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도 없이 ‘J.C’ 두 글자만이 그의 무덤임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동료·제자 애절한 헌사 

한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개혁을 위해 살다간 칼빈의 죽음 앞에 동료와 제자들은 애절한 헌사를 남겼다. 제자 데오도레 베자는 스승의 죽음 앞에 애도의 송가 ‘팔렌탈리아’(Paren talia)를 써서 헌사했다. “존경하는 칼빈이 먼지로 돌아가나니 그에게서 덕을 배울지라. 퇴락하는 로마가 가장 두려워 할 그가 이제 선인들의 통곡 속에 숨졌도다. 비열한 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그가 너무나도 초라하고 조그만 무덤 속에 누워있구나, 이름도 쓰이지 않은 채로. 겸손이 항상 칼빈과 함께 있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와 동행하였고, 그가 죽은 지금도 그와 함께 묻혔구나. 이처럼 은혜로운 자가 묻힌 무덤이여, 행복하여라. 그 유해 위에 덮고 있는 대리석이 부럽도다!”

칼빈이 임종하기 전 제네바를 방문해 칼빈을 만나고 돌아온 친구 윌리엄 파렐은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칼빈 대신에 죽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따라 우리도 이처럼 우리의 생을 끝마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라오.”

칼빈의 생애는 대적자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당시 교황 피우스 4세는 칼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이단자의 장점은 물욕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약 내게도 그와 같은 봉사자가 있다면, 나의 지배력이 바다에서 바다 끝까지 미칠 것이다”는 헌사를 남겼다.               

“죽음도 겸손하게 맞아야”
  
칼빈은 묘비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후 불과 몇 달 만에 외국학생들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그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칼빈 자신이 원했던 바였다. 칼빈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래 전 창세기 11장 4절을 주석하면서 남긴 칼빈의 말은 오직 그의 생애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오직 죽음만이 인간 육체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죽음조차도 우리의 교만을 바로잡지는 못하며, 우리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게 할 만큼 우리를 긴장시킬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교만은 화려한 결혼식에서보다 오히려 장례식에서 더욱 더 기세를 높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사례를 골똘히 생각해봄으로써, 우리가 겸손하게 살고 겸손하게 죽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어울리는 것인지 배울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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