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 로마서 3:21-26 -

샬롬선교회 


[로마서 3:21-26]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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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베드로는 편지 속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베드로전서 1:18-19).

 

여기서 "알거니와"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항상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얼마나 깨닫고 있을까? 또한 그 능력을 알았을 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얼마나 작동시키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흘리신 고귀한 피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서도, 기도하는 데 있어서도, 봉사하는 데 있어서도 모든 토대이다. 이 토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포츠를 하는 사람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기본, 즉 건물로 치면 기초(토대)를 튼튼히 하지 않고 건축을 하려고 하면 언젠가는 기울어지고 무너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완전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본문을 읽어보겠다.

 

+ [로마서 3:21-26], 본문

 

1. 그리스도의 피는 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는 일차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가 어떤 가치를 갖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그 피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밝혀져야만 우리는 그 보혈의 귀중함을 알 수 있고, 그 보혈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증으로 구약의 출애굽기 11장을 열어보자. 거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 1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또 하나의 재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집트 전역의 모든 맏아들 - 왕의 맏아들, 노예의 맏아들, 가축의 첫 새끼도 모두 축는다는 무서운 일이다. 이 일로 인해 이집트 전역에 걸쳐 큰 외침이 일어난다. 이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 심판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와 그의 형 아론에게 '한 가지 일'을 말씀하셨다. '어떤 일'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아래 구절은 성경을 펴서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 1-7, 12-13... 하나님이 리더에게

+ 21~23・・・・・・ 리더에서 장로들에게

+ 28・・・・・・・・ 믿음으로 순종하라

+ 29~33・・・・・・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내가 그 피를 보고 너희를 지나가리라"(12, 23)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을 치시기 위해 두루 다니실 때, 두 문설주에 있는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지방을 지나가실 것이며,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백성들은 이 약속을 믿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심판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피는 사람을 위해 드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드려진 것이다. 왜냐하면, 피는 기둥에 발라졌기 때문에 집안에서 식사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피를 보시고" 그곳을 지나가신 것이다.

 

'내가 그 피를 보고 너희를 지나가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다. 하나님 자신의 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피를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처럼 하나님은 더 이상 양이나 염소의 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보신다.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의 피를 보실 때 자신의 의를 만족시키시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신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로마서 325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로마서 3:25], 본문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의 효력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불신자일 때는 양심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던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양심이 깨어나 민감해진다. 그때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보다 죄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낙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느끼기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느끼려고 노력하거나 주관적으로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기분이나 감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 "너희가 구속함을 받은 것은 ... 은이나 금 같은 썩어질 것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한다. 은이나 금, 혹은 어떤 선행을 하나님께 드려도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하나님 앞에 '존귀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실 때, 우리의 죄가 아무리 깊어도 우리를 지나쳐 주신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로 충분히 달래고 만족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3:25을 온전히 믿자. 왜냐하면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의 피만이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충분히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에 대한 접근을 자유롭게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양심의 가책에서,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로워진다. 과거의 죄책감에 언제까지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주저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부끄러움 없는 양심을 갖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때때로 우리의 양심이 불안해져서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다가갈 수 없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그러나 그때에,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보혈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요한일서 1:7-9]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모든 것이 빛을 발한다. 우리의 죄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 사탄은 그 죄를 지적하며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발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양심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그 결과 우리는 죄책감을 갖게 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사탄은 이렇게 호소한다. "너는 죄를 지었다. 하나님을 거역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 비난, 고발에 우리는 종종 패배하고 실망하고 낙심하게 된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가장 잘하는 전략이다.

 

우리가 사탄의 고소, 고발, 비난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자신의 옳음과 힘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증거이다. 죄를 짓는 것은 바로 육신의 본성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육신의 본성으로 가득 차 있고,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죽어 마땅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내 안에 어떤 기대와 자부심, 힘과 옳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사탄이 와서 우리를 비난할 때 우리는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사탄의 비난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죄에서 우리를 정결케신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보혈을 근거로 하나님은 당신과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무슨 근거로 우리를 고소할 수 있을까? 사탄이 아무리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소해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로마서 8:31)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피를 근거로 우리는 사탄의 항소를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도 요한이 그의 편지 요한일서 1:9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의 죄에 근거해서 고소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죄를 말한다면 사탄은 고소할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완전성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비로소 '담대히', '거리낌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업적이나 감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담대함'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당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18, 22]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는 분명 나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어떤 죄의 참회도 그것만으로는 우리를 조금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양심을 정결케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자가 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양심의 가책에서, 하나님을 위해 좋은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속박에서 벗어나 감사와 사랑과 기쁨과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힘, 이 힘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힘임을 확신하고 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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