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 성경인물 

(행15:36-41)

 

●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베드로 사도가 아들처럼 아끼는 제자였다. 그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히브리어 발음으로는 요하난, 혹은 요나)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로마의 아주 흔한 이름인 마커스, 마카베오, 마르코)으로 ‘망치’라는 뜻이며, 아마 이방전도를 위해 그렇게 고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가 요한의 부친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마가의 출신지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바나바와 마찬가지로 구브로 섬 출신으로서 부친이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 본토가 아니라 외지 출신으로서 예루살렘에 정착해 살았다는 것은, 신앙심이 특출했음을 의미했다. 즉 마가는 어렸을 때부터 믿음이 독실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자랐을 것이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상당한 재산가로, 한꺼번에 어른 120명 이상이 들어가는 다락방이 있는 저택을 예루살렘에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마리아는,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질 때, 자신의 집을 제공함으로써, 위대한 교회의 출발이 가능하게 했다.

 

구브로 섬 출신의 자산가인 레위인 바나바는 마가 요한의 인척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개역성경에서는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나(골4:10) 대부분의 권위있는 성경에서는 마가 요한과 바나바의 관계를 ‘사촌’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여튼 레위족 출신의 바나바와 마가가 인척관계였다는 것은 마가에게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 마가 요한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행12:12)인데, 베드로가 헤롯에게 잡혀가 처형당하기 전날밤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한 후 찾아간 곳이 바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이곳을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행12:5) 그리고 마리아의 집 하인이었던 로데라는 계집아이는 대문을 두드리는 베드로의 음성을 알아듣고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행12:13,14). 이것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그동안 제자들이 자주 모였다는 뜻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집 여종도 베드로의 음성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과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저택 큰 다락방이, 최후의 만찬이 베풀어졌던 바로 그 큰 다락방이며(막14:15), 예수님의 승천 이후 제자들을 비롯 120명이 넘는 무리들이 함께 모여 성령을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썼던 곳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장소요, 이후 이 다락방에서 최초의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인정되고 있다.

 

마가복음에 보면 특이한 기록이 나온다. (막14:51,52 읽기) 예수께서 잡히시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는데,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는 장면이다. 복음서 가운데 마가만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만일 벗은 몸을 한 이 청년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와같이 무의미한 일을 복음서 가운데 삽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이한 경험은 당사자의 뇌리에는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이 상례이다. 학자들은 최후의 만찬 후 예수님과 제자들이 감람산으로 가실 때, 마가는 자기 집에서 잠들었을 것이고, 새벽녘에 예수께서 잡혀가시게 되자, 도망쳐온 제자들에 의해, 마가의 집에서는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며, 마가는 잠결에 덮고 있던 베 홑이불만 걸치고 무리를 따라 나갔다가 군병들이 체포하려 하자 혼비백산하여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 것으로 본다. 이 베 홑이불은 세마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당시 고가의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부유한 집이 아니고는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따라서 제자들을 비롯 일반 서민들이 이것을 이불로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당시 예루살렘에서 상당한 부를 누렸던 마가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마가 요한은 아직 어렸지만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인물이며,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인물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어쨌든 마가는 좋은 신앙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자애롭고 믿음이 돈독한 어머니, 유대인으로서의 철저한 신앙교육, 예수님과의 만남, 자기 집에서 열렸던 은혜로운 기도회와 예배들, 사도들과의 어울림, 유복한 가정환경 등,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는 기름진 동산의 수목처럼 무럭무럭 자라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있었다.

 

● 이런 가운데 어느새 성인이 된 마가 요한은 복음전파의 현장에 사역자로 드디어 등장하게 된다. (행12:25읽기) 유대에 큰 기근이 일어나자 안디옥 교회 신자들이 연보를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게 되는데, 이때 바나바와 사울(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이 일을 책임지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가 요한이 이들과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어 안디옥 교회에서 제1차 선교여행단을 파송하는데, 그 선교단에 마가가 참가하게 된 것이다.

 

마가는 두 사람을 따라 먼저 구브로에 갔다. 이곳은 바나바의 고향으로 마가의 친척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마가일행을 환대해 주고 거짓 선지자를 징계하여 소경이 되게 하는가 하면 총독 서기오 바울이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는 등, 마가는 무척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단의 여정이 언제나 이처럼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을 떠나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갔다. 때는 이미 초여름이라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고 전염병이 유행하였다. 더군다나 선교단이 나아가고자 하는 터어키 중앙고원 지대에는 지형이 험하고 황량하여 산적 떼의 출몰이 잦았는데, 이같은 산적떼 얘기가 사방에 퍼져 있었다.

