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신앙과 역사
기독교회의 신앙과 역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기독교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었지만, 이제 바울에게서 기독교의 신앙과 역사는 보다 더 광범위한 지역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의 바리새파에 속하는 한 사람이었는데, 다메섹의 역사적 사건으로 그의 생애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이다. 바로 이 다메섹 사건이 바울의 신앙과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행적은 특별히 사도행전에서 보여 주고 있듯이, 바울의 영적 체험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또한 사도 바울 자신도 우리에게 주의 환상과 계시(고후12:1-14)를 알려주고 있다. 바울은 주의 제자들처럼 예수께서 이 땅에 살아계실 때 함께 생활한 것도 아니고, 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 이 땅에 계실 때에도 만나 뵌 적이 없다. 이런 면에서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이 필요하였던 것으로 본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 형태로 바울을 만나 주시고 영적 체험을 주셔서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신앙과 역사를 살피면서 먼저 바울의 출생과 함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고, 유대인으로서 바울의 모습과 기독교인으로서의 바울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신앙적인 면에서 영적인 체험을 중심하고, 역사에 있어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을 통한 복음전도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출생과 성장
바울 자신이 기록한 서신을 통하여 출생과 성장배경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헬라 도시에 속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유대 가정에서 엄격한 유대적 관습을 따라 성장하였으며(빌3:5), 자신의 유대적인 유산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롬9:3, 11:1). 그는 율법을 흠이 없이 지키는 유대인으로 살았으며(빌3:6, 고후11:22), 바리새인의 구전에 대해서 당대의 수많은 인물들보다도 더 열심이 있었다(갈1:14)고 주장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유대적 배경을 자랑하면서 그의 혈통을 베냐민 지파로 거슬러 올라간다(롬11:1, 빌3:5, 고후11:22). 그는 “이스라엘 족속”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며(빌3:6) “내 조상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던”사람이었다. 그리고 “유대교에 있을 때에”그의 동연배들보다 뛰어났던 사람이었다(갈1:14).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가 또한 아람어도 말할 줄 알고,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도 읽을 수 있는 헬라어를 말할 수 있는 유대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의 서신들은 그가 헬라어를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쓸 수 있었으며, 또한 이방 교회들에게 편지를 쓸 때 대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인용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서신서에 나오는 스토아의 수사적 논쟁의 흔적들은 그가 헬라 교육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은 바울을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헬라 도시인 다소에서 태어난 “바리새인”으로(행22:3,6; 21:39) 누이가 있는 사람으로(행23:16), 그리고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로 나타내고 있다(행22:25-29, 16:37, 23:27). 그의 태생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로마의 시민이 된 바울은 다소의 명문 학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또한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전통적인 유대교의 신앙과 생활을 철저하게 답습했다.
2. 유대인으로서의 바울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바울은 타협할 줄 모르는 유신론자였다(갈3:20, 롬3:30). 그리고 이방종교(골2:9), 우상숭배(고전10:14, 21), 부도덕한 행실들(롬1:26 이하)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또 구약을 해석하는 바울의 방법은 그를 랍비적인 유대교의 전통속에 위치시키고 있다.
유대의 랍비로서 바울은 의심할 여지없이 율법의 중심성을 믿는 유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율법은 신령하며(롬7:14)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롬7:12)고 주장한다. 그는 결코 율법의 신적인 기원과 권위를 의심하지 않는다. 율법은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기록된 모세의 율법과 “조상의 구전”(갈1:14)을 의미한다.
유대인 바울이 생각하기를 메시야가 그의 원수들을 궤멸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속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임할 것이라는 유대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은 율법에 열심을 가진 유대 랍비로서 나사렛 예수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을 근절하려는 데에도 마찬가지의 열심을 보였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어느 형태로든지 참여한 것으로 나타낸다(행8:1). 바울 자신의 진술은 그가 스데반에 의해서 대표되는 운동을 진멸하기 위해서 열심을 낸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갈1:13, 고전15:9, 빌3:6).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이 열심은 율법에 대한 그의 열심과 분리할 수 없다. 바리새인에게 있어서 율법은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바리새인들이 의미한 모든 것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는 서기관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 자들과 함께 함으로써 율법을 깨뜨렸으며, 자신의 신적인 권위를 주장함으로써 유대 종교의 기초에 도전하였다. 스데반과 제자들의 주장은 예수는 메시야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모든 유대인들이 볼 때 분명히 허위였던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의 입장으로서는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며, 그의 제자들도 메시야의 백성일 수 없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율법의 종교로서 유대교의 전 기초는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백성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함께 교회의 존재는 유대교에 대한 위협이었다. 랍비 사울은 이 새로운 운동을 진멸하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 있는 줄로 확신한 것이다.
