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のいるといっしょに

- 17:2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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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 겟세마네 동산에서

22: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

- 주일 이른 아침 (20:11-18,9-10, 16:9-11, 28:8-10)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

- 주일 정오쯤 (24:13-35, 16:12-13)

예루살렘에서 베드로

- 주일 낮 동안 (24:34, 고전15:5)

집에 모인 열제자들(첫번째)

- 주일 저녁 (16:14, 24:36-43, 20:19-25)

집에 모인 열한 제자들 (두번째)

- 일주일 후 (20:26-31, 고전15:5)

갈릴리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 (세번째)

- 어느 날 새벽 미명 (21:1-33)

갈릴리 산위에서 열한 제자들

- 얼마 후 (28:16-20, 16:15-18)

500여명의 제자들

- 얼마 후 (고전15:6)

야고보와 바울

- 얼마 후 (고전15:7, 8)

제자들

- 40일 동안 (1:3, 고전15:6-8)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 부활 후 40(24:44-49, 1:3-8)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에게 성취된 축복

복음이 확증되었다. (고전15:1-4, 24:44-46)

구원이 성취되었다. (10:9-10, 4:25, 5:9-10)

믿음의 확실한 보증을 얻게 되었다. (고전15:14,17)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고전15:18-19,58)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었다. (요일3:1-3)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다. (고후5:1-4)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는다. (고전9:25)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린다. (16:33)

 

 

1. 부활의 소망

 

사랑과 믿음이 소망으로 말미암는다. 소망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에 터를 잡는다(1:4-5). 예수를 우리가 보지 못하였으나 믿고 사랑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기뻐함은 복음의 약속인 영혼의 구원을 확신하기 때문이다(벧전 1:8-9).

 

우리의 보물이 천상에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그곳을 향한다(6:21). 마지막 날에 우리의 크신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셔서 복스러운 소망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끌어올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날마다 소망하는 가운데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애쓴다(3:14; 2:12-13).

 

우리가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에도 오히려 담대한 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부활의 권능으로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키게 되리니, 오직 우리는 잠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고, 믿고 지금의 몸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고후 4:18-5:10; 8:25).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 그것은 오직 소망과 함께 역사한다(11:1).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3:3-4).

 

의의 태양이신(4:2)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조명하셨다’(딤후 1:10). 그리하여서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옮겨졌다(5:24). 이제는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그 분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2:19).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하늘에 앉히셨다(2:6). 부활의 소망은 이러한 현재적 복에 감사하는 자에게만 넘친다. ‘복된 부활을 계속적으로 묵상하는데 익숙해진 사람만이 복음의 유익을 어김없이 받게 된다.’

 

성도가 이 지상의 나그네의 삶 가운데 누리는 유일하고 완전한 복하나님과의 유대를 이루는 것이다. 철학자들도 최고의 선으로서 신과의 합일을 말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저 헛될 뿐이었다. 그들은 그 유대를 이루는 거룩한 고리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서 연합되었지만 그 연합을 계속 심화시켜 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지만 그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날마다 달려간다고 하였다(3:12).

 

성도는 그 속에 이미 그리스도께서 사시지만 마지막에 하늘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기다리며 현재의 삶을 소망 가운데 산다(3:20).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사장으로서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10:12).

 

 

2. 몸의 부활(carnis ressurectio)

 