 

갈라디아 지방으로 계속 가고자 하는 바울의 주장에 바나바는 찬성했으나, 마가는 더 이상 고난과 싸우면서 고향을 멀리 떠나 이국 하늘 아래서 처음 겪는 어려운 전도 여행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유하고 유약하게 자란 마가로서는 이미 많은 인생경험을 쌓은 바울과 행동을 함께 하기는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드디어 이들 일행과 헤어져 예루살렘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가 요한은 온실에서 순탄하게 자란 화초와 같아서 아름답기는 하지만 억세지 못하고 그의 신앙은 연단의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아직 없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마가 자신도 그 후 잇따라 들려오는 숭고한 순교자들의 소식과 또한 용감한 사도들의 소식을 들을 적마다 어려운 환경 앞에서 무기력했던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러웠을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 하지만 마가 요한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키우신 일꾼이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마 12:20)” 주님의 눈길은 다시 그에게 쏠렸다. 주님은 다시 그에게 헌신할 기회를 주셨다.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에 큰 성과를 올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종교회의에 참석했다. 일동은 이 전도의 용사들에게서 귀국보고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마가는 도저히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금 주님께 헌신을 다짐하고 떨쳐 일어났다.

 

그리하여 바울과 바나바의 제2차 선교여행에 따라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바울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자기의 중대한 사명을 저버리고 십자가를 내려놓았던 자를 데리고 목숨을 건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유사시에 또 다시 등을 돌리면 선교여행 전체에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동행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나바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한번 마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 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게 되고, 결국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 방면으로 떠나고, 바나바는 다시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향하였다(행 15:37-41).

 

이후 마가 요한의 행적은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나바의 선택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겁이 많던 마가도 드디어 주의 용사가 되었다. 마가 요한의 이후 행적은 바울 서신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는 바울과 함께 로마감옥에 갇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골4:10) 놀랍게도 마가는 로마감옥에서 바울 사도와 함께 고생하고 있다. 골로새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마가가 자신에게 위로가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도 바울은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마가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마가에 대한 바울의 이러한 평가는 이제 마가가 복음의 사역자로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아무 쓸모없는 존재로 평가되고, 낙심 가운데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마가였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나바와 같은 귀한 일꾼의 도움으로 마가는 새롭게 일어설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가에 대한 바울의 마지막 언급은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얼마 전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디모데후서 4:11에 나온다. 거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얘기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때 마가로 인해 절친했던 바나바와 헤어질 정도로, 마가를 불신했던 바울이었는데, 그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 마가가 복음 사역에 매우 유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바울뿐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13에서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르고 있다.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훌륭한 통역관이자 동역자였다. 베드로도 나중에 이스라엘을 떠나 로마를 비롯 이방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이때 마가가 베드로와 동행하면서, 베드로의 복음사역을 결정적으로 도왔다. 마치 사도 바울에게 디모데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후 마가의 재능과 신앙은 성령에 의해 더욱 크게 자라 드디어 ‘마가복음’이라는 위대한 복음서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마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었으며 공관복음 중에서 그 기사의 순서가 정확하여 그리스도의 생애를 파악하는 토대가 되어 있다. 주님의 활약상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이 묘사되어 있다. 대단히 간결하지만 그 필치가 예리하고 변화가 많고 생동감에 넘쳐 있다.

 

그런데 마가는 자신이 쓴 복음서의 근본 자료를 바로 베드로에게 전해 받았다. 즉 마가는 AD30-65년 사이에 베드로가 행한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이르는 전도 사역의 초기부터 끝까지 그와 함께 하면서 베드로가 전하는 바를 상세히 기록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서보다 베드로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비록 저자 마가가 사도는 아니지만 베드로의 직접 증언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에 사도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복음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처럼, 마가는 윗사람과 짝을 이루어 일할 때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마가는 바나바뿐만 아니라 바울과 베드로와도 언제나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놀랍게도 마가는 초대 교회의 서로 맞물려 있는 세 흐름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바나바와 베드로와 바울 사이의 아주 중요한 고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 번 상한 갈대였던 그도,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 왕궁에서 쓰는 기물들은 놀랍게도 쓰레기 처리장에서 가까운 골짜기의 진흙으로 만들었다. 위대한 토기장이신 주님은 언제나 초라한 재료로 귀한 그릇을 만들어내신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후년에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창립자가 되고 감독으로서 그곳에 머물러 이집트에의 전도에 힘쓰다가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를 받아 줄에 매여 끌려다니며 고초를 당하다가 불속에 던져져 순교를 했다고 한다.

 

● 마가는 제1차선교여행에서 도중하차 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한 번 실수한 것을 교훈삼아 자신을 더욱 강하게 연단함으로써 그는 바울과 베드로의 신실한 조력자가 되었고, 또 마가복음을 저술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이와같이 우리도 자주 실수를 범하긴 하지만 그때마다 그것을 교훈삼아 새로운 신앙의 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마가는 자신의 넓은 집을 제자들을 위해 개방하였다. 이처럼 자신의 재산과 지위를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모본이 된다. 이처럼 우리도 내것을 이웃과 나누며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는가?

 

마가가 실수를 딛고 일어서 훌륭한 복음의 조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카의 허물을 덮어주는 바나바의 따뜻한 사랑과 어머니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의 허물을 덮어주는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태도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성도 각자가 갖추어야 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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