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在


내용 요약


實存이란 存在라는 뜻이다. 著者神觀을 다룸에 있어서 전통적 방법을 따르지 않고(전통적 神理解는 너무나 희랍哲學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다) 實存本質屬性으로 구분해서 취급한다.

 

1. 신의 본질


신의 본질을 여덟 가지로 해서 제시한다.


사랑

구약에서는 "헤세드""아만"이란 말이 있다. "아만"이란 말은 본래 이 이스라엘인에 대하여 보여준 不變性誠實性을 나타낸다. "헤세드"는 야웨신의 "미쁘심"(성실성과 믿음직함)을 말하고자 할 때 사용했다. 야웨신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계약관계라 하는데 이 관계를 말할 때 "헤세드"의 관계라 한다. 구약성서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아합하"라는 말인데 상식적으로나 합리적으로 타산적으로 생각해서 결정한 행동이 아니라 야웨신의 일방적인 계획과 섭리에 따라 상대방의 道德的, 宗敎的 格에 관계없이 나타난 사랑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용어는 hen 이다. 이 말은 "앞에서 잘 보인다", "앞에서 은혜를 입는다"는 뜻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주로 세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에로스는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갖고자 하는 열렬한 의지, 의욕을 뜻한다. 필레오는 모든 사람 사이에 주고 받는 사랑이다. 신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의미하지 않는다. 아가페는 신의 사랑에서 발견되는데 높은 곳에 계시는 자의 사랑,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을 높이 올려주는 일을 한다. 신의 일방적이고 하향적인 사랑과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계시된 사랑으로 이해한다.


구약성서는 대체로 "루아하"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뜻은 "입김", "바람"이라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프뉴마"가 있다. 이 말은 영어로는 Spirit, 한국어로는 이라고 한다. 聖經에서 말하는 이란 첫째로 구약에서 야웨으로 이해할 때, 먼저 그를 物質的存在와 비교해서 非物質的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三位一體神"一體"를 의미한다. 셋째로 이신 신은 모든 존재의 생명력이 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물질이 가지는 모든 제약 조건을 받지 않으시며 , 변화도 없는 으로 존재한다.


創造者

창세기 11절에 "창조"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바라"라는 말인데 창조를 말할 때만 사용되고 있다. 신은 그의 絶對權을 가지고 에서 宇宙萬物""로써 창조하셨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다(Creatio ex nihilo). 이 말의 학적인 유래는 제2마카비서 728절에 나온 말이다. 바르트는 야웨을 피조물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절대권을 가지고 被造者를 지배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칼빈은 신이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존재에 생명을 부여하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모든 것을 감독 보호, 인도하여 그가 창조하신 놀라운 세계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고 한다.


全知, 全能, 全在

全知라는 思想은 필연적으로 時間과 공간과 연결시켜서 고찰되어야 한다. 에게는 과거나 未來가 없고 언제나 現在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동시에 보신다는 것이다. 全能이란 말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다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신이 원하시면 다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르트는 은 그의 全能을 가지고 를 주관한다고 한다. 모든 인간에게 가 가장 큰 문제라면 그것을 극복한 신이 全能하신 분이라는 것은 당연한 論理. 은 어디에 있을까? 신은 어디든지 계신다. 만약 이 모든 곳에 계시지 않으면 그 이 계시지 않는 곳에 있는 信徒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그는 萬物 안에 충만하게 계신다.


永遠

人生時間적이요 永遠存在이다. 다른 모든 존재는 시간의 制約性 안에서만 존재하나 은 그 제약성을 완전히 초월하고 영원 속에 계신다. 틸리히는 시간을 아우구스티누스적 思考方式을 적용하면서 그것은 "기억된 과거와 예측된 미래가 현재 안에서 체험된 時間統合"이라고 한다. 그러면 신의 영원성이란 무슨 뜻인가? 신은 첫째로 시간과 영원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신은 영원과 시간을 떠나서는 계시지 않는다. 셋째로 신의 영원성은 유한한 시간에게 무한한 價値와 의미를 부여해 준다. 마지막으로 신의 영원성은 모든 만물의 완성의 可能性을 의미한다.


不變

불변성이란 그의 모든 에 있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변동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완전하시기에 일체 변화가 없다. 야웨은 그의 本質 가운데 무엇이 부족해서 더 모으거나 축적해서 그의 능력이 증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영원한 미래까지 동일하실 것이다. 신의 불변성이란 모든면에 있어서 그의 절대성과 영원성과 전지와 전능에 아무 변동이 없음을 의미한다.