3. 기독교인으로서의 바울
바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는 그가 전에 핍박하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그는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이 그의 독특한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한 칭의를 설교하였다.
바울을 이렇게 완전히 바뀌게 한 사건은 다메섹 도상의 경험을 통해서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설명(행9:1-9, 22:6-61, 26:12-28)은 사울이 하늘에서 밝은 빛을 보았다는 것, 그가 땅에 엎드러졌다는 것, 그가 자신을 예수라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소경이 되었다는 것은 일치한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은 지금까지 외면적으로는 긍지 있고 흠잡을 데 없는 율법의 투사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어둠과 혼란에 빠져 있었다. 스데반의 순교적인 행위는 더욱 그를 동요시켰는데, 그는 의시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Goguel)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이미 기독교인들이 옳다는 것을 알 고 있었다. 철저한 바리새인이요 율법을 준수하며 살았지만 그에게 내적인 의(義)를 갖다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내적 갈등과 회의가 가득했다. 그러나 갈릴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로서 그의 택한 백성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했으며, 그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애를 바치며 수많은 군중이 예수를 추종한다는 것이었다. 또 스데반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할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나며 기쁨으로 죽음을 감수하면서 돌을 던지는 자들에게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면서 죽어갔다. 분명히 그들에게는 새로운 신앙이 있으며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의 회심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율법에 대한 그의 이전 태도를 전격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회심에 있어서 사울은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죄에서 의로, 무종교에서 종교로, 심지어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회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기독교를 진정한 유대교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바뀌는 회심을 하였던 것이다. 바로 그것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로 회심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메시야라는 인식은 율법의 전체 의미에 대한 사울의 평가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바울이 기독교인들과 그들이 주장하는 메시야를 그토록 미워했던 것은 율법에 대한 그의 열심 때문이었다. 예수는 불신앙적이며 부도덕한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반론한다고 믿었던 양심 바르며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정죄를 받았다. 유대교는 율법을 의의 방편으로 이해함으로써 분명히 잘못을 범했다. 이제 그리스도는 의의 방편으로서 율법의 마침이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된 것을 바울은 확신한 것이다. 그리고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을 알게 알았다(롬1:17).
4. 바울의 영적 체험
(1) 다메섹의 빛 체험
사도행전은 바울의 행적을 통하여 그의 영적 체험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으며, 또한 바울 자신도 우리에게 주의 환상과 계시를 알려주고 있다. 특별히 다메섹의 빛 사건을 통해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오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다른 나라까지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한다. 이에 대하여 누가는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이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자가 있느니라 하시니”(행9“3-6) 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또 바울 자신에 의해서도 두 차례나 더 다메섹 체험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행22:6-11)와 바울이 재판을 받으면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행26:13-18)의 변론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말하고 있다.
바울의 영적인 체험은 그리스도의 임재이고, 그리스도의 현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바울 생애에 있어서 독특한 사건이다. 첫째로 이 다메섹 체험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8)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나타나님”이다. 둘째로 이 다메섹 체험은 바울이 “내가 자유자가 아니야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나”(고전9:1)라고 말한 대로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셋째로 바울의 영적 체험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갈1:16)라고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사도 바울 안에 “그리스도의 내주가 일어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바울의 다메섹 체험은 삼위일체 한 분(位) 하나님이신 성자(聖子)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으로 “위격적 임재”이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유일하게 한 번 직접 나타나셨던 특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특별히 바울이 경험한 이 다메섹의 영적 체험은 빛을 보는 체험이었는데, 그것은 하늘로서 비추는 “빛”(행9:3)이었고, “큰 빛”(행22:6)이었으며, “해보다 더 밝은 빛”(행26:13)이었다. 그리고 이 빛은 바울이 “어두운 데서 빛이 바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라고 말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신앙은 출발에서부터 영적인 체험에서 시작된다.
