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릉(首露王陵)


수로왕릉(首露王陵)은 사적 제73호로, 가락국(駕洛國)의 초대 국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 (서상동)번지에 있다. 봉분 이외에 아무런 시설도 없는 원형 토분이다. 1580년(선조 13) 영남관찰사 허엽(許曄)이 왕릉을 수축하여 상석·석단·능묘 등을 갖추었고, 1647년(인조 25)에 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이라 새긴 능비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수로왕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였다고 전한다. 능의 전면에는 가락루·연신루·회로당 등의 건물이 있다. 《지봉유설》에 의하면 능의 구조는 큰 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이기록에는 임진왜란때 일본인들에 의해 능이 도굴을 당했는데 당시에 왕이 죽으면 주위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을 같이 묻는 순장이 있었던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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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73호

김해 수로왕릉
金海 首露王陵


1. 개요

사적 제73호.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서상동)에 있는 무덤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가락국(駕洛國)의 초대 국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이 묻힌 능이라고 한다. 원래는 봉분 이외에 아무런 시설도 없는 원형 토분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왕의 격에 맞추어 시설들을 추가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시설은 수로왕의 위패를 모신 숭선전(崇善殿)으로, 우리나라의 팔전으로도 꼽힌다.

2. 역사

수로왕 이야기는 『삼국유사』의「가락국기」에 전하지만, 무덤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원형 봉토무덤으로 높이가 5 m이며, 주위 1만 8천여 평이 왕릉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왕릉 구역 안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전사청·제기고·납릉정문·숭재·동재·서재·신도비각·홍살문·숭화문 등의 건물들과 신도비·문무인석·마양호석·공적비 등의 석조물들이 있다. 본 무덤이 수로왕이 묻힌 곳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나, 대부분은 적어도 본 무덤이 삼국유사에 수로왕릉이라고 기록된 그 무덤임은 확실하다고 본다.

금관가야 멸망 이후에도 신라를 거쳐 고려 문종대까지는 비교적 능의 보존상태가 좋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조선 초기에는 많이 황폐해진 듯하다. 『세종실록』에 수로왕릉수로왕비릉을 중심으로 사방 30보에 보호구역을 표시하는 돌을 세우고, 다시 세종 28년(1446)에는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세워 보호구역을 넓혔다는 기록이 있다. 무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때는 선조 13년(1580) 수로왕의 후손인 허수가 수로왕비릉과 더불어 크게 정비작업을 마친 후이다.

지봉유설(芝峰類洩)』 기록에 따른다면 능의 구조는 큰 돌방무덤(석실묘)으로 추정된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수로왕릉이 임진왜란일본군에게 도굴을 당하여 내부가 드러났는데, 순장당한 사람의 유해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