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교회의 모습들
1. 그리스도인의 삶
초대 교인들은 이교도 도덕론자들 보다도 더 뛰어난 경건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일테면 초대교회의 베드로, 요한, 바울을 보면 3사람 다 공히 자신들은 죄와 허물을 고백했지만 각각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경건을 보여주었다. 복음은 실로 그리스도인의 자연적 기질을 결코 말살하지 않고 구속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급한 성격도, 바울의 열정도, 요한의 섬세함도 구속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요긴하게 사용하셨다.
여성들을 향한 복음의 영향 또한 현저하다.
초대 교회 당시 노예의 위치에 있던 여성들을 기독교는 남성들과 동일한 구원의 후사로 만들었다(벧전 3:7; 갈 3:28)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욕정의 도구가 아니라 가족의 보물, 남편의 긍지, 자녀를 신앙과 고상한 도덕으로 양육한 어머니로서 정절과 사랑과 인내의 본을 보인다.
기독교는 일부 다처제가 아닌 일부 일처제를 주장하며 남편과 아내의 결합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스런 연합과 비교하면서 결혼의 신성한 성격을 강조한다( 엡 5:22- 6:9)
본래 교회는 노예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도 않았고 기독교인들이 노예를 소유하는 것을 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교회는 주인과 종들이 주안에서 한 형제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 노예제도의 근본을 붕괴시켜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노예 제도가 점점 사라진 데는 기독교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로마법에 따르면, 노예는 이름도 호적도 없었고, 부동산처럼 매매 양도가 가능했다.
법적인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유대교에서는 희년제도가 있어서 희년이 되면 모든 히브리인 노예는 속량될 수 있었다.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만민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이고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복음의 위로와 평강이 가난하고 압제당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바울은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를 복음으로 회심시킨 후에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그리스도안의 사랑하는 형제로 맞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
기독교는 독재와 무정부 상태를 모두 반대하며, 군주와 백성 모두에게 선한 질서를 세우도록 장려한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에게 세속 정부의 권위에 순종할 것, 세금 납부, 권세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 등 시민으로서의 의무 수행을 권했으며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행했다. (롬 13:7; 딤전 2:1-2) 기독교인들은 먼저 순종해야 할 상위 권세인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라는 요청이나 압력에 순종할 수는 없었다. 그런 요청이 없는 한 기독교인들은 휼륭한 시민 역할을 했다.
또한 복음은 민족과 민족 사이, 인종과 인종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편견과 증오의 담을 헐어 버리고 국제 관계를 개혁한다. 바울은 그리스에 세운 교회들에 속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팔레스타인 교회 교회에 속한 가난한 유대인들을 위해 구제 헌금을 해서 모교회로부터 받은 복음과 그 사귐에 감사를 표시하게 했다, (갈 2:10; 고후 9:12-15)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한 형제로 느꼈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을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로 여겼다.(갈 3:28; 엡 4:3)
2. 예배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당 예배를 고려해야 한다.
회당 예배는 단순했으나 기도, 찬송, 성경봉독, 성경 강해, 할례나 결례 등의 순서가 있었다. 여기서 기도와 찬송은 주로 시편 본문에 의존했다. 공예배를 드리는 날은 안식일, 월, 화요일이었고 기도 시간은 제 삼시(Shacharith, 오전 9시), 제 육시(Minchah, 정오), 제 구시(Arabith, 오후 3시) 였다.(시 55:17; 단 7:11; 행 2:15; 3:1; 10:30)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의 예배 모범을 충실히 따를려고 했다.