(2) 다른 체험들
사도 바울은 다메섹의 영적 체험을 한 후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수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1:17)라고 밝히는데, 바울은 이 아라비아에서 깊은 영적 체험을 한 것이다. 즉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1-4)라는 것이다. 먼저 바울은 자기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바울은 이 영적 체험에 대하여 두 번이나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님의 강한 임재하심으로 완전히 수동적이 되어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낙원에 이끌려 간 영적 체험에서 받은 것이 “주의 환상과 계시”라고 말한다. 이 환상과 계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바울이 아라비아에 3년간 있으면서 낙원에 간 영적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바울은 성전체험에 대해 말하는데, 예수살렘에서 체포되어 영문으로 들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면서 먼저 다메섹 체험을 말하고는 계속해서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수살렘에서 나가라 저희가 네게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듣지 아니리라 하시거늘~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행22:17-21)라고 하면서 성전에서 비몽사몽간에 체험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 성전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바울을 직접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는 의식절차를 행한 것을 보인다. 이러한 성전에서의 영적 체험이 앞에서 본 다메섹의 영적 체험과 아라비아의 영적 체험과 함께 사도 바울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하여 큰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환상과 체험은 다양하다. 육체의 가지와 기도응답을 통하여 볼 때,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니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12:7-9)라고 말한다. 기도하고 그 응답으로 받은 이 영적 체험이 환상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지만, 바울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분명하다. 또 마게도냐에서의 환상이 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전도 여행의 방향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바뀌어지는 중요한 영적 체험을 하고 빌립보로 건너간다(행16:6-10). 마게도냐의 환상을 본 후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다시 영적 체험을 한다(행18:9-10). 여기서 하나님은 두려워 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전도하라는 것이었다.
바울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 때 다메섹과 성전 체험을 말하다가 영문 안을로 끌려간다. 그 다음날 공회에 나아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사이에 분쟁을 일키고 다시 영문을 끌려가 또 다른 영적 체험을 말한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라고 가르쳐 준다. 바울은 이제 로마로 가게 되는데,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을 만나 모두 죽음의 위기에 있게 된다. 하나님의 사자 곁에 서서 말하되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제게 주셨다(행27:23-25)고 하면서 바울의 영적 체험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것이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다양한 영적 체험을 했고, 바울이 말할 때에 눈이 멀게 되고(행13:10-11), 안개와 어둠이 덮이기도 한다(행13:11). 또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 내고(행16:18), 이로 인해 옥중에 갖히지만 착고가 풀려지는 체험도 한다(행16:26). 그리고 유드고라는 청년을 살리고(행20:7-12), 하나님은 바울의 손을 통하여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으며,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가는 능력을 행하게 하셨다(행19:11-12). 이처럼 사도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하고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체험을 했다.
5. 바울의 선교
(1) 제1차 선교 (행13-14장)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안디옥 교회이다.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고 교사들이 성령의 감동을 바아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하여 보냈는데 이때 바나바의 생질인 요한 마가(골4:10). 그들은 구브로를 향하여 가서 살라미와 바보를 통과하였다. 그곳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이 회심하였다.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버가를 향해 갔다. 거시서 요한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을 떠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나바와 바울은 버가를 떠나 남 갈라디아에 있는 도시들, 즉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드리고 더베로 나아갔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곳에서 반대에 부딪히자 이제 이방인들에게 나아가기를 선언한다(행13:46). 돌아올 때는 왔던 도시들을 다시 재 방문하여 교회들을 굳게 한다. 다만 구브로 섬은 들리지 않고 배를 타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 교회 앞에 선교 보고를 한다(행14:27).
(2) 예루살렘 종교회의 (행15:1-35)
예루살렘 회의의 주제는 한마디로 “율법이냐 복음이냐”를 다룬 것이다. 이제껏 율법을 지켜오던 유대인들로서는 복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원리로 구원관을 바꾼다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 자체 내에서도 정리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어려운 과정이 하나하나 복음으로 정리되어 간다. 이 역할의 장본인이 바울이었던 것이다.
