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
베드로후서2:1-22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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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특히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유황불 심판은 역사적 사건들이었다. 그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증거한다.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변함이 없으시다. 세상은 결국 불경건과 음란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지옥은 악인들을 위해 예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거짓 선생들의 도덕적인 특징들을 열거하며 설명한다. 거짓 선생들의 첫 번째 특징은, 음란함이다.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종들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물질적 탐욕이다. 우리는 이러한 거짓 선생들을 조심하고 음란과 비방과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1.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의 교훈 (1-3절)
[1-3절]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1-3절)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나니", 거룩한 교리를 부패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서 일반적으로 연약한 심령들을 심히 위대하게 뒤흔들어 놓을 것이므로 신자들을 끝까지 견디도록 격려함으로써 이같이 거치는 돌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구약교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종종 나타났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자이지만, 거짓 선지자는 진리와 다른 말, 즉 거짓말을 하는 자이다. 사탄은 모든 거짓말의 근원이다. 요한복음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와 같이, 신약교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에 대한 말씀과 복음 진리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사도는 그의 서신을 받는 자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주며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시련으로 항상 자기 교회를 연단시키셔서 그들의 마음이 다른 일로 인해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는 복음 아래 있는 교회의 상태는 율법 아래 있던 교회의 상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옛날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를 혼란에 빠뜨려 놓았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교회의 상태는 바로 평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특별히 이점을 말해 둘 필요가 있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면 영속적인 평화와 하늘 지혜의 완전한 빛과 만물의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였으므로 그들은 교회가 더 이상 싸움에 처하게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께서 단번에 교회를 이 같은 내적인 갈등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 믿음의 연단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에게도 역시 공통점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신명기13:3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으로 그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이와 같은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분명히 가려내시고자 의도하셨기 때문이다.
참과 거짓, 또 진리와 이단의 구별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이사야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그들 속에 빛이 없음이니라].”
신약교회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예언이며, 또 이 예언은 역사상 성취되었다. 예수께서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24:24).
거짓 교사 곧 이단자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르치는 자이다. 즉 이단 사상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와 아주 다르다. 그것은 사람에게 멸망을 준다. 왜냐하면 이단의 본질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곳에는 오직 멸망만 있다. 요한복음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일서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서 개인적인 예를 들 필요는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선조들처럼 우리도 불경건한 교리들과 맞서 싸워야만 하며 우리의 믿음이 이단들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사단은 틈만 있으면 하나님의 진리를 뒤엎으려 시도하기 때문에 모든 난폭한 훼방을 확고히 진압해야만 할 것이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였으나, 베드로는 여기서 유다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었다고 표현한 바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모든 불의에서 구별되어 거룩하고 순결하게 사는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우리를 구속하셨다. 바른 길을 떠나 온갖 방종에 빠져버리는 자들은 자기들을 사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해도 부당한 말이 아니다.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속죄사역을 부정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요한일서4:1-3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바울은 이단자들이 결국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이며(고후11:3-4), 실상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라고 말했다(고후11:13-15).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거짓 선생들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되고, 그리하여 소수의 사람들만 남아서 그리스도를 순전히 섬기게 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연약한 자들에게는 매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변절만큼 오늘날 신자들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 놓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 가운데서 끝까지 자기의 신앙을 지켜 나아가는 자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거의 모두가 다 부패하여 방자한 거짓 선생들로 말미암아 길을 잃고 자기 믿음을 저버린다. 이같이 우리의 믿음이 파괴되는 일을 막기 위하여 베드로는 적절한 때를 택하여 바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사악한 거짓 선생들이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어 가리라는 예언을 언급한다.
이단적 거짓 교사들의 다른 하나의 특징은 음란함이다. 본장의 뒷부분에도 이런 특징이 계속 언급되어 있다. 10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14절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18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이단자들의 이런 부도덕함으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음란함은 인간의 양심에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전한다는 자들이 거룩함과 의(義)를 저버리고 음란함에 빠진다면 구원의 진리는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단자들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며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하나님의 원수들이다.
