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묵상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마태복음 6:9-13 -

샬롬선교회

 

마태복음 6:9-13“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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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신 후,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가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섬김도,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한 가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첫 번째 간구로서의 기도는 두 가지 어휘로 이루어져 있다.

 

1."이름"

 

'그 이름'(정확히는 '당신의 이름'이다. τὸ ὄνομά σου/ your name), 아들 예수님, 그리고 우리가 부르는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다. '이름'이라는 하늘 아버지의 이름 자체가 그 본질(유일성, 영원성, 편재성, 불변성, 완전성, 자존성, 전지전능, 창조주, 통치자 등)과 그 속성(사랑, , 공평, 자비, 은혜, 긍휼, 자비, , 지혜 등)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행위가 '이름'의 실체이다.

성경의 역사 속 수많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그 이름'이라는 폴더라고 할 수 있다.

 

2.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영광 받으소서'로 번역된 동사는 '하기아스세--'(ἁγιασθήτω)이다. 그 기본형 '찬양하다''하기아조-'(άγιαζω)로 신약성경에서 28회 사용되었다. '거룩하게 하다' 외에도 '거룩하게 하다', '성결하게 하다', '거룩하게 구별하다'라고도 번역되어 있다(각주). 따라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뜻이다. ,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서 합당한 가치와 영광을 인정하고 구별하는 것,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그 무지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계를 통해, 그곳에 사는 피조물을 통해 드러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을 어딘가에서 느끼면서도 그 신을 멸망할 인간이나 새, 짐승, 새의 형상을 닮은 것들로 대체해 버렸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예수님이 가르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원죄를 가진 우리 인간이 그렇게 쉽게 기도할 수 없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가 찬양이 아니라 탄원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강한 유혹은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영광을 받고 싶고, 더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면 비굴해지기도 하고, 남을 시기하기도 한다. 참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영광을 받기를 원한다. 모든 영광과 칭찬을 자신이 받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야. 대단한 사람이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이 유혹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가장 강력한 유혹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내 이름이, 내 자신이 인정받고, 칭찬받고, 영광을 받고 싶다'는 소망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가장 어려운 기도인 동시에 하나님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간구이다.

사도행전 12:20에 갈릴리의 영주인 헤롯이 벌레에 물려 죽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벌레에 물려 죽는다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죽음이다. 그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처럼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입으로는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죄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본래 원하지 않는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인간의 원죄성이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다시 말해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자신을 거룩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주인에게 유익한 것, 선한 일에 합당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말씀의 진리, 은혜의 말씀으로'(요한복음 17:17, 19, 사도행전 20:32).

'모든 불의에서 벗어남으로'(디모데후서 2:21).

이처럼 를 통해 우리는 거룩하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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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헬라어 '하기아조-'(άγιαζ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다쉬'(קָדַשׁ)이다. '거룩하게 하다, 성스럽게 하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를 찬양하는 시편 96~99편의 시편 시리즈 중 마지막 시편 99편의 신앙고백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거룩하시도다"(3, 5, 9)라고 반복되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이 고백이 현실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 재림 후 천년왕국에서이다. 그리스도(메시아)의 직무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선지자적 직무이다. 그것은 초림 때 실현되었다. 두 번째 제사장적 직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왕적 직무가 실현되는 것은 지상 재림 이후이다. , 천년왕국에서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지상에서 주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주의 기도'는 바로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위대한 기도인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찬양하다'로 번역되는 경우에는 '-다르'(גָּדַל)라는 동사가 많이 쓰인다. '-다르'는 본래 '크게 하다'라는 뜻이다. ,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하는 것이 '높이다'라는 뜻이 된다. '-다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갈루--'(μεγαλύνω)이다. 누가복음 1:46 "내 몸은 주를 영화롭게(μεγαλύνω) 한다", 빌립보서 1:20 "...살든지 죽든지 내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영화롭게(μεγαλύνω) 하는 것이라". (구어체 번역)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로는 같은 '찬양하다'라는 말이라도 원어에서는 다른 동사가 쓰이고 의미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에서 '찬양하다'로 번역된 또 다른 단어는 ''(רוּם)이다. 이 단어는 시편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로, 본래는 하나님이 사람을 끌어올리고 높이신다는 은총의 용어이지만, 예배용어로 쓰일 때는 하나님을 높이신다는 뜻으로 '높이다'로 번역된다. 新改訳 시편에서 ''(רוּם)'높이다'로 번역한 것은 14번 정도 있다.

또 하나 ''(רוּם)의 유사어로 '-가브'(רוּם)가 있다. '높이다'(시편 20:1/59:1/69:29 )라는 은총의 용어인데, 시편 148:13에서는 예배용어로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오며'로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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