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 [상권.5-14]
- 눅22:24-27 -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22:24, 27)
세상 나라의 지도자는 통치하고 억압하는 데서 그 권위를 세우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는 낮아진 자리에서 서로 섬김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인정을 받는다. 우리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참조; 눅22:25-26>
1.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살아야 한다.
⑴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①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있 었다.(본문)
② 그 때, 예수님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말씀하 셨다.(본문)
③ 그 전에,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서 본을 보여 주셨다. <참조: 요13:12-17>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 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 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 라. (요13:4-5, 14-15)
④ 예수님은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 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 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
⑵ 바울은 성도들에게 서로 섬기는 자가 되도록 권고하셨다.
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하셨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 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3-4)
②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셨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2. 섬기는 자로서 올바른 신앙을 배워야 한다. <참조: 벧전4:8-11>
⑴ 서로 열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 라.” (벧전4:8)
⑵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이나 염려와 근심 없이해야 한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4:9-10)
㉧ 한 가지의 예; <마르다의 염려와 근심, 예수님의 대답>(참조: 눅10:38-42)
① 마르다의 염려와 근심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 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눅10:40)
② 예수님의 대답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 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 하리라 하시니라.” (눅10:41-42)
⑶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 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벧전4:11)
무엇이든지 주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 고 주님께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며 서로 섬기는 자로 살 아야 한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 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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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 다니엘서 3:24-30 -
샬롬선교회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서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다니엘서 3:26)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본문강해.
1. 불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진 세 사람의 신앙
+ 유대인을 고소하는 자들에 의해 왕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죄로 "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명이 불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지게 되었다.
= 화가 난 왕은 풀무불의 뜨거움을 보통보다 일곱 배나 더 높게 하라고 명령했다. 뜨거운 열기로 그들을 풀무불로 이끈 자들이 불에 타서 죽을 정도였다.
+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왕과 그것을 거절하는 세 사람이 주고받은 말을 살펴보자.
[다니엘서 3:15-18] 15.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 풀무불 속에 던져진 젊은이들을 본 느부갓네살 왕의 눈에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밧줄이 풀리고 걷고 있는 네 명이 보였다. 게다가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 같았다. 여기서 '신들의 아들'이란 세 사람을 돕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자였다. 천사 중 한 명이라고도, 또는 성육신 전의 독생자 예수라고도 해석된다.
2. 느부갓네살 왕의 놀라움과 칭찬.
+ 3장에서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명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지키심을 눈으로 보이시고, 칭찬하고 있다.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주님의 음성이다. 그에게 주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느부갓네살 왕이 말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57번 쓰이는데,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것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려고 나온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말 중에 있다.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히브리어로는 '에-ㄹ·엘요-ㄴ'이라고 한다. 참고로 '지극히 높으신 분'이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할 때의 호칭으로 다니엘서의 4장과 7장에서 9회 나온다.
+ 느부갓네살 왕의 증언과 명령
[다니엘서 3:28-30]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3. 고난(환난)으로부터 구원받는 선택받은 그리스도인.
+ 다니엘서 3장의 젊은 유대인(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은 불길 속에 던져져도 타죽지 않았듯이,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은 대환난으로부터 반드시 구원받을 것을 예형적(予型的)으로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사도 베드로는 로마의 박해를 받으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한다.
[베드로전서 4:12-13]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결언.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지켜주셨다.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그 소년들은 풀무불에서 보호함과 구원함을 얻었다.
[이사야 43:1-2]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2) 우리는 세상 권세와 영광에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께만 순종해야 한다.
그 소년들은 풀무불에서도 그들을 건져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초월한 순교적 신앙을 가졌다.