영혼 불멸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많으나 육신의 부활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경은 부활을 믿는데 있어서 이성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유사함을 찾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취하시고 영광을 입으신 채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그 분께서는 부활의 몸을 입으신 참 사람이시자 참 하나님으로서 그곳에서 여전히 중보하신다. 그리하여서 미래의 부활의 보증이 되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형상’(imago Christi)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나 다시 사심으로 죽음을 이기신 것은 오직 우리를 위하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caput)로서 첫 열매가 되셔서 온 몸의 지체들에게 부활의 본을 보이셨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조성하신 분이 되셨다. 그 분의 다시 사심이 없었다면 우리의 양자됨’(adoptio)이 무익하고, ‘우리 구원의 효과가 무용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썩지 아니하는 순전한 몸으로 계시다가(1:20; 16:10; 2:27) 마지막에 다시 오셔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3:21).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우리의 생명이 그 분과 함께 아버지 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 분께서 나타나실 때 그 생명도 또한 우리에게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3:1-4).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전 4:10).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미래의 삶을 공유하는 자들로 삼으셨다. 그 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그 분께서 친히 부어주신 그 분의 영을 받은 자마다 그 영의 능력’(virtus)작용’(efficacia)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 그 분께서 부활이요 생명이 되셔서 그를 믿는 자마다 죽어도 사는 은혜의 길을 여셨다(11:25).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3).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혼을 떠받치기 위한 확고한 실체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서 부활이 증언되었다. 그 분께서 다시 사셨음이 천사들에 의해서 선포되었다(28:6; 24:6).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며 직접 그 분의 몸을 보고 만졌다(24:40; 20:27). 부활 후 사십 일 동안 주님께서는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1:3).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오백여 형제들이 보는데승천하셨다(1:9; 고전 15:6). 우리가 보혜사 성령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내려 받음이(2:33; 16:7) 그 분께서 인성에 따라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서 오르셨음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따라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우리를 위한 신인양성의 중보를 지금도 계속하신다. 오직 이러한 중보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은 사람만이 부활을 미리 맛본다.

 

몸의 부활을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권능이 역사함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신뢰한다. 씨가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연의 섭생도 부활에 대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으나(고전 15:36), 진정한 부활의 유비는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 외에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부활의 섭리는 신비에 속한다. 우리는 그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찬미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계의 거민이 사망 가운데 처하여 있을지라도 주의 백성은 다시 살아나리라고 예언하였다(26:19). 다윗은 임박한 사망 가운데서도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를 피난처로 의뢰함을 노래하였다(68:20). 욥은 육체의 장막을 벗고 난 후 후일에 땅 위에 서실 구속자를 자신의 눈으로 보리라고 절규하였다(19:25-27). 에스겔 선지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른 뼈에 힘줄과 살과 가죽을 더하시고 생명을 주사 자신의 군대를 삼으시는 형상을 부활의 환상으로 보았다. 이로써 태초의 창조의 권능이 다시금 상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을 채우시고 각 마디를 상합하게 하신 후 생기를 넣으시고 너희가 살아나리라라고 선포하셨다(37:1-10).

이러한 말씀들은 부활이 소망의 질료이며 모든 해방(解放)의 주요한 본이 됨을 우리가 깨닫게 한다.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의 몸을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하신다(3:21). 오직 하나님께서만 항상 미쁘심으로(딤후 2:13)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끝까지 지키신다(딤후 1:12). 그리하여 심판의 날에 의로우신 재판장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게 하신다(딤후 4:8). 우리가 지금은 환난을 받으나 주 예수께서 마지막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안식으로갚아 주신다(살후 1:6-8).

 

이렇듯 성도의 부활은 성부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성령의 역사로 성자께서 육신 가운데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첫 열매에 동참하는 성도의 소망이자 그 실상이다(3.25.4).

 

 

3. 부활의 영원한 복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부께서는 성자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대리적 속죄의 죽음으로 인정하셨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고전 15:15). 몸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음이 무의미하다(고전 15:45).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3).

 

동일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몸을 깨끗하게 하라고 하며(고후 7:1), 몸으로 행한 것으로 판단을 받으며(고후 5:10), 예수의 생명이 죽을 몸에 나타난다고(고후 4:11) 하였다. 또한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하며(고전 6:15), 몸으로 찬양하기를 원하고(딤전 2:8), 몸으로 제물을 드리고(12:1), 몸으로 주님을 섬기라고 한다(고전 6:20).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성전에 비유하시면서 부활을 말씀하신 것은 몸의 부활을 분명하게 보여준다(2:19). 무덤에 있는 자들이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아온다는 말씀도 몸의 부활을 명백하게 제시한다(5:28-29).

 

성도가 부활하여 누릴 즐거움과 달콤함을 아무도 이성의 그릇에 다 담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이 자리에 이르고자 하지만, 어떻게 그곳에 이를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활의 복이 귀한 만큼 지금 부활의 삶이 복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미래를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