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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돌, 하나님의 백성

베드로전서2:1-10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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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산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립되어야 한다. 교회는 성령의 거하시는 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성전 건축 곧 하나님의 택하신 한 명의 영혼을 구하는 전도와 자신을 포함한 구원받은 성도들의 성화를 위해 힘쓰자.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요 그의 특별한 소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와 특권, 곧 지식과 의와 영생과 행복을 하나님께 늘 찬송하며 말과 행위로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자.

 

1.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1-3)

 

[1-3]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모든"이라는 표현은 온갖 종류의라는 뜻이다. ‘악독은 악한 생각과 뜻을 가리킨다. ‘궤휼은 거짓과 속임을 가리킨다. ‘외식은 겉으로 선하게 보이나 마음속에는 악독한 것이요, ‘시기는 다른 사람의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를 괜히 깎아 내리고 미워하는 것이다. ‘비방은 다른 사람에 대해 정당하지 않고 악하게 비난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들은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 그런 것들은 옛사람의 성질들이며 마귀적인 성질들이다.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도 이러한 죄의 성질들이 남아 있고 그들도 이런 악들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런 악들을 다 버려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갓난아이들은 배가 고플 때 엄마의 젖을 먹고 싶어 울어댄다. 아기들은 몸이 안 좋으면 젖을 안 먹으려 하지만 정상적이면 엄마의 젖을 사모할 것이다. 아기들은 엄마의 젖을 잘 먹을 때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된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는 원어(토 로기콘 아돌론 갈라)거짓 없는, 순수한 말씀의 젖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젖에 비유한 것이다. 그것을 순수한 말씀이라고 말한 것은 이단사설들, 인본주의적 생각들이나 말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흥미만을 위주한 예화나 이야기들 등과 구별시킨 말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사모해야 하며 신구약성경의 바른 교훈을 늘 읽고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할 이유는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자라기 위해서이다.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자라야 한다고 말했다(4:13-16). 히브리서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장성한 자를 구별하였다(5:13-14). 우리는 주 안에서 순수한 말씀을 섭취함으로 자라야 한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다(딤후 3:16-17).

 

"구원에 이르도록"이라는 말이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에는 있으나 전통사본들에는 없다. ‘구원에 이르도록이라는 말은 구원이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구원에는 세 단계가 있다.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는 구원의 과거적 단계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났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베드로전서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로마서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것을 법적인 구원이라고 한다. 예수님을 믿은 자들은 이미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영화(榮化)는 구원의 미래적 단계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일이다(벧전1:5).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8:24).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다 장차 영화롭게 될 것이다. 로마서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롭게 하셨다는 과거시제는 확실한 미래를 가리킨다. 예정하신 자들은 다 중생하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 법적인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다 영화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시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성화(聖化)는 구원의 현재적 단계이다. 이것은 이미 얻은 의()를 실제로 우리의 인격과 삶에서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빌립보서2:12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이미 받은 구원, 장차 영화롭게 완성될 구원을 현실 가운데서 드러내라는 것이다. 즉 온전한 경건 생활과 도덕 생활을 하라, 의와 선과 진실을 다 행하라는 뜻인 것이다. 이것이 성화(聖化)이다. 이것은 우리가 순수한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거룩한 인격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베드로는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말한다. ‘주의 인자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가리킨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은혜와 자비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진대 우리는 실제적으로도 의로운 자, 죄 없는 자, 도덕적으로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옛사람에 속한 모든 종류의 악독과 거짓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자.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우리는 과자부스러기 같은 세상 말들을 버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거룩한 신앙 인격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이다.

 

2.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4-10)

 

[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고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인류의 구속자로 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보배로운 산돌이시다. ‘산 돌이란 그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고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심을 뜻한다. 우리는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와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신령한 집이라는 말(오이코스 프뉴마티코스)은 성도들이 모여 건립되는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는 돌들로 지은 건물에 비유된다. ‘신령한이라는 말은 교회가 단지 물질적 건물이나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집, 곧 성령의 전인 것을 나타낸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3:16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했다.

 

신약교회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 개개인과 그들의 연합 속에 거하시는 성전이다. 에베소서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신약교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으로 건축되고 있다. 이것은 온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교회이다. 지금도 이 교회의 건축 소리가 온 세계 곳곳에서 요란하게 들려지고 있다. 한 명의 영혼 구원을 통하여 벽돌 한 장이 쌓여 가는 이 건축은 예배당 건축보다 수천 배 더 큰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유여하지 못해도, 이 영적 건축, 곧 전도와 성화의 일을 크게 여기고 힘써야 한다.

 

또 우리는 신약교회라는 이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제사장이라는 원어(히에라튜마)제사장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들을 드려야 한다. 그 영적인 제사란 우리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헌신과 봉사의 삶을 가리킨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속임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

 

[6-8]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시다. 이 세상에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은 없고 더 귀한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버린 돌,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되셨다. 많은 이들이 그 돌에 부딪혀 넘어졌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열심히 전하고 가르치고 권면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이중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어떤 이들은 영생으로 선택하셨으나, 다른 이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 버려두셔서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정하셨다. 죄 가운데서 멸망을 받을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 존 칼빈 주석: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 사도는 여기서 그리스도가 거치는 돌이 되는 경위를 설명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거치는 돌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이다. 이것은 바로 유대인이 저지른 죄였다. 이는 비록 그들이 기꺼이 메시아를 영접하겠노라고 고백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메시아를 그들에게 보내셨을 때 그들이 그를 배척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황주의자들도 역시 마찬가지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복음의 교리를 지탱할 수 없으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단순한 이름만을 경배하고 있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복음에 계시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는 완고하고 강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서만 파멸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

 

[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을 얻은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은 우리에게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 모른다!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특권들을 몇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다. 선택받은 증거는 우리의 참된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다.

둘째로,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왕 같은이라는 원어(바실레이오스)높은 특권을 가진이라는 뜻이다. 성도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그를 섬기는 특권이 있다(10:19).

셋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이다. 세상의 나라들은 죄와 불의와 불법이 가득하며 우상숭배적이요 음란하고 부도덕한 나라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경건과 의와 진리와 사랑과 평안의 나라이다. 성도들이 그 나라이다. 넷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우리는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우리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의 값으로 사신 바 된 보배들이다. 또 하나님의 것은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이 안전한 보호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귀한 특권을 동반한 구원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다. ‘기이한 빛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의와 행복을 가리킨다. 심히 무지하고 불경건했던 우리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죄악들 가운데 살았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로 값없이 죄의 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허무와 불행과 영원한 죽음 아래 살았던 우리가 기쁨과 평안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 지식과 의와 행복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한 빛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기이한 은혜와 사랑, 이 지식과 의와 행복을 마땅히 찬송하며 말과 행위로 증거해야 한다.

 

베드로는 또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말한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도 얻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입은 자가 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의롭게 살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말과 행위로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 김효성 강해를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