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역사가 왜 중요한가 
(Why Bible history matters?)
(인간의 타락과 노아의 방주 시기 등을 포함하여)
Jonathan Sarfati

우주의 역사책

성경은 시, 자서전, 로맨스, 교훈과 신학 등을 포함하는 여러 형태로 이루어진 66권의 책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1,500년에 걸쳐 여러 종류의 저자, 즉 왕, 장군, 어부, 선지자, 학자, 세리 및 의사 등이 썼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로 향해가며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우주의 실제 역사라는 것이다.[1] 그리고 중심 테마는 하일스게쉬히테(Heilsgeschichte, '구원의 역사‘를 뜻하는 독일어)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지막 아담으로써(고전 15:46)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시는 그분의 영원한 계획.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은 세상의 기초가 놓일 때로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2]

따라서 성경이 시기를 포함하는 역사적인 정보로 가득 하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기독교 믿음은 전적으로 역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 역사에 근거하고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매우 독특합니다. … 우리 기독교 믿음은 (불교나 힌두교 등과)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사실에 관심을 둡니다. … 에덴동산 … 대홍수의 역사를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역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주셨습니다. … 바벨탑 … 아브라함 … 우리 주님에 관한 사실들 …”[3]

 

역사가 문제가 된다!

사도 바울은 많은 교리의 근거를 역사적인 사건들의 순서에 둔다. 예를 들면,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믿음만에 의한 칭의라는 지극히 중대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정확하게 그 이유는, 할례라는 행위(창 17장) 이전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믿음(창 15:6)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2:11-14에서 바울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 임을 지적하면서 여자들의 역할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는데, 여기서도 역사적인 사건들의 순서가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7장에서 멜기세덱에 관한 창세기 모형(창 14)에 근거한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레위족의 제사장직보다 앞선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이것은 정확히, 그들의 선조인 레위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공물을 드린 것에 기인한다.[4]

 

역사와 율법

성경의 역사를 이해하면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율법들에 관한 세속적인 공격들을 반박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나무의 열매를 제외하고) 모든 식물을 먹으라고 하셨다; 대홍수 이후에 그분은 노아에게 모든 동물을 먹으라고 하셨지만, 모세의 율법 시대에는 특정한 종류의 동물을 먹는 것을 하나님이 금하셨다. 이제 그리스도의 율법 하에서는 모세 시대에 금지했던 동물들도 먹을 수 있다. 어떤 시대에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어떤 것을 먹으면 도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서 그분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시는 각각의 다른 단계라는 것을 알고 나면 어려움은 사라진다.

모세 시대의 율법은 이 프로그램에 있어서 특별한 시기를 위한 것으로써,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장차 메시야가 나올 민족으로 구별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메시야 민족이 주변의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과 구별되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율법이 반복적으로 의식적인 구별을 갖고 있었다: 혼합된 직물로 옷을 만들면 안되며(레 19:19); 바다 생물이 발을 가졌다는 것이 바다와 육지의 의식적 경계를 어겼다는 이유로 랍스터를 먹으면 안된다(레 11:9-12).[5] 그리고 그들은 죄를 덮기 위해서 동물을 희생하라고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다(엡 2:14).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갈 3:28, 골 3:11). 따라서 그러한 구별되는 율법이 들어설 여지가 더 이상 없으며, 이제는 낡은 것이 되었다(히 8:13). 그리고 이제는 죄를 위하여 동물을 희생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의 완전함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히 10장).

 

역사적인 상세

성경에 있어서 역사가 매우 강조된다는 예로써, 의사이며 위대한 역사가인[6] 누가(Luke)는 아주 상세하게 기록을 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 3:1-2).

그리고 창세기에서 우리는 세상 창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7] 특히, 창세기 5장과 11장에서는 창조 주간의 제6일에 창조된 아담으로부터 유대민족 혹은 이스라엘의 시조인 아브라함까지의 역사를, 그 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출생일 사이의 년수를 완벽히 가지고 있다.[8]  보통의 용법으로는 자식이 아버지의 생일에 태어난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각 세대의 시간 배열에 몇 개월이 추가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두 시기 사이에 최대한 20년이 추가될 것이며, 이에 따르면 창조/아담으로부터 대홍수까지 1656년, 그리고 대홍수로부터 아브라함의 탄생까지 353년이 된다. 유대인과 기독교인 학자들이 계산한 창조의 날짜는 대략 BC 4000년으로써 모두 매우 유사한 계산을 한다.[9]

 

논리적 추론에 의한 또 다른 역사

더욱이, 성경의 가르침은 명시적인 진술에 제한 받지 않고,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10] 이에 의하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묻는 다른 시기에 관한 질문에 대해 창세기를 통하여, 그 답이 명시적으로 진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진술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 있다.