이단적 거짓 교사들의 또 다른 하나의 특징은 탐심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은 대체로 이 세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특히 돈과 물질적 부요를 사랑할 것이다. 이단자들은 세상의 물질적 이익을 구하는 자들이다. 또 그들은 물질적 이익을 위해 말을 지어내며 거짓말도 한다. 그들은 진리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이 받을 심판과 멸망은 옛날부터 지체하지 않고 잠자지 않는다. 이단적인 거짓 교사들의 결말은 멸망이며 그들의 멸망은 임박하다. 마태복음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요한계시록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이단적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들의 멸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거짓 교사들 즉 이단자들을 분별해야 한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오직 신구약 성경이 분별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성경의 바른 지식이 필요하고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개요에 대한 바른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에 관한 교리들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상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또 우리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들인 음란과 탐심을 경계해야 한다. 이 세상이 성적으로 문란할지라도, 우리는 거룩하며 절제해야 한다. 또 이 세상이 물질만능주의를 따를지라도,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거짓 교사들의 결말 (4-9절)
[4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어두움의 사슬에 묶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4절)
신약교회에 나타날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은 몇 가지 사실에서 증거된다. 첫 번째 사실은 하나님께서 범죄를 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 넣으신 사실이다. 4-5절에 ‘용서하다’는 ‘아끼다, 용서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를 한 천사들을 아끼거나 용서하지 않으시고 어두움의 사슬로 묶어 지옥에 던져 넣으셨다. 범죄한 천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어두운 지옥에 갇히어 있고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거짓 교사들도 아끼거나 용서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지실 것이다.
[5절]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5절)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하다는 두 번째 증거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의 사실이다. 노아는 의를 전파하는 자이었다. 음란하고 강포한 그 시대에 노아는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의 거룩을 지킨 자이었음에 틀림없었고 또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겸손하게 순종한 자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의(義)를 말과 행실로 증거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 불경건한 당시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멸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자들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거짓 교사들에게도 멸망의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경건한 자들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6절]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6절)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하다는 세 번째 증거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사실이다. ‘멸망하기로 정하여’라는 말은 ‘뒤집어엎어 정죄하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유황불 비를 내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위의 모든 백성을 다 엎어 멸하셨다(창19:24-25). 이 사건은 후세에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본이 된다.
[7-9절]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7-9절)
소돔과 고모라의 성도덕은 극도로 문란해져 공공연히 동성애가 행해졌다. 의로운 롯은 그들 가운데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였다. 이런 악은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 있다. 현대 사회는 음란한 사회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음란할지라도 노아처럼 롯처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의 영혼들은 지옥에 던지시고 수감되어 마지막 심판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며 거짓 교사들의 결말도 그러할 것이다.
3. 거짓 교사들의 특징들 (10-22절)
[10-13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건방지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슬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불의의 보응을 받으며] 낮에 연락(宴樂)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宴會)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宴樂)하며" (10-13절)
거짓 교사들의 첫 번째 특징은 음란이다.
그들은 육체의 감정을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한다. 음란이 더러운 까닭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부부관계를 벗어나 몸으로 짓는 죄이기 때문이다. 음란의 죄는 자기 몸을 더럽히고 결국 가정을 불행케 만든다.
거짓 교사들의 두 번째 특징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종들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합법적 권위를 가진 다스리는 자들을 세우셨다. 그들이 목사와 장로들이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멸시하고 건방지게 그들을 비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담대하다’는 ‘건방지다, 주제넘게 행하다’는 뜻이다.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사도가 영광 있는 자라는 말로써 황제들과 관원들을 의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비록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는 존경할 만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관리의 직분은 다른 직분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인류를 다스림에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대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가 10-13절의 하반절에서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곧 그가 언급하고 있는 자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혼란을 초래하는 미친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누구든지 세상을 무정부상태의 혼돈으로 만들면 반드시 무질서가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들은 뻔뻔스럽게 관원들을 훼방하여 공공법률과 질서에 대한 모든 존경심을 말살시켜 버린다. 이것은 사실상 그들이 참람한 말로 하나님을 공격하는 행위였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광포한 자들이 많다. 그들은 모든 칼의 권세는 야비하고 불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체제들을 뒤엎는 일에 분주히 날뛰고 있다.
