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해석
                                             (마 24:14-30) 

1.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25장에는 천국에 대한 세 가지의 비유가 나온다. 즉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받은 자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가 그것이다. 세 비유는 모두 그 주제가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이다. 따라서 주님이 말씀하신 이 비유 속에는 반드시 천국에 관계된 어떤 진리나 진실이 숨어 있다는 전제하에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달란트 비유를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단어 곧 달란트라는 말을 그리스도인들의 재능으로 바꾸어 해석한다면 달란트 비유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는 결코 달란트라는 단어 속에서 이해될 수 없고  오직 달란트 비유 속의 전체의 의미나 내용 속에 들어 있는 천국의 속성과 의미 속에서 이해해야 할 ‘비유’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비유는 그 비유 속에 등장하는 단어나 문자적 의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비유의 내용이나 문자적 의미 보다는 그 비유 전체의 통일된 어떤 감추어진 비밀로서의 사상이나 의미가 핵심 내용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십년 광야 생활 중 반석에서 물이 나온 사건도 하나의 비유로서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음을 보여준다(고전 10:4).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불신앙적인 이스라엘 백성들 대신에 반석이 깨뜨러져 물이 나와 오히려 죽어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 살았듯이 이것은 하나의 모형이며 그림자로서 비유이다(출 17장). 즉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심으로 그 사실을 믿는 모든 죄인들은 영생의 복을 누릴 것에 대한 비유이다(고전 10:4). 
구약의 수많은 사건과 내용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인 구원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로서 비유라 할 수 있다. 


2. 달란트 비유의 주제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말씀 가운데 많은 경우가 비유이다. 말 그대로 비유란 어떤 감추어진 실체의 진리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비유를 해석할 때는 본래의 감추어진 진리를 복음서 전체의 사상과 주제 아래서 찾아야 한다. 복음서 전체는  구약에 그림자로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나라 및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주님의 이 달란트 비유를 바르게 설교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비유의 주제인 하나님 나라와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해석이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현재성과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미래적 요소로 아직 남아 있다. 복음서의 대부분의 천국 복음과 그 비유들은 메시야의 강림으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와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달란트 비유도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를 통한 천국의 모습과 성격을 가리키는 비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달란트 비유의 핵심을 달란트에 두고 이 달란트를 재능이나 직분 등으로 이해하여 두 배의 이익을 남기는 내용에 핵심을 둔다면 이 비유 역시 그리스도인의 구원 이후의 사역이나 성화에 두는 성화론적 해석이 되고 만다. 즉 여기서 성화론적 입장이라는 말은 이미 구원 받은 자의 거룩한 삶과 열매를 요구하는 입장에서 비유를 해석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 달란트 비유도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관계된 기독론적 방법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이미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원 이후의 성화론적 입장에서 해석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의 달란트 활용 곧 재능 활용이 주제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및 천국이 주제인가에 따라 그 해석과 설교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전 2:2). 이 말은 성경의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임을 강조한다(눅 24:44).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모든 빛과 지식조차도 그의 아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엡 1:15-1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요 구원이기 때문이다. 


3. 달란트 비유의 성화론적 해석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달란트 비유를 이미 천국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재능대로 직분이나 일을 맡기고 그 결과를 요구하는 비유로 해석하는 것이 소위 성화론적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해석은 달란트 비유의 주제를 그리스도인의 달란트 활용 곧 재능 활용이나 직분 이행에 둔다. 이 해석 아래서의 달란트 비유는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 왔다..
먼저, 주인에게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 오랜 후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회계할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또 다른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이익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 종은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긴다 또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으로부터 재능대로 은사와 재능(달란트)를 받았다. 우리는 재능을 주신 주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재능을 잘 활용하여 주님이 주신 것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충성된 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 때 주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맡기신 대로 회계하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주인에게서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두 달란트를 남겼다. 오랜 후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회계할 때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또 다른 두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이익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 종은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긴다 또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역시 그리스도인들은 재능을 주신 주님께 충성된 자가 되어 받은 재능을 잘 활용하여 주님이 주신 것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어 주님이 재림 하실 때 칭찬 받는 종들이 다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재림 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재능을 맡기신 대로 반드시 회계하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주인에게서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  오랜 후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회계할 때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말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이 말은 들은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자를 심하게 꾸중하며 징계를 내렸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악하고 게을러서 재능대로 일하지 않고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주님께 내밀었을 때 엄한 꾸중과 심판을 받았다. 특히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갈았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 때 주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맡기신 대로 회계하고 심판하실 것이다. 또한 주님의 재능을 받고도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면 주님의 심판을 받아 쫓겨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재능대로 열심히 일하며 충성된 생활에 힘쓸 것을 권면하는 비유로 본다. 
그러나 이 해석 곧 성화론적 해석에는 구원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꾸중을 받고 쫓겨난 것은 무엇에 대한 비유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구원 받은 성도가 달란트 대로 사명을 다하지 못하거나 두 배로 이익을 남기지 못하면 심한 꾸중을 받고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한단 말인가. 특히 주님의 재림 때 심판 받아 어두운 곳 곧 지옥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가. 또한 구원 받은 성도가 직분이나 달란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는가. 달란트 비우가 이렇게 이해된다면 성경 전체의 구원론 곧 구원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며 한 번 선택함을 입고 은혜로 구원 얻은 결과는 영생의 축복으로 이어지는 구원론과 심각한 충돌이 생긴다. 이런 점에서 달란트 비유는 또 다른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4. 달란트 비유의 기독론적 해석