 

타락의 시기

인류의 타락은 언제 일어났는가? 성경은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되듯이, 성경은 묵시적으로 그 시기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먼저, 성경은 우리에게, 창조의 6일에 창조를 마치시고 나서 모든 것을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음을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다(창 1:31). 따라서 그때까지는 사탄도 아담도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뒤따른다. 이것은 수백만 년이라는 ‘과학’과 타협하기 위한 모든 다양한 성경의 곡예들(예를 들면,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유신론적 진화론, 구조틀 가설[11])을 배제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담 이전에 죽음이 있다는 말이 되고, 이는 고린도전서 15장, 로마서 5장, 로마서 8장과 맞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제7일을 복주셨다(창 2:3). 이 날에 죄나 저주가 있다는 힌트가 조금도 없다. 따라서 인류의 타락은 창조 주간 이후에 발생했다.

그러나 얼마나 뒤의 일인가? 첫 번째 사람들에 관해 드러난 역사로부터 추론해 보면 그리 오래지 않다. 아담과 하와는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창 1:28), 정의에 의하면 그들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분명히 순종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매우 좋게” 창조되었는데, 이는 육체적으로 완벽한 몸을 의미하므로 최소한 첫 번째 생리 주기 안에 즉시 임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의 첫 번째 아이(가인)는 인류의 타락 이후에 임신했고,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죄가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그들의 타락은 아마도 창조주간 이후 기껏해야 3 내지 4주 이내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을 것이다.

추론: 우리는 또한 사탄의 타락을 복받은 제7일과 인류의 타락 사이의 매우 좁은 창으로 제한할 수 있다.

 

노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방주를 지었을까?

하나님은 노아에게 대홍수 때 탈 커다란 배를 지으라고 지시하셨다. 노아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수명이 매우 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얼마 만큼의 수명을 가졌을까?

어떤 사람은 창세기 6:3절로부터 120년이라는 답을 한다. 사실상 이것은 인간의 수명과 관계된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대홍수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120년 이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방주에 탄 사람 이외의 모든 사람을 대홍수가 쓸어버리기 전까지 모든 인류에게 남아있던 시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 120년의 시작점은 방주를 지은 때부터가 아니라, 창세기 6:4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짝을 지을 때부터이다.[12] 따라서 정확한 시기는 언제일까?

먼저,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주셨을 때는 노아가 세 아들과 자부들을 기다려야 했다(창 6:14-18). 이것은 노아가 그때까지는 아들들이 있었고, 또한 그들이 결혼할 만큼 충분히 장성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 5:32). 창세기 7:6은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노아가 600세였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 사건 이후 100년이 지난 뒤이다.

따라서 그들이 결혼하기에 충분한 나이를 30세라고 한다면, 대홍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방주를 짓는데 70년 정도의 시간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결론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창세기 5:32절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자, 성경의 진술로부터 논리적 추론을 하기 이전에, 성경이 말하는 바를 이해해야만 하는데, 종종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들 세 명이 노아가 500세 때 태어난 세 쌍둥이를 말하고 있지 않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것은 셈이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는데, 그때 그가 100세였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창 11:10). 따라서 대홍수가 왔을 때 셈은 98세였으므로, 그는 노아가 502세 때 태어났다. 함은 가장 어린 것으로 언급되므로(창 9:24), 야벳이 가장 나이가 많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창세기 5:32절은 야벳 혼자만 태어났을 때 노아의 나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창세기 11:26절에서도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 ”데라는 칠십 세에(And Terah lived seventy years)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그러나 창세기 11:32절은 데라의 수명이 205세였다고 말하며, 창세기 12:4절은 데라가 죽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술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이스라엘 땅으로 갔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75세였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데라는 130세였음이 분명하다.

 

결론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몇 권의 책으로 기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사를 확장해서 생각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역사에 비추어보아 성경이 맞지 않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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