하지만 이방 기독교인들 예배는 처음부터 상당히 독립성을 가져서 구약 예배의 본질적인 요소는 그대로 가졌으나 유대 민족의 율법적 요소는 제거되고 복음의 정신으로 변형되었다. 유대교의 안식일이 기독교의 일요일( 안식 후 첫날)로 대체되었고 유월절과 오순절은 고난주간과 부활절 그리고 성령 강림일로 전환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영이시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참 예배라고 하셨다. (요 4:24)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배를 적당하고 질서 있게 드리도록 강력히 권면하였다.(고전 14:40)
초대 교인들은 교회를 예배의 장소로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 생각했다. 이 교회는 형편에 따라 때로는 가정에서(행 12:12; 롬 16:5,23; 골 4:15; 몬1-4), 성전에서(행 5:12), 서원에서(행19:9), 또는 회당에서(행14:1,3;17:1;18:4) 모였다.
1세기에는 매주 첫째 날을 예배일로 채택되어서 아침과 저녁, 두 차례의 예배가 거행되었다.
본래 성찬은 저녁 예배때 성찬식이 거행되기 전에 애찬( 고전 11:20-2)의 시간을 가졌는 데, 1세기 말에는 애찬은 사라지고 아침 예배때에 성찬식을 거행했다. 소 아시아의 총독 폴리니가 로마 황제 트라얀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기독교인들은 새벽에 모여 찬송을 하고 윤리적인 생활을 하기로 서원한다고 되어 있다.
예배 순서에 관한 정보(2세기 중반)는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의 제 1 변증서(First Apology)와 디다케에 잘 나타나 있다. 예배의 여러 요소들을 열거해 본다면
- 설교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그렇듯이 불신자에게 하는 전도 설교의 형태를 띠였다.
- 성경 낭독과 강해. 처음에는 구약 성경 말씀을 택하여 낭독을 하다가 나중에는 신약성경에서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간추린 교훈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낭독한 본문에 기초하여 설교를 한다.
- 기도. 기도도 유대교에서 유래했는 데, 공예배에서는 회중이 일어나서 기도를 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고 초대 교인들은 중요 의식 때마다 이 예배 의식을 했다.
- 시편을 기도 형식을 띤 찬송으로 불렀다.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을 부를 것을 당부했다.(엡 5:19; 골 3:16)
- 신앙고백. 최초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이다. 또한 세례 때 고백한 삼위일체 고백서에서 발전된 사도신경이 있었다.
- 성례. 세례와 성찬 등이 있었다.
3. 성례
1). 세례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단 한번 받는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외적인 표지이자, 은혜 언약에 들어가는 의식이다.
교회 가입의 표징으로 할례를 대신한 것이다. 세례가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최초로 집행된 것은 베드로의 설교 후에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것이다. 이론 상으로는 세례는 회심뒤에 오지만 실제로는 세례시 외적인 표징과 내면의 효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몬 마구스의 경우는 성령 세례 없이 물 세례를 받았고 고넬료는 물세례 전에 성령 강림을 경험했다.(행 10:44-48)
세례의 일반적인 형식은 침수였는 데, 이는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푼 사실에서, 또한 세례를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일에 비교한 사실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을 뿌리는 형식도 일찍부터 병자와 죽어가는 자에게 그리고 침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시행되었다. 오순절에 삼천명이 세례를 받을 때도 침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급수 시설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세례를 의미하는 헬라어는 씻음, 뿌림 등의 폭넓은 뜻을 가지고 있다.(왕하 5:14(70인역); 눅 11:38; 막 7:4; 히 6:2; 9:10) 물의 종류나 양이 예식의 유효성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고 보는 복음 정신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유아세례가 비성경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왜냐하면 세례는 회개와 믿음을 필연적으로 전제하는 데, 유아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유아세례를 주라는 분명한 명령이 없다고 하는 데, 유아세례를 금하는 사례는 더 찾기가 어렵다. 신약 성경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는 경우가 5번 기록되었는 데, 모든 경우에 다 어린 아이가 없을 가능성은 없다. 초대 교회의 유아세례의 보편적 관행에 대해서 터툴리안 같은 신학자는 격렬히 저행했다는 데, 역으로 이는 유아세례가 널리 확산되어 있다는 반증한 셈이다.