이미 앞에 언급한 것처럼 달란트 비유의 주제를 재능과 은사의 활용에 둔다면 구원론과 충돌하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그러나 이 달란트 비유가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관계된 기독론적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 역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비유의 하나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과 구원의 특징 및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천국에 관한 모든 비유들은 기독론적이며 구원론적이어야 한다.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 관한 비유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은혜이다. 달란트 비유도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로운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그 주제라는 인식 아래 해석되어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첫째, 달란트 비유의 주제는 재능이나 재능의 활용 여부가 아니라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이다. 천국은 이 달란트 비유와 같은데 이 달란트 비유 속의 무엇과 같다는 말인가. 달란트 비유는 말 그대로 천국이라는 실체 즉 천국의 어떤 모습이나 천국의 내용에 대한 비유일 뿐이다. 즉 달란트 비유 속의 달란트는 화패(돈)의 단위이다.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의미이다(27절). 이 달란트 비유 속에는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자들의 세 가지 태도와 그 결과가 나타나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의 경우는 이익을 남겨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한 사람을 꾸중과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만약 달란트 비유가 재능이나 직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리 아래 해석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따라  칭찬과 꾸중을 듣는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따라 천국에 갈 수도 있고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잘못된 구원론에 이르고 만다. 또한 그와 같은 해석은 천국이라는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천국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어떤 충성스러운 삶을 요구하는 것이 주제가 되고 만다.
둘째, 이 달란트 비유는 천국과 연결하여 전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과 종들의 대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대화 내용의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대화 속에 감추어진 비밀(천국)이 핵심이다. 즉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갔다 와서 회계할 때 주인의 말과 종들에게서 나오는 반응이 천국 곧 하나님 나라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과 회계할 때 나오는 대화를 살펴보면 그 내용이 너무나 똑같음을 발견한다. 이 대화에 나타난 결과는 두 종들은 모두 주인의 말을 듣고 믿었으며 그 말대로 순종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인은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믿고 따른 종들을 칭찬하고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예하는 신분으로 격상시켰다. 이 비유의 내용 속에는 감추어진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주인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며 두 종류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야로 믿고 인정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구원 받은 천국 백성에 대한 비유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하는 말은 너무나 무례하고 교만하다. 그는 자신의 주인에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라고 말하며 한 달란트를 내던지듯 주인에게 주었다. ‘받으셨나이다’는 말은 원문에 ‘당신이 가진다’는 의미로서 한 달란트 받는 자는 그것을 주인에게 던지듯이 주어버린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주인의 말을 믿고 따르지 않은 악한 태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을 구원할 온유하고 겸손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악하게 대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러나 창기와 세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인정하여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었다. 마찬가지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인정하고 믿어 칭찬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과 구주로 믿는 자는 천국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받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말과 태도의 결과는 결국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심판을 받았다. 이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도 않고 구원의 주님(주인)으로 믿지 않음으로 결국 바깥 어두운 곳 즉 지옥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을 비유한 것이다.


5. 나가는 말

달란트 비유에서는 달란트가 주제가 아니라 천국 곧 하나님 나라가 주제이며 그 비유 속의 내용과 의미는 천국의 비밀이다. 주인의 말을 인정하며 순종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똑 같은 칭찬과 똑 같은 은총을 받았듯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똑같은 은혜를 차별 없이 받게 된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어떤 악한 사람들은 이 땅에 주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음으로서 천국과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하지 못하고 천국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처럼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달란트 비유 속에 감추어진 비밀로서의 천국 비유이다.
천국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실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로 인정하고 믿는 자들(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자(한 달란트 받은 자)는 쫓겨나 바깥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갈듯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섯 달란트 및 두 달란트 받은 자처럼 이미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 백성들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구원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하는 삶의 연속이어야 한다. 
바울의 감사 기도 속에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음 눈을 밝혀 주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하나님 나라(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고백이 언제나 들어 있다(엡 1:1-20). 
  달란트 비유는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재능 활용이나 직분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성화론적 의미의 비유가 아니다. 달란트 비유 속에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성될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감추어진 비밀로 담겨져 있다. 이 비유는 구약에 감추어진 비밀로서 예수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달란트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주님)으로 인정하는 믿음 안에서의 구원과 천국을,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징계와 심판(지옥)을 보여주는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발췌 김두석 교수 칼빈신학교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