[고린도후서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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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무(Furnace )
돌이나 진흙으로 만든 도가니, 쇠로 만들어져서 금속 등을 용해하여 제련하는 용광로를 말한다(잠 17:3; 렘 6:29; 겔 22;18). 가죽을 무두질하거나(호 7:4-7) 빵을 굽는 데도 사용하였는데(느 3:11; 사 31:9 참고 ) 빵을 굽는 풀무는 개역성경에서 화덕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레 2:4; 26:26). 풀무는 하나님의 연단(잠 17:3; 사 48:10)이나 심판(말 4:1), 지옥(마 13:42; 계 9:2) 등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또 신명기 4:20에서는 애굽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한편 고대 세계에서는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잔인한 형벌이 있었는데(창 38:24; 레 21:9; 렘 29:22)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극형을 받았지만(단 3:1-23)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지 않았다(단 3:26-27). 이들이 던져졌던 풀무는 금속을 제련하는 용광로이기보다는 벽돌을 굽는 가마였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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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 세겔
- 마태복음 17:24-27 -
샬롬선교회
[마태복음 17:24-2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본문강해
[본문 24절] 예수님께서는 여러 지방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본동네 가버나움에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돌아 온 것을 본 성전세 징수원이 베드로를 붙잡고 말합니다.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성전세는 이스라엘 남자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성전유지와 보수를 위해 반 세겔씩 내는 세금입니다. [당시 은으로 된 반 세겔(2드라크마)은 노동자의 2일정도 품삯입니다. ] 베드로도 예수님도 이 세금을 아직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너의 선생은 왜 세금을 내지 않냐’는 말은 단순한 독촉이 아니라 좀 비꼬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도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파견한 성전세 징수원은 예수님에 대해 나쁜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유대교 전통을 깨는 위험한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세를 안 내시냐는 말엔 선생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기본도 안 지키냐는 조소가 섞여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론 그런 예수님을 선생으로 믿고 따라다니는 베드로도 한심하게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따라 다니더니 수중에 돈 반 세겔이 없어서 당연히 내야 할 세금도 내지 못하느냐라는 것입니다.
[본문 25-26절] 베드로가 아마도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예전처럼 고기잡이로 돈을 벌고 쓰던 때가 생각났을까요? 세금 독촉에 돈을 못 낸 베드로가 더 퉁명스럽게 말했을 것입니다. ‘누가 안낸다고 그랬나, 내신다’
기분이 잔뜩 상해 안으로 들어온 베드로를 보고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거셨습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 요즘 조세 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입니다. 대통령 아들이라고 세금 면제해주지 않습니다. - 예수님 당시 왕권주의사회에서는 왕자들에게 세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만 해도 왕자들과 공신들은 세금을 면제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에 정신이 버쩍 났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이런 의미입니다. ‘그렇지? 성전세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 드려도 된다. 죄인들이 하나님께 해결해야 할 빚이 자녀들은 다 청산되었다’
지금 잔뜩 속상해서 들어온 베드로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뭘 그런 일로 믿음도 없이 풀이 죽었냐고 꾸짖지도 않으셨습니다. 짧은 몇절의 말씀이지만 이렇게 보면 예수님이 약한 우리 마음을 읽으시고 가장 현명한 처방을 내리시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7-18]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것은 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과 장차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되새기며 이 믿음으로 늘 스스로를 권고하시길 축원합니다.
[본문 27절]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해서 성전세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바다 지척에 있습니다. 갈릴리바다는 어부 베드로의 일터였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잡았다던 동전을 입에 문 그 고기는 갈릴리 바다에서 제일 많이 잡히는 물고기(일명, 베드로고기)이었을 것입니다. 이 물고기는 아래턱이 위턱보다 크고, 바닥까지 내려가서 작은 물고기들을 쭉 훑어서 먹는다고 합니다. 이 베드로고기가 어떻게 해서 동전을 물게 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바닥에 가라앉은 동전을 같이 집어 삼켰는데 목에 걸렸다고 해야 합니까?
여기까지는 자연적으로도 있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낚시대를 던지는 순간 그 고기가 낚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바닷속 일을 아시고 그 물고기가 베드로 낚시에 걸리게 하셨을까요?
다른 이적들과 마찬가지로 성령과 능력으로 예수님이 이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 기적이 예수님이 행한 기적 중에 특별히 대단한 기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큰 위로와 믿음을 주는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세 내게 가서 하루 일해서 돈을 마련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열두명을 데리고 삼년 반을 먹이고 생활을 책임지셨다는 것은 대부분이 가난하던 그 당시에 기적입니다. 그들이 호의호식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다 돌보셨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에게 전도의 훈련을 시키시기 위해 여러 마을로 흩어서 보내셨습니다. 그들 손에 여행 경비를 줘서 보내지도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제자들이 모두 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고기 잡는 일은 이전에도 베드로가 하던 일이고 잘 하는 일입니다. 낚시를 던지는 일은 노련한 베드로가 했지만 무엇이 낚일지는 예수님께서 정해 놓으시고 꼭 필요한 것을 잡게 해 주십니다.
결언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내세의 복을 주셨을 뿐 아니라 지금 현재도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생활의 염려와 앞날의 두려움이 엄습할 때 물고기 입에 동전을 물려 놓으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약한 자를 실족하지 않게 하신 주님을 본받고 우리의 언행에 사랑과 너그러움이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께서 반드시 우리를 통해 구원할 자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항상 믿음으로 기도하며 확신을 갖고 굳건한 걸음으로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복된 모두가 되시길 간구합니다.