2). 성찬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려는 상황에서 성찬을 제정하신 이후, 이 성찬은 기독교인의 예배에서 가정 내면적인 성소와 같이 여겨져 왔다.
이런 성찬의 의미를 정리해 본다면
-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이다.
- 신자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모든 유익을 받으며 그의 생명을 공급받아 영생으로 들어가는, 신자와 그리스도의 생명적인 연합의 축제이다.
- 동일한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의 지체들로서 신자들 서로가 사귐을 갖는 의식이다.
-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도록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께 감사함으로 우리 자신과 섬김을 드리는 의식이다.
- 세례 받은 자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
사도 시대에는 성찬은 단촐한 애찬 식사(agape)와 연결되어 날마다 시행되었고, 모든 계급, 재산, 문화의 차이를 잊고 성찬에 참여함으로 자신들을 하나님의 한 가족원이라는 것을 실감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책망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여러 성찬의 남용 사례들이 생기고, 3세기에 이르러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애찬은 성찬의식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게 되었다. 성찬 제장의 말씀인 “이것은 내 몸이니라.”(막 14:22)의 해석과 관련하여 격렬하게 논쟁되어 왔으면 성찬과 인 견해는 화체설( transubstantiation), 공재설( consubstantiation),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 of Christ) 등이 있다.
4. 주의 날( The Lord's Day)
주의 날은 공예배 드리는 날로써 유대교의 안식을 대체되었으니 본질은 지켜지고 형식은 변한 셈이다. 이런 형식의 변경은 기독교 설립의 바탕이 되는 위대한 사건들 때문에 이뤄졌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날이 안식 후 첫날(주간 첫날)이었고 성령을 부어주시고 교회를 세우신 날도 그날이었다. 이처럼 주간 첫날은 신약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대로, 이미 사도 시대에 예배일로, 또한 부활을 특별히 기리는 “주의 날로” 지켜졌다.(행 20:7; 고전 16:2;계 1:10) 이런 사도 시대의 관습을 따라 2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아주 보편적으로 주간 첫날(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이 안식일은 구약에서 도덕법인 십계명에 들어있다. 이 안식일은 우리의 육체적, 도덕적 본성에 기초한 것으로 결혼이 그런 것처럼, 처음 낙원에서부터 제정되었다( 창 2:3). 그러나 유대교의 안식일은 여러 제약들이 많이 있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격이 되고 말았다. 우리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관한 이런 기계적인 의식주의를 반대하시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막 2:27)라고 천명하심으로 안식일의 참된 제정목적과 정식을 회복하셨다. (마12:1 이하; 10 이하, 요5:8이하; 6:23;9:14,16)
또한 복음 시대의 안식일은 단순히 이레 중에서 하루라는 의미에서만 머물지 않고 모든 시간, 모든 날들이 다 주의 것이라는 확장된 의미를 갖게된다. 이제 안식일은 무거운 멍에가 아니라 하나님과 성도들이 함께 교제함으로써, 평안이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안에서 누리는 거룩한 안식이자 동시에 하늘에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감격스런 날로 지켜졌다면 2세기 초반부터는 금요일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리며 기도와 금식의 날로 지켰다.
5. 교회의 조직과 정치
그리스도께서는 공인된 교사들과 다스리는 자들인 사도들과 세상 끝날까지 지키도록 제정한 세례와 성찬으로 가시적 교회를 세웠다.(마 16:18;18:18; 28:18-20; 막 16:15; 눅 22:19; 요 20:21-23; 엡 2:20 이하; 4:11 이하)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조직의 필수적인 요소만 말씀하시고 세부적인 것은 각 시대에 따른 변화와 필요에 따라 정해 가도록 지혜롭게 정하셨다.