물론 교인들이 목사들과 장로들을 전혀 비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목사들과 장로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부족들과 실수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들을 비평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아니, 그들을 자주 비평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비평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이며 그의 사랑하시는 종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에 손상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해 교훈을 받고 인도함을 받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는 것은 교회에 덕과 유익이 되지 않는다. 그런 비난은 교회를 건설하는 대신 그것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들에 대한 비난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사도는 그들이 감히 천사들보다도 더 값진 자유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분별없는 생각을 지적해주고 있다. 사도가 천사들은 관원들 앞에서 그들을 거슬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좀 이상하다. 그들이 어찌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알고 있는 신성한 질서를 반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어찌 일어나서 그들과 동일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관원들을 거슬려 훼방하는 송사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이유로 어떤 이들은 여기에 언급된 바가 마귀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 난제를 피하여 나가지 못하고 있다. 어찌 사단이 그처럼 온화하게 사람을 아낄 것인가? 그는 하나님을 거슬리는 모든 훼방의 원흉이 아니던가? 그들의 견해는 유다의 말로써 반박되고 있다.
우리가 만일 그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여기에 언급된 바가 거룩한 천사들에 대해서 매우 적합한 말인 것을 알게 된다. 이는 그 당시에 거의 모든 관원들이 불경건하고 피를 흘리기 좋아하는 복음의 원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복음의 수호자들인 천사들에 대해서 증오심이 가득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관원들의 증오와 저주를 산 자들이 그 관원들에 의해서 정죄를 당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능에 대한 존경심은 보존된다고 말한다. 사도는 천사들이 이처럼 자제하고 있는데도 이 무분별한 악인들은 그들의 사악하고 무절제한 훼방을 담대하게 계속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해 난 짐승과 같으며 멸망 중에 멸망을 당하고 불의의 보응을 받을 자들이라고 다시 언급된다. 거짓 교사들의 행위는 또 육체적 쾌락을 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하는 낮에 육신적 쾌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먹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거룩한 교회 안에서 점과 흠이다. 그들은 선생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 마귀의 종들이며 세상적인 사람들이다.
[14-16절]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저버리고 곁길로 가]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14-16절)
거짓 교사들의 음란함을 다시 말한다. 그들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않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 즉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유혹한다. 음란한 세상 속에서 또 거짓 교사들의 음란한 유혹에 대항하여, 성도들은 성령을 따라 행하며 또 성경의 가르침대로(고전7:1-5)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거짓 교사들의 세 번째 특징은 물질적 탐욕이다.
그들은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바른 길을 저버리고 곁길로 간 자들이며, 마치 옛날 불의한 선물을 사랑하여 가다가 말 못하는 나귀가 하나님의 시킴을 받아 말로 책망하였던 선지자 발람의 길을 좇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물질적 탐심과 세상적인 명예심을 따라 간 발람의 행위를 ‘미친 것’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그는 저 거짓 교사들을 ‘저주의 자식’이라고 말함으로 그들의 결말이 어떠할 것을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증거한다.
[17-19절]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영원히] 예비되어 있나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참으로]6)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저희가 그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저희 자신이 부패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17-19절)
거짓 교사들은 ‘물 없는 샘’과 같아서 그 속에 생명수 같은 진리의 말씀이 없다. 그들은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에 불과하다. 그들을 위해 캄캄한 어두움이 영원히 예비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실 영원한 지옥 형벌이다. 거짓 교사들의 음란한 특징이 다시 언급된다. 그들은 허영의 부풀린 말을 하면서 미혹한 데 행하는 자들에게서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한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그들 자신이 부패한 종들이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 사람이 자꾸 범죄하면 죄의 종이 되고 그러면 멸망의 종이 될 것이다.
[20-22절]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20-22절)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신자들도 분명히 죄를 범한다. 그러나 그들은 죄가 그들을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변절하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일단 받아들인 건전한 교훈에 대한 고백을 저버리지도 아니한다. 참으로 그들은 패배한 자로 보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체와 그 정욕에 대항하여 맹렬히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더러움 가운데 떨어져 산다면, 그의 형편은 주를 알기 전보다 더 나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죄는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거짓 교사들은 바로 그런 자들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고 돼지가 씻은 후에 더러운 구덩이에 누운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알고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다시는 죄악된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