[시편 91:14-15]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순종의 결과
- 요한복음 5:26-30 -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32.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요한복음 5:26-30)
서언 - 말씀에 순종하는 자유 -
그리스도인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평안을 얻은 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1. 본문강해:
[26-27절] [이는]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주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셨고 또 사람됨을 인하여 심판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구원받을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대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그가 한 사람인데 많은 사람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할 수 있으셨던 것은 그가 단순히 사람이 아니시고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대속 사역을 통해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여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게 된 것이다.
[28-29절]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의 사람 살리시는 사역의 목표는 몸의 부활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무덤들은 다 열리고 시체들은 부활할 것이다.
장차 두 종류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할 것이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할 것이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하나 믿음의 증거로서 중요하다. 믿는 자는 죄 짓지 않고 선을 행하고 거룩의 열매를 맺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갈 것이다.
두 종류의 부활에 대해서는 다니엘도 증거하기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단 12:2).
[30-32절] 30.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32.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예수께서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아버지와 항상 일치되게 판단하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즐거이 복종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듯이, 그의 심판은 항상 바르고 정당하시다고 말씀하신다. .
그는 지금 단지 자신에 대해 주관적 증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해 증거할 뿐이라면 그의 증거는 참되지 못하겠으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시며 그의 증거는 참되시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를 의미하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몸과 영혼이 구원을 받고 영생하기 위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사람들이 부활하여 영생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 없다. 죄인들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은 성도가 단지 미래에 얻을 것이 아니고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그가 그 믿음 안에 거한다면 그는 다시 정죄함을 받지 않을 것이다(롬 8:1).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그 누구도 취소할 수 없는 확실한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그 구원을 결코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영광스런 몸의 부활을 소망하자.
28-29절,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성도들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도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순종과 선행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경말씀을 순종하며 선을 행하다가 마지막 날에 영광스런 부활과 영생에 이를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의 순종과 자유, 그리고 그 결과
- 그리스도인의 순종과 자유의 교리는, 미래를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삶으로 요약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1)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영적인 자유이다.
육적인 자유는 육을 추구하는 자유로서 방종하나, 영적인 자유는 영생의 순종에 이른다.
성도의 참 자유는 수고하고 무거운 세상의 짐은 주님께 다 내려놓고 그 분의 멍에를 메고, 그 분께 배우며, 그 분의 짐을 지고, 그 분을 좇는 삶을 사는데(마 11:28-30; 16:24)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유의 영으로서 각 성도의 속에 사신다(갈 2:20).
그리하여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의를 모두 전가하셔서 자신과 함께 한 형제와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롬 8:14-17; 갈 4:6-7; 히 2:11).
성도의 자유는 단지 현상의 양태가 아니라, 주님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존재의 양상을 지시한다(빌 3:10-11). 그러므로 각자의 몸에 있는 예수의 흔적을 성도의 자유의 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갈 6:17).
예수의 흔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부활의 성도가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의 죽으심을 자신의 몸에 짊어짐이 아니겠는가(고후 4:10)?
(3)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의를 전가해 주심으로써 우리는 그저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채무자가 되셔서 죄의 값을 다 갚으셨다. 그저 다 갚으셨으므로 전혀 우리 편의 채무가 남아있지 않다.
어거스틴이 갈파한 바와 같이, “신실하신 주님께서 스스로 우리에게 채무자가 되셨다. 우리로부터 무엇을 받음으로써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약속하심으로써 그리하셨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도 의롭다 여김을 받는 자리에 우리를 세우셨다.
[본문]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한복음 5:30)
(4) 그리스도의 대리적 무름이 우리의 자유를 위한 값으로 지불되었다.
그 분께서 다 이루시고, 다 주셨으므로, 더 이상 보속할 빚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빚이 다 속상되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빚진 자로서 남는 것은 이제 육체가 아니라 주의 영으로 은혜 가운데 살고자 함이다(롬 1:14; 8:12-13). 빚이 없으나 빚진 자로 사는 자는 복되다. 왜냐하면 그는 빚진 자로서 빚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5) 성도는 죄의 빚을 무름 받고 스스로 의의 빚을 진다.
의의 빚은 자유의 빚, 은혜의 빚이다. 그것은 사실 빚이 아니다.
이는 의의 종이 아니라 자유자인 것과 같다(롬 6:18). 또한 이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자가 멍에로부터 해방된 자인 것과 같다(마 11:29). 주님의 멍에는 은혜의 멍에요, 쉼의 멍에요, 자유의 멍에이다.
결언: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유이다. 영적 자유(거룩한 영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유)는 영생의 순종(영원한 생명에 얻게 하는 순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