교회의 목회자 직분은 그 기원과 중요성에 있어서 대단히 숭고함에도 신자들과 따로 구분하여 결코 말하지 않았다. 사도 시대에는 결코 사역자와 회중과의 이런 근본적인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영적 사제였이었다.(엡 2:18) 사역자들도 교회의 구성원들인 회중들과 다름없이 구속의 은총에 의존해야 하는 죄인들이며, 회중들 역시 사역자들처럼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직접 사귐을 갖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교회의 사명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만드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모든 신자를 ‘형제’, ‘그의 소유된 백성’,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 칭한다. 특히 베드로는 모든 신자들을 제사장으로 보며, 모든 회중을 영적 레위 지파, 주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벧전 2:5, 9;5:3; 계 1:6;5:10; 20:6)
교회의 직분자들은 카리스마적 직분자들과 관리적 직분자들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헬라어 Charisma란 단어가 보여주듯이 카리스마적 직분자는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특별한 영적 은사가 있는 직분자이다. 그리고 관리적 직분자는 그 기능이 주로 관리적인 이들이다. 바울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도자, 섬기는 자 그리고 가르치는 자를 언급한다.(엡 4:11; 고전 12:28). 이 언급된 직분들이 카리스마적 직분자들이랄 수 있다.
1) 카리스마적 직분자
a. 사도(Apostles)
사도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었고 (행 1:22; cf. 고전 1:1; 15:8) 그리스도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사도들은 이스라엘 12지파에 상응하도록 12명이었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오순절 사이에 배반자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선출하였고 오순절 후에 바울은 승천하신 주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으로 열세 번째 사도로 추가되었다. 열 두 사도와 맛디아는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들로 온 교회의 기둥들로 그리스도께 직접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의 신적 권위를 인위적이고 독재적인 스타일로 사용하지 않았다.
-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사도들중에서 가장 주도적인 인물이다. 그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최초로 복음을 선포했고 고넬료 가정의 전도를 통하여 최초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베드로의 활동에 관한 신약 성경의 기록에 보면, 중세 카톨릭 교회가 보여줬던 성직의 정치적이고 권위적인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b. 선지자(Prophets)
선지자들은 미래를 예고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물론이요 복음을 설교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행 13:1;15:32) 사도행전에 언급된 아가보는 장래에 기근이 있을 것이고 바울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투옥될 것을 예언했는 데, 그대로 되어졌다. (행 11:28;21:10-14) 이런 선자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로는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다소의 사울, 유다와 실라가 있다.(행 11:23;21:10;13:1;15:32
디다케에 거짓 선지자와 참선지자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 언급해 놓은 것을 보면 초대 교회가 거짓 선지자로 인하여 피해를 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c. 복음 전도자(Evangelists)와 순회 설교자(Itinerant preachers)
빌립은 복음 전도자의 은사를 발휘했지만( 행 21:8) 이 직무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그것은 특히 지금까지 한번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새로운 지역에서 복음를 전파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 순회 선교사의 사역을 언급했을 것이다. 마가, 누가, 디모데, 디도, 실라, 에바브라, 드로비모, 아볼로 같은 사람들(딤전1:3;3:14; 딤후 4:9,21; 딛 1:5; 3:12; 벧전 5:12)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한 다고 할 수 있다.
