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중에서 인생의 헛됨을 깨달음
시편39편
[1-2절]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 . . .
다윗은 말한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다윗은 자신의 행위를 조심하며 혀로 범죄치 않기를 원했다. 성도는 그릇된 길이나 악한 길을 조심하고 바르고 선한 길 걷기를 구하고 힘써야 하며 혀로 범죄치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다(약 3:2). 다윗은 특히 악인이 그 앞에 있을 때에 자기 입에 재갈을 먹이겠다고 말한다. 악인은 남의 말을 오해만 하고 비난거리로만 삼기 때문에, 성도는 악인 앞에서 변론이나 변명을 하려 하지 말고 잠잠한 것이 지혜이다. 그러나 그가 잠잠하여 바르고 정당한 말도 하지 아니하므로 그의 고통(케에브)은 더 심하였다. 바른 말을 참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3-4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다윗은 악인들 앞에서 잠잠하려 할 때 마음에 열이 나고 화가 나서 하나님께 아뢰며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시며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 본문에 ‘연약함’이라는 원어(카델)는 ‘덧없음’(NASB)을 뜻한다. 우리의 일생은 제한적이고 출생한 때가 있듯이 죽는 때가 있다. 우리는 죽음의 때를 생각해야 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
[5-7절] 주께서 나의 날을 손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날을 손넓이만큼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 손넓이는 10센티미터에 불과하다. 사람의 일생은 매우 짧다. 또 다윗은 그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의 짧은 일생은 하나님 앞에서 무(無)에 가깝다. 영원에 비하면 세상의 백년의 삶은 무에 가깝다. 다윗은 또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라고 말한다. ‘허사’라는 원어(헤벨)는 전도서에 38번이나 나오는 ‘헛되다’는 단어이다. 그것은 ‘숨’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또 각 사람이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림자’라는 원어(첼렘)는 ‘허상, 유령’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죽고마는 존재라면 그의 세상 생활은 영원한 실체가 아니고 허상(虛像)과 같다. 또 사람들의 모든 분주복잡한 일들도 죽음 앞에서 볼 때 헛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죽고나면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는 그 헛된 재물을 위해 목숨을 걸 듯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이제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한다. 짧고 덧없는 한 평생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며 살 만한 삶의 목표와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의 어떤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영원자존하시는 하나님,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온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만 있다.
[8-11절]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
다윗은 죽음에 이를 큰 병에서 그 원인이 자신의 죄임을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회복을 기도할 때 자신을 모든 죄에서 건지시기를 구하였고 그에게 닥친 고난이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책이라고 말한다. 실상, 죄는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의 근본적 원인이요, 또한 다윗의 중한 질병의 원인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질병이 하나님의 징책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불평하는 말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손이 그를 치심으로 쇠망하였다고 말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견책하시고 징계하실 때 그 영화를 좀먹음같이 하시므로 각 사람은 참으로 헛되다고 말한다. 사람이 일시적으로 건강하고 부귀영광을 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치시면 하루아침에 헛되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런 깨달음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모든 죄과에서 건져주시고 그의 징책을 옮겨주시기를 구한다. 하나님께서 병으로 그를 치셨으므로 치료도 그에게 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다(출 15:26). 그러므로 우리는 병 낫기를 기도해야 한다(약 5:14-15). 다윗은 또 그의 병이 우매한 자에게 비난거리가 되지 않게 되기를 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12-13절]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하솨 밈멘니)[내게서 주의 얼굴을 돌리시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아블리가)[나로 기쁘게 하소서].”
다윗은 병중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하나님의 용서를 빌며 그의 치료를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를 올린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가 눈물 흘릴 때 잠잠하지 마시기를 간구한다. 그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병상에 있는 그에게 죽음의 그늘이 졌고 그의 일생이 짧은 나그넷길같이 끝날 것 같음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회복을 간구한다. 그는 주의 노하신 얼굴을 그에게서 돌리시고 그로 기쁘게 하시기를 구한다. 성경은 병든 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친다(약 5:13-18).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인간의 삶이 짧고 헛됨을 알자. 이것은 사람이 죽음 앞에서 실감하는 바이다. 죽음 앞에서는 세상의 부귀와 영화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인생은 짧고 그 모든 부귀영광은 헛되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징책의 손을 보자. 세상의 모든 불행은 죄의 징벌에 기원한다. 우리는 창조자와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과 두려움으로 엎드려 그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자.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영생의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회복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요한복음 6:68,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야고보서 5:16,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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