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정리)

- 한수환 교수 -

□1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공통적으로 선포한다. 거기에서는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그가 무엇을 행하셨는가와 같은 질문이 된다. 즉 그리스도의 인격은 곧 그리스도의 사역 혹은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의 사역은 곧 모든 인간을 위한 구원사역이었다. 어떻게 보면 신약은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심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2 이런 그의 구원사역에 대해 그에게 붙여진 칭호가 잘 말해준다. “에언자” “하나님의 종” “대제사장” “그리스도” “인자” “퀴리오스” “소테르(구원자)” “로고스” “하나님”이라는 칭호들이 그러하다. 유대적 기독교인들의 고대교회는 예수의 사역을 그리스도, 즉 메시아와 인자 개념으로 파악했고 헬라적 기독교인의 고대교회는 예수를 퀴리오스와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했다(불트만).

□3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행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었다. 이 사건들은 특히 바울의 멧세지의 중심적인 의미를 가진다(참고. 고전2:2 갈6:14 고전15:14 고전3:11). 이 사건은 바울에게는 근본적인 케리그마였으며 카논 중의 카논이었다. 

□4 고대교회는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에 대해 주로 신학적으로 논의했다. 이 문제는 곧 예수의 신적인 본성과 그의 인간적인 본성과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문제였다. 달리 말해 이 문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문제이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의 한 인격(persona) 안에 두개의 본질(substantia)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예수를 신적인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이해하기도 하여 “신적인 인간”으로 보기도 하며 또 다른 이는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의 한 양태일 뿐 하나님의 위격은 아니라고 주장하여 “인간이 된 하나님”으로 보기도 한다. 오리겐은 그리스도를 “피조물” 또는 아버지에게 종속된 “두 번째 서열의 하나님” 정도로 보았고 “하나님 자신”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오리겐은 다른 한 편에서는 아들과 아버지를 본질상 하나로 주장하여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공식이 되기도 했다. 니케아 공의회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입양된 완전한 피조물” 정도로 보고 그리스도가 영원부터 “하나님이었던 분”이 아니라 구원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되신 분”으로 본 아리우스 주의자에 대항하여 마련된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실체(히포스타시스)라는 말은 본질(우시아)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5 어떻게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간성과 결합하게 되었는가? 네스토리우스는 “위격 안에서 신적인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이 결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단지 인간과 결합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그에게는 신성과 인성이 서로 두 본성으로 분리되어 각기 독자성을 가지게 되어 서로 관계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이에 맞서서 알렉산드리아의 시릴(Cyrill)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단순히 결합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릴에게는 두 본성이 서로 긴밀이 결합되기 때문에 그 독자성을 서로 교환한다. 결국 에베소서 공의회(431년)에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어떤 단성론자(오이티케스)는 그리스도의 한 본성을 말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우리와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으며 인간적인 몸을 가지고 있지않고 신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고 가현론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6 단성론자들의 특징은 가현론적인 성향을 가진다. 왜냐하면 신성은 인간성을 흡수하여 이상하게 변화되며 양자가 서로 섞이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네스토리우스 주의자들은 두 본성을 분리하기 때문에 양자가 결합되지 않고 다만 접촉할 뿐이다. 단지 의지적으로 일치할 뿐이지 밀접하게 결합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칼케톤 회의(451년)는 단성론과 네스토리우스 주의자들에게 분명한 반대를 그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하고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하다. 두 본성 안에서 하나의 그리스도가 인식될 수 있다고 선언되었다. 이 두 본성은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구분되지 않는다고 선언되었으며 비록 구 본성을 가지지만 하나의 위격만을 가진다고 하였다.

□7 종교개혁자들은 고대교회의 양성론 문제를 인식했지만 그들보다 훨씬 실존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의 관심은 그리스도에 관한 이론이 어떠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개개인이 그리스도에 의해 실존적으로 사로잡히는가에 있었다. 그리스도에 관한 철학을 세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에 있었다. 즉 그리스도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중요하였다. 예를 들어 멜랑히톤은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의 구속행위를 안다는 것이다”고 말한다. 스콜라적이고 이론에 치중하며 사유하게 하는 동방과 중세기의 신학과 달리 자신의 실존의 의미에 관심을 가진 서방의 신학은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8 종교개혁자들의 기독론은 “solus Christus”였다. 구원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가 부활보다 더 강조된 사상이었다. 이 사상은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과 독일 루터교회의 신앙고백의 중심 정점이 되었다. 거기에서도 그리스도는 신적이고 인간적인 두 본성(duae naturae, divina et humana)을 하나의 인격 또는 위격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분은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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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