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주석(전권). 존 칼빈주석 중심으로    

- 샬롬선교회 이정오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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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 로마서14:1-12 -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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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 것을 교훈한다. 우리는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들, 구원에 관한 교리들은 확실하고 일치된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 문제와 절기 문제 같은 신앙의 비본질적 문제에 대해 각각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하고,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믿음이 연약한 자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1-2)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1-2)

"믿음이 연약한 자를"라는 말은, 바울은 여기서 교회를 가르치는 데 특별히 필요한 교훈으로 넘어가고 있다. , 기독교 교의에 있어서 더 큰 진전을 본 자들은 스스로를 체험이 보다 적은 자들에게 적용하며 이 사람들의 연약성을 부축하는데 그들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측컨대 당시 교회가 특별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섞여 있었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다. 이들 가운데는 모세 율법의 의식 준수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으며 유아기 때에도 그것을 먹고 자랐기에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런 것을 전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습관이 들지 않은 멍에를 거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라는 말은, 약한 자들을 골치 아픈 논쟁으로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 바울의 의도라는 점이 명백하다. 유대인들 가운데 율법의 그림자에 집착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당분간 용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너무 가혹하게 누를 경우 그들의 신앙이 뿌리째 뽑혀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직 충분히 확립되지 않은 마음을 괴롭히거나, 그들을 회의 속에 말려들게 하는 질문들을 논쟁적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절을 넓은 의미로 확대하는 가운데 연약한 양심에 덕이 되기는 고사하고 불안과 동요를 일으키는 어려운 난제를 모두 여기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가 어떤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가를 잘 생각하고, 우리의 가르침을 개인의 능력에 적응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2)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3-4)

음식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다면 우리도 그들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들의 서고 넘어짐이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고, 그들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그들을 세우실 능력이 그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형제의 부족을 판단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3)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라는 말은, 바울은 지금까지 음식의 선택에 있어서 따르는 조바심에 대해서 언급했다. 여기서는 날을 구분하는 문제에 대한 또 다른 예를 덧붙이고 있다.

음식의 선택과 날의 구분은, 유대교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음식을 구별하면서 어떤 것을 불결한 것으로 선언하여 그것의 사용을 금하고 있다. 또 하나님은 또한 절기와 엄숙한 날들을 정하면서 지킬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율법의 가르침의 양육을 받아온 유대인들로서는 그들이 처음부터 받았으며 일생에 걸쳐서 습관이 든 절기에 대한 존경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처럼 장기간에 걸쳐서 삼가 온 음식에 감히 손을 대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연약성의 표시였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명백하고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양심에 위배되는 무엇을 행하는 것이 뻔뻔스러움과 모독의 표시였듯이, 그들이 합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삼가는 것도 신앙의 표시였다.

 

(4)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라는 말은, 바울은 절기의 준수가 그리스도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만큼 우리는 그가 그러한 타락행위에 전적인 동의를 표하는 것으로 믿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의 말씨에는 절기를 준수하는 자들이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는 셈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오직 선한 것만 받아들이시기 때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준수해야할 절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품고 있는 견해와 그들이 묶여 있는 준수 그 자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 견해는 미신적인 것이요 바울도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것을 연약한 것으로 부름으로써 그것을 정죄한 바 있으며 다음에 더 공공연하게 그 점을 밝힐 것이다. 이러한 미신에 사로잡힌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이 어떤 날의 엄숙함을 해치지 않으려 할 경우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이 점을 인준하시는 것은 그가 무슨 일이든 의심스러운 양심으로 하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어떤 유대인이, 절기에 대한 미신적인 준수로부터 완전히 구출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에게는 절기의 준수를 추천하는 주님의 말씀이 있다. 준수의 필연성은 율법에 의해서 그에게 부과되고 있으며 그는 그것이 폐기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보다 더 완전한 계시를 기다리며 자신을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국한시킬 도리밖에 없으며 자유의 축복 역시 그가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것을 누릴 수 없다.

우리는 부정한 음식을 삼가는 자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다.

 

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7-12)

 

(1)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7-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라는 말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죽는데 있어서의 원칙을 배우게 되는데, 주님께서 계속적인 슬픔과 지루함 속에서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시간의 되기 전에 떠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절정기에 우리를 소환하실 경우 항상 출발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의 부활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로 확증되셨고, 이제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셨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산다.

바울은 고린도후서5:15에서,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였다.

 

(2)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0-12)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라는 말은, 바울이 이 예언을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적용시킨 것은 옳았다.

이 구문은 또한 그리스도의 영원성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증하는 주목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씀하는 이는 하나님, 곧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남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단번에 밝힌 바 있는 하나님이시다(42:8).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만 주장하는 내용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사실 말이지 이 예언의 진실성은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으로부터 자신에게 한 백성을 모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자신의 위엄을 예배하고, 자신의 복음을 순종하게 하셨을 때 공공연하게 계시되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모든 무릎을 꿇릴 이름을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말로서 언급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2:9,10). 이것이 하나님께서 심판대에 오르셔서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때 완전히 드러날 것은 아버지께서 천상천하의 모든 심판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고후5:10).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5:22).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형제들을 용납하고 그들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