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젼 묵상 (46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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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 여호와의 집 성소에 들어가므로. [예레미야 51:51]



  이점에 관해서는 주의 백성들이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해야만 했습니다. 
제사장들만 들어가게 되어 있는 거룩한 성소에 
보통 사람들이 들어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 어디서나 이와 비슷한 서글픈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경건치 못한 사람들이 
주의 사역에 입문하겠다며 교육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 전국민이 국가 교회라는 교회 안에 명목상의 교인으로 가입되어 있으니 
이런 기막힌 거짓말이 어디 있으며 이렇게 통탄할 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회심도 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교회의 종교 의식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좀 계몽되었다는 교회들도 징계를 별로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니 
이런 두려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문제를 들고 주 예수님께 나가면, 
주께서 개입하시어 그런 악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악이 주님의 교회로 들어오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불순물을 섞는 것은 샘을 오염시키는 짓이요, 
치솟는 불길에 물을 퍼붓는 짓이며, 비옥한 땅에 돌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 주여, 
우리 모두 각자 적절한 방법으로 교회의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소서. 
교회가 하나의 국가로서 회심치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구원받지 못한 공동체가 되지 않고, 
성도들의 총회가 될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 
그러나 이 일을 이루려는 우리의 열심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있는지, 우선 우리 자신부터 조사해 봅시다. 
우리 자신이 주의 성소의 침입자들이 되지 않기 위해 
혼인 예복을 입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청함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받은 자들은 지극히 적습니다. 
그 길은 좁으며 그 문도 좁습니다. 
오, 하나님께 택함받은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께 바르게 갈 수 있는 은혜를 저희에게 허락하소서. 
언약궤를 만진 웃사를 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그가 정하신 이 두 성례전에 대해서도 질투가 많으신 분입니다. 
따라서 내가 참신자라면 이 두 예식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지만, 
이방인이라면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대 그 예식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거나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점에 대해 반드시 자기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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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시편 73:22]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자신의 속사람에 대해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우매”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보통 쓰는 
어리석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이 전 절에서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그 어리석은 자
(한글 개역에는 “오만한 자”로 번역됨-역자 주)를 질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나오는 “우매”라는 말 속에는 죄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처럼 “우매”한 자가 됨으로써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매의 정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한마디 덧붙여
 “내가 이같이 우매하니”라고 쓰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아주 악한 우매로 단순히 연약해서 그랬다는 것으로는 
변명할 수 없는 그런 우매입니다. 
오히려 그 고집 세고 고의적인 무지 때문에 정죄받아 마땅한 우매입니다. 
왜냐하면 경건치 못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그 끔찍한 종말은 잊어버린 채 
다만 그들이 현재 형통한 것만 보고 질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연 이런 다윗보다 더 낫다고 할만큼 지혜로운 사람들일까요! 
혹시 우리 자신은 이미 온전함을 얻었다거나 아니면 징계를 하도 많이 받아서 
우리 안에 있던 모든 고집들이 다 쫓겨 나갔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이렇게 말한다면 이야말로 진짜 교만입니다! 
만일 다윗이 어리석었다면, 자신을 평가할 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우리야 얼마나 더 어리석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뒤를 돌아다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처럼 신실하게 대하셨을 때도
 그를 의심했던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실 때면
 “싫어요, 아버지”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항의했던 
여러분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그의 섭리들을 보고 잘못 해석하여
 “이 모든 것이 다 나를 대적하고 있구나”라고 
탄식하며 신음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만일 우리가 정말 우리 마음을 안다면, 
우리의 우매함이 악한 우매함이라는 기소에 대해 
틀림없이 유죄를 인정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우매”를 깨달은 우리는 다윗이 결론적으로 갖게 된 
다음과 같은 결심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