행15장에는 예루살렘 회의의 상세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회의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회의였고, 이방인 교회의 설립과 발전에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으며,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유지시키게 하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3) 제2차 선교 (행15:36-18:22)
바울은 바나바와 결별하고, 실라와 택하여 안디옥을 출발하여 소아시아 지역의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등의 지역으로 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성령께서 이것을 막으셨다(행16:6). 그래서 갈라디아 도시의 더베와 루스드라로 나아갔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고 그에게 할례를 행했다(행16:1-3).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에 따라 바다를 건어 마게도냐 빌립보 성에 도착한다. 마게도냐 환상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간 바울 일행을 통해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다. 그런데 빌립보로 오는 과정에서 아마도 누가의 동반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비롯하여 간수가족, 점치는 여종 등을 중심으로 해서 교회가 생긴다. 이곳에서 바울은 옥에 갖히고 태장을 맞는다. 한밤중에 찬송 가운데 지진인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그 결과 간수가 예수 믿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석방이 되어 데살로니가로 가서 짧은 기간이지만 교회가 세워지고 이 도시를 복음화 시켰다. 그리고 베뢰아로 갔다가 바울은 혼자 아덴으로 가게 된다. 6개월 후에 고린도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바울은 아덴에서 전도하다가 부활을 전할 때 아덴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들은 이원론적인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아덴에서 좌절을 겪은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한다. 여기서 1년 6개원을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다. 바로 이곳에서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처음 만나게 된다. 이들이 바울에게 숙박소와 노동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는데 동역자들이었다.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에 머물러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6개월 만에 바울이 있는 고린도로 내려와 만나게 된다. 궁금했던 교회 소식을 듣고 펜을 들어 고린도에서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 전?후서이다. 그러다가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겐그리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게 간다. 그리고 바울은 이 부부를 에베소에 목회라라고 남겨두고, 그 후 바울은 예루살렘을 들러 안디옥 교회로 돌아온다.
(4) 제3차 선교 (행18:23-21:16)
2차 선교 때에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린 곳이 에베소이다. 이제 3차 선교를 하면서 바울은 곧바로 에베소를 목표로 하고 나아간다. 바울에 의해 에베소에 머물러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서 열심힘 목회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가 왔을 때는 그를 잘 가르쳐 바울과 함께 동역하여 세운 고린도 교회에 목회자로 파송까지 했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여 회당에서 전도하고, 두란도 서원으로 옮겨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3년 동안을 계속해서 사역을 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을 듣게 된다. 또 고린도 교회에서 3명의 대표단이 에베소에 찾아와 바울의 의견을 듣는다(고전16:17). 그리하여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글로 써서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서이다. 그런데 얼마 후 또다시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바울 자체를 무시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바울을 고린도에 직접 방문하지만 모욕을 당한 후 에베소로 다시 돌아오고 만다. 그래서 눈물로 쓴 편지라고 불리우는 서신을 써서 디도 편에 그 편지를 직접 보내게 된다. 이 서신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의 반응과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에베소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이 일로 마게도냐로 가서 빌립보 교회를 방문한다. 바울이 마게도냐쪽으로 가게된 것은 고린도 교회 소식을 가지고 오는 디도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디도를 만나게 된다(고후7:5-7). 마게도냐 빌립보에서 디도로부터, 바울이 눈물로 쓴 책망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바울은 기쁨 속에서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이다. 그래서 사도와 고린도 교회 사이에 있었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는 극적인 기쁨 속에서 쓴 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을 모아서 사도가 가면 달라는 부탁까지 하게 된다.
바울은 8개월간을 마게도냐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드리어 고린도 교회로 간다. 세 번째 방문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3개월간을 머물면서 교회를 살피고, 이제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다 전도했다고 하면서 로마를 거쳐서 서바나로 가야겠다는 내용을 담아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는데, 이것이 로마서이다. 바울은 지금까지는 한 번도 로마에 간적이 없었지만 이미 세워져 있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많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베소에 폭동이 일어나 마게도냐 지방으로 옮겨가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먼저 로마로 보냈던 것이다(롬16:3-20). 그러나 지금 당장은 가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들러 구제헌금을 전달해 주고 후에 로마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편지부터 보내는 것이었다.
(5) 예루살렘에서 체포 그리고 로마행 (행21:17-끝)
바울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지 않는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곳에 가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야고보의 제안으로 성전에서 금식에 동참한다(행21:23-24).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의 고소를 당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 감옥에 2년동안 갇힌다. 이제 드디어 로마로 가게 되는데 죄인의 몸으로 간다. 로마에 도착해서도 2년 동안 구금된다. 2년 동안의 옥중생활을 하면서 보낸 편지들이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이다. 감옥에서 풀려난 바울은 로마에서 전도하고 또 마게도냐 지방까지 방문한다. 함께 했던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디도는 그레데 섬에 각가 목회라라고 남겨 둔다. 그러다가 마게도냐 지방에서 언젠가 남겨둔 디모데와 디도에게 쓴 편지가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이다. 그러다가 다시 로마에 있을 때에 네로에 의해 대 화제 사건과 박해로 인해 바울은 또 감옥에 갖힌다. 로마에서 두 번째 옥중생활을 하면서 보낸 편지가 디모데후서이다. 바울서신 가운데 가장 나중에 기록된 서신으로 디모데를 간절히 보고싶어 하며 자기를 면회 와 달라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