d. 섬기는 자와 가르치는 자
섬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각각 구별되어 있어서 각각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행해야 할 두 가지 기능을 지칭하는 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요한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는 결코 참된 교사가 될 수없다.(요한 2:1-11) 참된 교사에 대해서는 디다케에서도 언급되어 있다.(11:1-2)
2) 관리적 직분자
관리적 직분자들은 전 교회의 동의를 얻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
a. 장로 및 감독
신약 성경에서는 ‘장로’라는 용어가 유대교의 회당에서 온 것이라면, ‘감독’은 헬라 공동체에서 빌려 온 것이다. 그러나 감독(episkipos. bishop)과 장로(presbyteros. elder)는 동일한 직무와 관련되어 있다.(행 20:17,28; 빌 1:1; 딛 1:5, 7)
- 신약 성경에서 장로- 감독직의 시작의 때를 찾기를 어렵지만 안디옥의 교인들이 유대 장로들에게 부조(扶助)를 보냈을 때는 이미 이 직책이 보편화됐던 것 같다( A.D.44)
- 유대인 회당은 장로들에 의해서 운영된 것처럼 유대 기독교 회중도 이런 장로 정치를 자연스럽게 채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방인 교회들도 이런 친숙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본을 따랐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전파 후에 먼저 한 일은 먼저 장로들을 세워서 교회를 조직한 것이다. (행 14:23; 딛 1:5)
- 장로의 자격에 대해서 신약 성경에 최소한 두 차례 명시되어 있다.(딤전3:1-7;딛1:5 -9)
공 예배를 인도하고 권징을 시행하고 질서 있게 규율을 세우는 것과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딤전 5:17; 딛 1:9) 이들은 사도나 동료 장로들의 기도와 안수로 세워졌다.(행 14:23; 딤전 4:14; 딤후 1:6)
- 베드로는 스스로를 장로라 칭하면서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벧전 5:1-3)
-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만 문안을 한다. 이유인 즉 감독들에 장로는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로마의 클레멘트의 서신( the Epistle of Clement of Rome)과 Didache도 감독과 장로가 상호 호환적으로 사용됐다는 것은 잘 보여주는 데, 두 용어가 1세기 말까지는 많이 호환해서 사용됐고 2세기 말에도 간혹 이런 사실이 나타난다.
- 그러나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Ignatius)때에 이르러서는 두 용어는 구분되어 사용된 것이 나타난다. 군주적인 감독직의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장로’들에게 공통적으로 사용된 ‘감독’이 점점 장로들 가운데 선임자에게만 사용하게 된 듯하다. 감독은 장로회의 보좌를 받는 회중의 대표요 사도들의 계승자로 인식되었다.
b. 집사들(Deacons)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과부들이 매일 양식 배분에서 제외되는 것을 보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불평한데서 예루살렘 교회는 7명의 집사를 임명하게 된다.
- 예루살렘 교회는 진정한 형제 의식에서 발로하여 7명 집사를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에게서 선출한다. 7명의 집사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모두 헬라식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 장로직의 경우처럼 집사직 또한 엄격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했다.(행 6:3;딤전 3:8-13) 민주적인 선출 과정 역시 사도들에 의해서 요청되었다.(행6:3,5) 교회의 구제 사업의 시행은 집사들의 몫이었다. 후에는 성찬을 나눌 때 집사들이 장로들을 도왔다.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 중에서 스데반과 빌립은 설교자와 전도자로서 활동을 했으나 그것은 집사의 본연의 임무라기 보다는 개인의 인사를 발휘한 것으로 보여진다.
- 속사도 시대에는 감독의 지위가 장로와는 구분이 되고 장로는 사제가 되고 집사가 레위인으로 간주될 때 집사는 그것의 본 기능인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기능은 사라지고 공예배와 성례 때 사제를 보좌하는 돕는 기능이 중시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로마 카톨리 교회에서는 집사를 부제라고 하였다.
- 사도 시대에는 여인들에게도 이 직분이 허락되었던 것 같다. 여집사(deaconesses)는 여신자중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돌보는 일을 했다. 이런 여 집사의 존재는 헬라인들과 동방인들 사이에서는 남여를 엄격히 구분하는 관습 때문에 더 절실히 필요했다.
- 여집사는 대개 연로한 과부 가운데서 선출되었는 데, 경건한 여성들과 동정녀, 그리고 주로 과부들에게 교회의 복지를 위해 이타적인 자선과 헌신의 특별한 은사를 공적으로 발휘할 가정 적합한 장을 제공하였다.
- 바울은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로 천거했다.(롬 16:1) 또한 브리스길라, 마리아,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 같은 사람들도 로마에서 같은 직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롬 16:3,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