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목  도망할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  요나서 1:1-17

                                                  류응렬 (총신대학원 설교학 교수)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밋대의 아들 요나야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의 기쁨이란 말씀이 임할 때 일어나는 것이죠. 선지자에게 가장 고통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실 때 말씀을 기다려야 하는 어둠의 시간입니다. 목사로서 가장 힘든 것은 전해야 할 말씀을 찾지 못할 때입니다. 주일 예배는 다가오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묵묵히 기다려야 할 때 이는 참으로 고통입니다. 저는 설교학을 가르칩니다. 설교학 교수라고 툭 치면 설교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가오는 설교 앞에 말씀이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을 때의 고통과 예배 직전까지 설교 준비가 되지 못할 때는 차라리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선지자 요나는 행복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요나가 할 일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지자의 선택은 단 하나죠. 그냥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의 대답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3절에 요나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니라."
   도망하는 요나.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희미하게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직접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가 어떻게 이렇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도망하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낯을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일 때 쓰는 표현입니다. 요나가 어느 정도로 타락한 선지자이기에 이렇게 반응한단 말입니까? 정말 타락하여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선지자가 되어 버렸을까요? 요나의 반응을 이해하려면 요나가 누구인지 니느웨가 어떤 곳인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요나가 누구입니까? 열왕기하 14:25절에 요나를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선지자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선지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입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요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시니라"는 표현은 조금도 이상한 말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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