 

2. 屬性


저자는 二分하거나 二元論的으로 생각하지 않도록하기 위해 우리가 신의 本質을 생각할 때는 신의 屬性을 생각하면서 本質을 고찰하고, 신의 屬性을 말할 때에는 신의 本質을 생각하면서 屬性을 고찰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두가지를 같이 생각하면서 본질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속성과 속성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본질을 고찰해야 한다.


사랑

우리가 믿는 신은 他動詞的 神이며 靜寂인 신이 아니라 動的인 신이며 자아만족에 도취하여 안식하시는 신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역하시는 신이다. 신은 주체자로서 모든 것을 사랑하신다. 사람을 등급에 따라서 차별 대우하시는 것도 아니며 언제든지 동등하게 취급하신다. 신에게는 東西南北이 없다. 種族이 없다. 모든 사람이 다 신의 被造物이요 신의 子女. 이와같이 신은 언제든지 모든 종족을 전적으로 사랑하신다. 모든 피조물은 신의 사랑의 대상이다. 무엇이든지 신의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이러한 말은 곧 萬人救援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또한 신의 사랑은 언제든지 先行的이다. 대상에 의해서 要請되었기 때문에 신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요청이 있기 전에 이미 그의 攝理에 따라 언제든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다.

신의 사랑은 언제든지 새 가치를 창조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창조의 원인이나 동기가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주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가페의 본질은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창조해 주고 부여해 주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자녀가 되게 해서 신과 인간 사이에 하나의 淨福世界를 형성하게 한다.


"거룩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카도슈"라는 말이다. 이 말의 본뜻은 分離를 의미했다. "거룩한 자"는 다른 모든 존재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같이 섞일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과 거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은 전적으로 他者로서의 존재이다. 신을 절대 타자 라고 할 때, 첫째로 그를 절대자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신과 인간은 절대 타자로서 그리고 피조물로서의 관계에 서게 된다. 絶對 他者가 그의 절대성을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자기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해 주는 방법만이 양자 사이에 直接的이고 合理的인 관계를 맺게 한다. 그러므로 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제시했으나 그 자신의 본질에는 아무 변경이 없이 그대로 절대자로 있으면서 그 絶對性은 에수 그리스도라는 또 하나의 거룩한 자 안에서 그의 거룩성을 나타냄으로써 모든 것에 본질적인 변동없이 서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것이 창조자의 役事倫理.


기독교의 복음의 核心이 신의 恩寵에 의해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十字架를 통해서 죄인이 값없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한다면, 라는 것이 기독교의 모든 활동과 교훈의 핵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성서에는 두 낱말을 사용하는데 먼저 구약에서 "체다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뜻은 "표준", "方正", "正確"이란 뜻이다. 신은 자체가 의로우신 동시에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의롭다는 뜻이 된다. 신약에서는 "디카이오수네"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人間人間間의 관계를 규정하는 말로 사용되는 동시에 종교적으로는 신 앞에서의 방정한 態度와 관계를 의미한다.


기독교 신관이 당면하는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存在. 창조하신 신이 선하시면 악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신은 전지전능하신 신이므로 그의 창조에 어떤 失敗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피조자 가운데 그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를 선한 신이라고 할 때 악한 것과 대항하는 선한 신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악한 것을 대항해 싸우는 상대적 신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선악의 相關性을 넘어서 잇는 絶對的 善이다.


3. 진리


희랍어로는 "알레데이아". "보이다", "나타나다", "지적하다"라는 뜻이다. 즉 어떤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 있는 상태를 말할 때, 그것은 "진리다"라고 했다. 희랍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사람에게 옳다고 인정되는 보편 타당성이다. 구약에서는 진리에 해당하는 말이 "에메드"이다. 이 말의 뜻은 "확실", "가치", "구속력"이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참된" 것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다.

성서는 유일한 진리를 강조한다. 절대자가 둘이 잇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자도 둘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진리에도 둘이 있을 수 없다. 기독교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영생에로의 指路이며 생명력을 주시는 .


나의 생각

신의 본질과 속성을 이해함에 있어서 종합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들어 신의 속성에서 성과 사랑과 의를 따로따로 이해하지 않고 신의 사랑에서 성과 의를 발견하고, 성에서 신의 사랑과 의를 느끼고 의에서 신의 사랑과 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이해할 때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