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왕의 실수


옛날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인물도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이 되자 애족정신도 더욱 투철해졌습니다.

사울은 어느날, 예루살렘 변방에 있는 기브온이라는 동네로 쳐들어 가 그곳 사람들을 쳐 죽였습니다. 기브온은 여호수아를 속이고 거짓으로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은 나쁜 이방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은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렇게 했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후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군사를 이끌고 길보아산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 군대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만 블레셋 군인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제 블레셋 군인들 손에 죽는 것이 시간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이방 군인들 손에 죽는 것은 유대인들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부끄러움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스스로 칼을 거꾸로 세우고 그 위에 엎드러져 목숨을 끊었습니다.
조금 후 들이닥친 블레셋 군인들은 사울의 목을 자른 후, 몸뚱아리를 벧산으로 옮겨 성벽에 못 박았습니다. 다행히 그 전에 사울의 은혜를 입었던 길르앗 야베스(요르단 북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화장한 후 에셀나무 아래 장사해 주었습니다.

물론, 기브온 양민 살해 사건 때문에 사울이 비참하게 죽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울은 이 외에도 결정적인 실수들을 더 저질러 왔으니까요.
예를 들면, 아말렉 전투에서 양을 다 죽이지 않고 몰고 온 사건, 사무엘 도착 이전에 제사를 지낸 사건 등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양민살해 사건으로 인하여 사울의 대를 이어 왕이 된 다윗 왕 시대에 연거푸 3년 동안 큰 가뭄이 드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다윗 왕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사울이 기브온 양민을 죽였기 때문이야. 기브온은 비록 거짓으로 꾸미고 화친조약을 맺었지만, 어쨌던 여호수아와 평화조약을 맺은 민족이라고. 그런데 사울이 그만 그들을 죽였으니 그 핏값으로 내가 가뭄을 내린 것이야."

다급해진 다윗 왕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어떻게 속죄하여야 원한이 풀리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사울의 고향 기브아로 끌고 가 목 매어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이라는 숫자는 분명히 사울이 죽인 기브온 사람의 수와 동일한 숫자일 것입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율법이 있던 때이니까요.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울의 자손 중에서 누구를 그 죽는 자리에 내어 줄 것인지 결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고 끝에 사울이 첩 리스바에게서 낳은 두 아들과 사울의 외손자 다섯명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변두리에 있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서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첩 리스바가 죽은 두 아들을 바위 위에 눕히고는, 자기도 굵은 베를 가져와 그 옆에 함께 누워 버린 것입니다.
리스바는 보리를 베기 시작할 때(5월)부터 비가 쏟아질 때(11월경)까지 여섯 달 동안이나 낮에는 새가 못 앉도록 막고, 밤에는 짐승이 못 오도록 시체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름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 지는 광야투어를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뒤늦게 들은 다윗 왕은 급히 요르단에 있는 사울 왕의 유골을 가져 와 사울의 첩 리스바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위 위에 있는 리스바의 아들 시체들도 수습하여 사울의 부친 기스가 묻혀 있는 묘에 함께 장사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삼하 21:1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무심히 읽어 내려 간 구절인데 오늘은 너무나 무섭게 느껴집니다.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것은 뭔가 잘 해 보려고 했던 일 아니겠습니까.

선조가 비록 잘못 맺은 약속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를 기억하셨으며, 또한 비록 사울이 왕일지라도 화친 약속을 어기니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이스라엘 전역에 3년씩이나 가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3년 가뭄이란 한국의 3년 가뭄과 비교할 수 없는 재앙입니다.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왕손 일곱 명을 죽임으로써 왕의 딸과 첩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과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왕이나 가장이나 선생된 자에게는 이 메시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

......................


http://segibak.or.kr/index.php?mid=data&document_srl=108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