존재하거나 발생(發生)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어떠한 사실에 대한 결과나 또는 변화 등이 피조물 자체에 의한 어떤 조건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은 하나도 있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섭리에 의하여 모든 만물이나 만사가 출발되고, 과정이 이어지고, 결과가 맺어지는 것이다.


개혁주의(改革主義) 신학자들은 인류 역사와 자연계의 모든 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세계 즉 역사와 자연계를 시간안에서 영원한 이상 즉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 완전히 실현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섭리 안에 예정 섭리가 포함 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예정론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기쁘신 뜻에 의해 지으신 모든 이성적 존재들을 구원얻을 자와 멸망받을 자로 미리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다.


루터(Luther)는 그의 로마서 주해(註解)에서 모든 사물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의도(意圖)에서 나고 또 그것에 의존한다. 이런 관계로 생명의 말씀을 받을 자와 그것을 믿지 않을 자, 그들의 죄에서 구득(求得)될 자와 그 죄 가운데서 강포해질 자, 또한 칭의(稱義)를 받을 자와 정죄(定罪)함을 받을 자가 다 예정되었다고 하였다.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 박사는 우리는 이 세계 질서를 하나님이 그것에 의하여 자기의 계획을 수행하시는 일대 조직으로 보기까지 그렇게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칼빈 선생의 명철한 유신론(有神論)은 만물을 수중에 파악하신 전능자의 절대적 존엄(尊嚴)의 예민한 의식을 그에게 주고 또한 그를 명확한 예정론자가 되게 하였다. 이 전지(全知)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 영원한 목적에 관한 교리에서 그는 인류의 타락과 구속의 역사의 프로그램을 발견하였다고 말했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한 예정론은 수 세기 지나오는 동안 숱한 반대자들의 비난과 조소(嘲笑)를 받아 왔다. 특히 알미니안주의자(Arminian)들의 끈질긴 반대는 금일에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소위 칼빈주의자(Calvinist)라고 자처하는 자들까지도 더러는 예정론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으로 받아 들이고 성령의 조명(照明)에 의하여 그 깊은 뜻을 올바르게 깨닫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 섭리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반대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절대적인 작정과 예정 섭리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박형룡 박사는 칼빈주의 예정론에 맹렬히 반대함에 있어서 알미니안주의자들과 동의하는 이성론자들과 무신앙자들이 성경의 영감을 믿는 신앙의 견제(牽制)를 받지 않으되 오히려 고백하기를 성경은 칼빈주의의 의미로 해석되는 때에만 공정히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정론을 반대하거나 부정한다면,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나 완전영감설(完全靈感說)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며, 성경 자체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